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사랑하는 딸, 금옥집사를 먼저 보내며

2007.05.23 10:54

김영교 조회 수:742 추천:151

주님이 사랑하는 딸, 금옥집사를 먼저 보내며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고 그리울 땐 전화선 끝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 1부 예배 후 아침식사를 나눌 때 품위있는 대화와 웃음으로 주위를 편안케 해주며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친구 금옥집사 이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수도 없어 너무 앉타깝고 애석한 마음 어찌 표현하겠습니까? 3주동안 급히 집안일로 서울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4월중순께 병문안했을 때 그 때가 마지막이 될 줄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5월 13일 돌아왔지만 시어머니 안과병원, 저의 어깨통증, 18일 저희집에서의 구역 예배, 그 주말 결혼 2건, 이대합창공연등 제 발등의 불을 끄는일이 급했던 것이 제 현실이었습니다. 남편집사님 말씀이 저를 무척 기다렸다고 할때 가슴이 내려앉고 현기증같은 후회에 어지러웠습니다. 서울에서 궁금해 보낸 이 멜을 바깥집사님이 프린트해서 읽어주면 그리 좋아했다는 말 듣고 더 여러번 못한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환자의 병문안은 미룰 것이 못된다고 다시 깨달게 되었습니다. 그날 5월 20일 30분 전에 결혼식장에 있었고 30후 부음소식에 주집사 내외와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친구의 미소는 간데온데 없고 체온이 식은 친구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옆에 계신 고모님과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줄 때 금방 눈을 뜰것 같은 착각에 애써 깨우려고만 했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귀를 대고 손으로 더듬어도 숨 멎어있어 조용하고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친구는 사랑하는 남편품에서 많은 것을 누리다가 장막을 벗고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였습니다. 우리 사귐의 세월은 오래 된 묵은 포도주는 아니였습니다. 원래 말을 아끼고 오픈하지 않는 두내외분의 라이프 스타일을 인정하면서 자주 만남의 기쁨을 나누곤 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퓨파인더에 담는 사진반 인연이 고리가 되어 우정이 발전성장 되어갔습니다. 금옥집사와 함께 하는 여행은 집사님의 맑은 심성 탓인지 긴장을 녹여줄 때가 많았습니다. 근래에는 아주 많은 여행에 몰두 하고 즐거워 하였습니다. 유렵을 섭렵하고 온갖풍물을 기념으로 가져올 때 여행담 체험담 만으로도 저는 신이 났는데 선물 리스트에 제 이름이 있다는 사실, 감사했고 애집트의 실크 긴 스카프는 시린 어깨를 감싸주고도 남았습니다. 임종예배를 드리고 시신을 장의사로 먼저 떠나보내면서 흘린 눈물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삶의 순간순간 <때>를 의식하며 살아가는게 바람직 하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헤어질 때가 있으면 만날 때가 있고,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고 성경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을 빚으신 창조주 계산법엔 인간의 수명이 밤의 한 경점에 불과하다 했습니다. 인간의 연수가 칠십이고 강건하면 팔십이라 했는데 연수도 채우지 않은 채 부르신 하나님의 숨은 계획은 과연 무엇일까요? 남은 가족을 더욱더 탄탄란 믿음으로 이끌고 그 밧줄에 묶어두고 싶은 의도일까요? 이웃과 터놓고, 열어 놓고 하는 교제를 원하고, 공동체의 사귐의 기쁨을 알리고 누리도록 길을 튼 것은 아닐까요? 한치 앞을 모르는 피조물에게 인간의 유한성과 자연 법칙인 <때>를 깨우쳐 주려는 의도는 아닐까요? 창조주의 임재를 확인시킴과 동시에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주님 특유의 간섭은 아닐런지요? 삶은 신비합니다. 창조질서 안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고통도, 눈물도, 외로움도 없는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었기에 슬프지만 남편 집사님과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됩니다. 월요일이면 찾아갈 계획이었는데 기다리지 않고 일요일 오후 육신의 장막을 훌훌 벗고 그리 서둘러 그 먼길을 떠나야 했는지 무척 아쉽습니다. 주님의 때가 온것입니까? 금옥집사, 당신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다정한 친구였습니다. 이제 내 민 손 잡아 줄 때 그 온기 느낄수 없고 그 정겨운 음성 다시는 들을 수 없지만 친구의 흔적은 우리 가슴에 오래 기억될것입니다. 인생의 후반전을 멋있게 보냈고 좀 더 오래 누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만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웃으신 기억들을 감사하게 바라봅니다. 영생을 믿는 우리는 슬픔을 넘어 고인을 추모하면서 단 하나의 이 목숨도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여정이기를 다짐하는 이 자리, 다시 한번 내 자신을 살피며 이것이 바로 친구가 남긴 교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지상을 떠나 이제는 오직 평강과 기쁨만을 누리는 천국입성을 확신하며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다시 만날 약속을 믿으며 이제 편히 쉬소서. 2007년 5월 23일 친구 김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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