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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05:04

박경숙 조회 수:167 추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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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와 스카프 -


 


 


 


size=2>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서랍 밑바닥에서 오래된 스카프들을 찾아내었다. 별로 부피가 나가는 물건이 아니라 그저 보관해 온 것이 벌써 20년이 넘은 것들이 많았다. 

겨울날 시린 목을 따스하게 감싸주기도 했고, 멋내기 좋아하던 여대생 시절엔 옷색깔에 맞추어 어깨에 둘러졌던 스카프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그 광택과 보드라운 실크의 촉감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여고시절 감청색 오버 코트에 맞추어 어머니가 사주셨던 것에서 대학 기숙사 시절 같이 방을 쓰던 후배 룸메이트가 선물했던 것도 있다. 후배가 선물했던 푸른색 스카프는 문득 그때의 한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미술을 전공하면서도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던 후배는 예술성이 풍부하기는 했지만 도통 방 청소를 하지 않았다. 결국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내가 내내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후배는 내 생일날 아침 책상 위에 예쁘게 포장한 푸른색 실크 스카프와 함께 ‘언니와 알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면서’라는 글귀를 남겨 놓았다. 후배의 그 아름다운 말을 꼭 기억하여 선물 받은 스카프를 보관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후배의 마음이 스카프 속에 그대로 살아있는 것만 같아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진다.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나이 먹어가고 있는지. 어찌 생각하면 후배는 ‘언니와 알게 된 것을’이란 말 앞에 ‘청소를 잘 하는’이란 말을 생략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이삿짐을 싸면서 오래된 스카프들을 하나하나 펼쳐 서랍 안의 잡다한 물건을 싸다보니 이제는 보자기로 쓰이게 된 스카프의 효용성이 새삼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온갖 비닐 샤핑백에 밀려 제 구실을 못하게 된 보자기는 멀지 않던 우리의 추억 속에 몹시도 요긴한 물건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시장에 가실 때면 반듯하게 접힌 보자기 하나와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에는 요술처럼 커다랗게 부푼 보자기 안에서 온갖 채소와 신문지에 싸인 생선과 고기뭉치가 튀어나오던 기억이 있다. 

또 책가방을 살 돈이 없던 시골 아이들에게도 보자기는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책과 공책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하교 길을 걸어가던 사내아이들에게선 양철 필통 속에서 연필이 딸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어느 날은 그 모습이 부러워 책가방을 놓아두고 일부러 보자기에 책을 싸서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이제는 보자기가 된 스카프에 꼼꼼하게 챙겨온 물건들을 새로 이사온 집에 도착하여 펼쳐 정리하고 보자기는 다시 추억 속의 스카프가 되어 원래 있던 서랍 밑바닥으로 들어갔다. 

그것들은 다시 스카프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춥지도 않은 이곳 날씨에 별로 쓸 일도 없는데다 이제는 스카프로 멋을 내는 것도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일이다.

서랍 속에 넣어진 스카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도 이제는 겉모습을 치장하던 스카프와 같은 삶보다는 잡다한 것들을 감싸안는 보자기와 같은 넉넉함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스카프와 보자기는 천 조각을 정 사각형으로 잘라 테두리를 박음질하였다는 것에서는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그 용도는 무척 다르다. 

사람 중에도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서로 사는 방법과 그 역할이 다르듯이 스카프와 보자기도 같은 형태이면서 하나는 장식용으로, 다른 하나는 물건을 싸안는 실질적인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한때 더 젊던 시절엔 스카프와 같은 삶을 선망하기도 했다. 세상의 첨탑 꼭대기를 화려하게 감싸안는 아름다운 스카프처럼 그런 삶을 꿈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언덕을 넘어가는 나이에 이르러 아무도 모르게 잡다한 것들을 가만히 싸안는 보자기와 같은 넉넉함이 내 삶을 편안하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서랍 속의 오래된 스카프들처럼 한때는 그것이 장식용이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그 화려함에서 물러선 소박한 보자기와 같은 삶, 사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삶의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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