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사는 이야기
2004.06.06 11:24
피어 낚시
지난 일요일 문우 두 사람과 같이 피어(Pier) 낚시를 갔습니다. 오전 10시쯤 한인타운에 있는 L형 집에 모여, 20여 마일 거리에 위치한 롱비치(Long Beach) 항으로 가는 한나절 일정의 낚시 놀이였습니다.
전문 낚시꾼들은 ‘마리나딜레이’나 ‘산페드로’ 항에서 고기배를 타고 밤낚시를 나가던가, 아니면 국경을 넘어 멕시코의 ‘엔세나다’까지 원정을 가기도 하지만, 일요일에 교회 가고 월요일 아침이면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보통 사람들은 대게 피어 낚시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그러니까 LA 코리아타운에서 서쪽으로 가깝게는 10여 마일에서 멀게는 30 마일 정도 되는 대여섯 군대의 피어가, 우리 한인들은 물론, 흑 백인과 남미계, 그리고 일일이 국적을 확인 할 수 없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주말 놀이터요 낚시터인 것입니다. 북으로는 ‘말리부비치’로부터 남으로는 ‘대나포인트’까지의 서태평양연안은 로스엔젤레스 라는 대도시인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남가주의 대표적인 해안입니다.
웨스턴에비뉴와 1가에 위치한 한국마켓에서 찐만두와 오징어튀김, 시루팥떡 한 팩과 식수까지 완전무장(?)을 갖춘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피어는 물론 비치에서의 음주가 위법이기는 하지만 J형의 낚시가방 밑에 얌전히 놓여 있을 소주병을 생각함으로 해서 우리의 기분은 더욱 치솟아 있었습니다. 콜라병에 소주를 부어 닭처럼 한 모금씩 꼴꼴~ 돌려 마시는 재미는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한국마켓과 미끼를 사기위해 타운의 낚시점을 둘러 우리가 롱비치항에 도착 했을 때는 벌써 열두시가 지나 있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 피어 위를 바라보니 그 곳은 이미 낚시꾼들로 해서 장터처럼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가물가물 보이는 피어 끝은 말할 것도 없고, 백사장과 가까운 얕은 물에까지 낚시를 들이고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낚시는 틀려먹었지만 싸들고 온 만찬은 어떻게든 해치워야지, 하는 의중을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으로 말했습니다. 오후 2 시가 물때라며 늑장을 부리던 J형은 자리 없는 게 자기 탓 이기라도 한 듯 낚시가방과 마켓봉지를 혼자 걸머지고는 자리를 찾아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엉덩이 한쪽 들여 밀 곳이라도 있어야 사람들 눈치 안보고 오징어다리 씹을 명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L형과 나는 앞서가는 J형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라가며 어디 비비고 들 만한 틈이 없을까 눈을 째렸습니다.
앞서가던 J형이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L형과 나도 덩달아 서며 J형의 시선이 멈춘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수염이 더부룩한 중년의 사내 하나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매부리코에 더부룩한 구레나룻의 사내가 눈을 지그시 감고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주위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 있는 곳이었습니다. 피어 난간을 등지고 바이올린을 켜는 사내의 우측, 그러니까 유모차를 앞세우고 음악을 감상하는 남미계의 젊은 부부가 서 있는 자리를 J형이 찍은 것이었습니다. 젊은 부부 곁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흑인 가족과의 사이에도 낚시 한 대는 충분히 걸 수 있는 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곳은 세레나데가 끝나고 그 젊은 부부가 떠나기만 하면 우리 세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충분히 마련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J형이 젊은 부부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낚시가방과 마켓봉지를 유모차 곁에 내려놓더니, 팔짱을 척 껴붙이며 눈을 내려 감았습니다. L형과 나도 필요 없는 부끄러움을 짐짓 감추고 J형 곁으로 슬그머니 붙어 섰습니다.
드디어 세레나데가 끝났습니다. 둘러서서 음악을 감상한 사람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1불 혹은 쿼러 한 개를 바이올린 케이스에 던지고 떠나갔습니다.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던지진 않았지만 남미계의 젊은 부부도 유모차를 앞세우고 자리를 떴습니다. J형이 지갑을 열고 일불짜리 지폐 두 장을 바이올린 케이스에 던졌습니다.
“쇙큐!”
메부리코 바이올리니스트는 바람이 새는 듯한 동유럽 특유의 발음으로 감사의 말을 한 후, 듣고 싶은 곡이 있느냐고 J형에게 물었습니다. J형은 방금 전에 연주했던 세레나데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메부리코 바이올리니스트는 문제없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이내 눈을 감고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맞추곤 멋쩍은 웃음을 흘렸습니다. L형이 웃음을 걷고 낚싯대를 서둘러 피어 난간에 세웠습니다. 나도 낚시가방과 마켓봉지를 우리가 확보한 자리로 옮겼습니다. 그때 J형이 손바닥나팔을 입에 대고 살짝 말했습니다.
