2003.04.01 05:42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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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께서 김영교님에게 남긴 내용]
좀 중복되는 것 같긴 하지만 영화 해설이 도움이 될 듯해서 넣어 봅니다.

◀ 영화 피아니스트와 쇼팽의 녹턴▶











감독  : 로만 폴란스키
출연 : 애드리안 브로디(블라디슬로 스필만),
토마스 크레치만(윌름 호센펠드 장교),
프랭크 핀레이(아버지), 모린 리프만(어머니),
에드 스토파드(헨릭), 제시카 케이트 메이어(할리나),
줄리아 라이너(레히나), 에밀리아 팍스(도로타), 루쓰 플렛(제니나)


명상에 잠긴 듯 눈을 감은 피아니스트의 섬세하고 노련한 손길이 피아노의 건반 위를
스치면, 쇼팽의 야상곡(Nocturne in C-sharp minor)이 흘러 나온다.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에서 품격이 배어나오는 신사, 이 사람의 이름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이 사람에게 '폴란드의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호칭은 항상 함께했고,
대중의 사랑과 장래를 보장받은 그의 앞날에는 행복과 영화만이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1939년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고 있던 스필만은 갑작스런 폭격으로 인해 자신의 연주를 미처 끝마치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긴장된 생활 끝에 유대계인 스필만의 가족들은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지만, 스필만은 홀로 빠져 나온다. 이후로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연명하며 전쟁에서 살아 남은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남겼고,
2000년초 역시 나치의 희생자였던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이 책을 영화화 하기로 합의한다.

담담한 영상 속에 흐르는 감동적인 피아노 선율 일곱 살 때 부모와 함께 나치의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던 중 홀로 빠져 나왔고, 임신 중이던 아내 샤론 테이트는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광신도들에게 잔혹하게 살해 당했으며, LA에서 13세 소녀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파리로 날아가 25년째 생활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 지독한 완벽주의자인 그에게도
이 영화만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작품은 없었다.

이 작품을 시작했을 당시 그의 가슴에는 분노와 사명감이 가득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비평가는 "이 작품에서는 로만 폴란스키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철저히 자신을
배제했다. 관객들의 감정까지 친절하고 자세히 지시해 주는 음악과 효과음을 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역시 최소한으로 절제된 대사들과 감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투영하는 카메라는, 그래서 비참하고 잔혹했던 그 시대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었다.



악역은 분명히 있지만 실체로 보이지 않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도 없다.
아마도 이 부분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뜩이나 마른 체형의 애드리언 브로디가
10키로를 넘게 감량을 하고서 눈에는 공포와 불안을 가득 담은 채, 화면 구석구석으로 쫓기듯
방황하는 모습만 계속해서 비추어 진다. 살아 남으려는 본능만 남아있는 이 작고 나약한 영혼은
끌려가는 가족들과 폭동을 계획하는 동료들을 외면하는 비겁함마저 공포에 짓눌려 의식하지 못한다.

이 상처입은 나약한 영혼에서 빛이 발하는 순간은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독일군 장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의 연주가 시작되면,
지저분한 수염과 남루한 옷을 걸친 부랑자가 위대한 영혼으로 승화된다. 피아니스트의 존재
이유는 연주하는 것,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의 연주는 위대했지만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루하고 피폐한 전쟁 이야기에서 울려 퍼지는 쇼팽의 야상곡은 전쟁의 폐허에서 소생을
꿈꾸는 희망의 메시지와도 같다. 클래식 피아노를 좋아한다면, 엔딩 크레디트를 놓치지 말자.
건반 위를 춤추는 두 손의 주인공은 스필만과 같은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자누스 올레니작'으로,
그의 연주는 영화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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