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답변이 되는구나
2004.04.04 21:34
오늘밤은 샤워를 더 오래오래 해야 되겠습니다.... 압권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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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 사는 이야기 - 길목 ┼
│ - LA 사는 이야기 / 이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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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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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타운 중심부에서 ‘제임스우드’ 스트릿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 ‘벌몬트’ 길을 살짝 지나면 왼편으로 조그만 몰이 나오는데 그 곳에 <길목> 이라는 고기구이집이 있습니다. LA 코리아타운의 오래된 식당 중 한 곳인 이 구이집은 갈비살, 염통, 양, 곱창, 혀밑구이 따위 부위별 고기와 함께, 소주와 맥주 등을 파는 목로주점입니다. 언제나 손님들로 넘쳐나는 이 곳은, 불판에서 피워올리는 연기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왁자한 소음들이 뒤엉켜, 길목이라는 이름 그대로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식당입니다.
│ 온몸에 달라붙은 고기탄내를 씻어내기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옷을 홀랑 벗어 빨래통에 던져넣고 샤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매번 망설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그 시장바닥처럼 왁자한 분위기와 또 내가 좋아하는 이 집의 특미 ‘동치미국수’를 즐기기 위해 여길 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다른 날보다 더 요란하고 시끌벅적 한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정받은 좌석이 홀의 한가운대여서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행한 친구 K도 높은 소음을 느꼈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둘래둘래 주위를 살핍니다. 그런 우리는 이내 아하, 하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 “잘했어, 잘했다구, 한번 둘러엎어야 해. 도대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입방정을 떨어서야 되겠어, 난 아주 속이 씨워언해.”
│ “무슨 소리야, 대통령은 뭐 사람이 아니야?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인데 걸핏하면 깔보고 무시하고,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누군들 참아내겠어. 오히려 음흉하게 감추지 않고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난 훨씬 순수해 보이더만.”
│ “순수라니,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수천만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야. 자기 감정에 앞서 국민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게 순리지, 감정대로 해서 지금 나라가 어떻게 됐어, 마치 해방직후처럼 흑백으로 짝 갈라졌잖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어, 최고 통치자는 순수가 아니라 순리를 따라야 나라가 평안해. 개똥같이 순수는 무슨, 아가씨! 여기 참이슬 한 병 더가져와.”
│ 순수를 개똥으로 폄하 하며 소주잔을 탁, 내려놓는 소리는 바로 우리 앞쪽 테이블에 앉은 오십 중반의 사람들쪽에서 난 것이었습니다.
│ “주정뱅이가 술잔을 엎어도 그럴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구, 어떻게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 소갈머리가 그렇게 밴댕이 콧구멍이냐 말이야, 기가막혀서.”
│ “그래, 딱한 일이야. 정말 그럴까 싶다가도 이내 고개가 쩔래쩔래 내둘러진다니까.”
│ “글쎄, 애 밴여자 배 차는격이지 정치 한다는 사람들이 동네 조무라기들 패싸움 하듯 그게 뭐야, 정말 다른 민족들 보기에 창피해서 얼굴을 못들겠다구.”
│ “그러게 말이야, 허지만 이번 일로 해서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한층 발전할 거라구. 두고봐, 내 말이 틀리나.”
│ 제법 점잖은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는 테이블은 우리 우측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십대남자 두 사람이었습니다.
│ “아니, 넌 그럼 탄핵이 잘됐다 이거야! 너 탄핵 찬성파야?”
│ “야, 그 손가락 내려 임마, 너 자꾸 파,파, 하는데, 난 자식아, 아무 파도 아니야.”
│ “그럼 뭐야? 반대파도 아니고 지지파도 아니란 말이야?”
│ “그래, 반대파도 아니고, 지지파도 아니다!”
│ “그럼 너 양파겠구나?”
│ “아니야 임마, 난 무림의 군주 무당파야, 자식아!”
│ “뭐, 무당파? 푸하하하, 에라, 이 소림사 땡초 같은 놈아.”
│ 진지함이 다소 결여되기는 했지만 격론을 유머러스 하게 이끄는 사람들은 커플로 온 우리 뒤쪽의 젊은층이었습니다. 여자들은 깔깔 웃고, 말공방은 남자들이 벌리고 있습니다. 칸막이 건너편에서는 ‘열우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느니, 한나라당이 박근혜 때문에 살아나고 있다느니, 하는 소리가 넘어옵니다.