“소주병 꺼내.”
지난 일요일 문우 두 사람과 같이 피어(Pier) 낚시를 갔습니다. 오전 10시쯤 한인타운에 있는 L형 집에 모여, 20여 마일 거리에 위치한 롱비치(Long Beach) 항으로 가는 한나절 일정의 낚시 놀이였습니다.
전문 낚시꾼들은 ‘마리나딜레이’나 ‘산페드로’ 항에서 고기배를 타고 밤낚시를 나가던가, 아니면 국경을 넘어 멕시코의 ‘엔세나다’까지 원정을 가기도 하지만, 일요일에 교회 가고 월요일 아침이면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보통 사람들은 대게 피어 낚시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그러니까 LA 코리아타운에서 서쪽으로 가깝게는 10여 마일에서 멀게는 30 마일 정도 되는 대여섯 군대의 피어가, 우리 한인들은 물론, 흑 백인과 남미계, 그리고 일일이 국적을 확인 할 수 없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주말 놀이터요 낚시터인 것입니다. 북으로는 ‘말리부비치’로부터 남으로는 ‘대나포인트’까지의 서태평양연안은 로스엔젤레스 라는 대도시인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남가주의 대표적인 해안입니다.
웨스턴에비뉴와 1가에 위치한 한국마켓에서 찐만두와 오징어튀김, 시루팥떡 한 팩과 식수까지 완전무장(?)을 갖춘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피어는 물론 비치에서의 음주가 위법이기는 하지만 J형의 낚시가방 밑에 얌전히 놓여 있을 소주병을 생각함으로 해서 우리의 기분은 더욱 치솟아 있었습니다. 콜라병에 소주를 부어 닭처럼 한 모금씩 꼴꼴~ 돌려 마시는 재미는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한국마켓과 미끼를 사기위해 타운의 낚시점을 둘러 우리가 롱비치항에 도착 했을 때는 벌써 열두시가 지나 있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 피어 위를 바라보니 그 곳은 이미 낚시꾼들로 해서 장터처럼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가물가물 보이는 피어 끝은 말할 것도 없고, 백사장과 가까운 얕은 물에까지 낚시를 들이고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낚시는 틀려먹었지만 싸들고 온 만찬은 어떻게든 해치워야지, 하는 의중을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으로 말했습니다. 오후 2 시가 물때라며 늑장을 부리던 J형은 자리 없는 게 자기 탓 이기라도 한 듯 낚시가방과 마켓봉지를 혼자 걸머지고는 자리를 찾아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엉덩이 한쪽 들여 밀 곳이라도 있어야 사람들 눈치 안보고 오징어다리 씹을 명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L형과 나는 앞서가는 J형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라가며 어디 비비고 들 만한 틈이 없을까 눈을 째렸습니다.
앞서가던 J형이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L형과 나도 덩달아 서며 J형의 시선이 멈춘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수염이 더부룩한 중년의 사내 하나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매부리코에 더부룩한 구레나룻의 사내가 눈을 지그시 감고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주위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 있는 곳이었습니다. 피어 난간을 등지고 바이올린을 켜는 사내의 우측, 그러니까 유모차를 앞세우고 음악을 감상하는 남미계의 젊은 부부가 서 있는 자리를 J형이 찍은 것이었습니다. 젊은 부부 곁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흑인 가족과의 사이에도 낚시 한 대는 충분히 걸 수 있는 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곳은 세레나데가 끝나고 그 젊은 부부가 떠나기만 하면 우리 세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충분히 마련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J형이 젊은 부부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낚시가방과 마켓봉지를 유모차 곁에 내려놓더니, 팔짱을 척 껴붙이며 눈을 내려 감았습니다. L형과 나도 필요 없는 부끄러움을 짐짓 감추고 J형 곁으로 슬그머니 붙어 섰습니다.
드디어 세레나데가 끝났습니다. 둘러서서 음악을 감상한 사람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1불 혹은 쿼러 한 개를 바이올린 케이스에 던지고 떠나갔습니다.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던지진 않았지만 남미계의 젊은 부부도 유모차를 앞세우고 자리를 떴습니다. J형이 지갑을 열고 일불짜리 지폐 두 장을 바이올린 케이스에 던졌습니다.
“쇙큐!”
메부리코 바이올리니스트는 바람이 새는 듯한 동유럽 특유의 발음으로 감사의 말을 한 후, 듣고 싶은 곡이 있느냐고 J형에게 물었습니다. J형은 방금 전에 연주했던 세레나데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메부리코 바이올리니스트는 문제없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이내 눈을 감고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맞추곤 멋쩍은 웃음을 흘렸습니다. L형이 웃음을 걷고 낚싯대를 서둘러 피어 난간에 세웠습니다. 나도 낚시가방과 마켓봉지를 우리가 확보한 자리로 옮겼습니다. 그때 J형이 손바닥나팔을 입에 대고 살짝 말했습니다.
“소주병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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