│ 요즈음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온통 탄핵정국 이야기 뿐입니다. 모두들 자신이 발딛고 사는 한인사회의 문제점은 버려둔체, 관심과 촉수를 바다건너로만 뻗치고 있습니다. 어떤 칼럼니스트의 ‘미국땅에 사는 우리가 본국 정치판에 끼어들어 촛불시위까지 할 일이 뭐가 있느냐, 촛불시위 할 힘을 한인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과 청소년 갱단을 몰아내는 일에 쏟자’ 는 호소에는 아무도 귀를 기우리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에 취해 불판위의 먹거리도 까맣게 잊어버려서 고기 타는 냄새와 연기가 식당안에 자욱합니다. 오늘 밤에는 다른 때보다 더 오래 샤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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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타운 중심부에서 ‘제임스우드’ 스트릿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 ‘벌몬트’ 길을 살짝 지나면 왼편으로 조그만 몰이 나오는데 그 곳에 <길목> 이라는 고기구이집이 있습니다. LA 코리아타운의 오래된 식당 중 한 곳인 이 구이집은 갈비살, 염통, 양, 곱창, 혀밑구이 따위 부위별 고기와 함께, 소주와 맥주 등을 파는 목로주점입니다. 언제나 손님들로 넘쳐나는 이 곳은, 불판에서 피워올리는 연기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왁자한 소음들이 뒤엉켜, 길목이라는 이름 그대로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식당입니다.
│ 온몸에 달라붙은 고기탄내를 씻어내기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옷을 홀랑 벗어 빨래통에 던져넣고 샤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매번 망설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그 시장바닥처럼 왁자한 분위기와 또 내가 좋아하는 이 집의 특미 ‘동치미국수’를 즐기기 위해 여길 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다른 날보다 더 요란하고 시끌벅적 한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정받은 좌석이 홀의 한가운대여서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행한 친구 K도 높은 소음을 느꼈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둘래둘래 주위를 살핍니다. 그런 우리는 이내 아하, 하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 “잘했어, 잘했다구, 한번 둘러엎어야 해. 도대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입방정을 떨어서야 되겠어, 난 아주 속이 씨워언해.”
│ “무슨 소리야, 대통령은 뭐 사람이 아니야?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인데 걸핏하면 깔보고 무시하고,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누군들 참아내겠어. 오히려 음흉하게 감추지 않고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난 훨씬 순수해 보이더만.”
│ “순수라니,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수천만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야. 자기 감정에 앞서 국민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게 순리지, 감정대로 해서 지금 나라가 어떻게 됐어, 마치 해방직후처럼 흑백으로 짝 갈라졌잖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어, 최고 통치자는 순수가 아니라 순리를 따라야 나라가 평안해. 개똥같이 순수는 무슨, 아가씨! 여기 참이슬 한 병 더가져와.”
│ 순수를 개똥으로 폄하 하며 소주잔을 탁, 내려놓는 소리는 바로 우리 앞쪽 테이블에 앉은 오십 중반의 사람들쪽에서 난 것이었습니다.
│ “주정뱅이가 술잔을 엎어도 그럴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구, 어떻게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 소갈머리가 그렇게 밴댕이 콧구멍이냐 말이야, 기가막혀서.”
│ “그래, 딱한 일이야. 정말 그럴까 싶다가도 이내 고개가 쩔래쩔래 내둘러진다니까.”
│ “글쎄, 애 밴여자 배 차는격이지 정치 한다는 사람들이 동네 조무라기들 패싸움 하듯 그게 뭐야, 정말 다른 민족들 보기에 창피해서 얼굴을 못들겠다구.”
│ “그러게 말이야, 허지만 이번 일로 해서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한층 발전할 거라구. 두고봐, 내 말이 틀리나.”
│ 제법 점잖은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는 테이블은 우리 우측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십대남자 두 사람이었습니다.
│ “아니, 넌 그럼 탄핵이 잘됐다 이거야! 너 탄핵 찬성파야?”
│ “야, 그 손가락 내려 임마, 너 자꾸 파,파, 하는데, 난 자식아, 아무 파도 아니야.”
│ “그럼 뭐야? 반대파도 아니고 지지파도 아니란 말이야?”
│ “그래, 반대파도 아니고, 지지파도 아니다!”
│ “그럼 너 양파겠구나?”
│ “아니야 임마, 난 무림의 군주 무당파야, 자식아!”
│ “뭐, 무당파? 푸하하하, 에라, 이 소림사 땡초 같은 놈아.”
│ 진지함이 다소 결여되기는 했지만 격론을 유머러스 하게 이끄는 사람들은 커플로 온 우리 뒤쪽의 젊은층이었습니다. 여자들은 깔깔 웃고, 말공방은 남자들이 벌리고 있습니다. 칸막이 건너편에서는 ‘열우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느니, 한나라당이 박근혜 때문에 살아나고 있다느니, 하는 소리가 넘어옵니다.
│ 요즈음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온통 탄핵정국 이야기 뿐입니다. 모두들 자신이 발딛고 사는 한인사회의 문제점은 버려둔체, 관심과 촉수를 바다건너로만 뻗치고 있습니다. 어떤 칼럼니스트의 ‘미국땅에 사는 우리가 본국 정치판에 끼어들어 촛불시위까지 할 일이 뭐가 있느냐, 촛불시위 할 힘을 한인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과 청소년 갱단을 몰아내는 일에 쏟자’ 는 호소에는 아무도 귀를 기우리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에 취해 불판위의 먹거리도 까맣게 잊어버려서 고기 타는 냄새와 연기가 식당안에 자욱합니다. 오늘 밤에는 다른 때보다 더 오래 샤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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