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사는 이야기

2004.05.03 06:51

이용우 조회 수:664 추천:49

부업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오여사는 서울에서 온 아이들 셋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강남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의 4학년 여자 아이들입니다. 정여사는 어학연수를 온 이 아이들을 위해 아침 6시 전에 일어나 밥지어 먹여서 학교 보내고, 오후 3시 하교시간이 되면 다시 집으로 대려와 씻기고 놀아주고 밥먹여 재우는 일을 합니다.
주말이면 공원이나 영화관에도 가고, 아이들의 정서 교육을 위해 도서실과 박물관에 데려가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올라간 기온 덕분에 산타모니카 비치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모래밭을 뛰어다녔더니 종아리에 알이 배겼다며 행복한 얼굴로 엄살을 떨었습니다.
이제 두 달째로 접어드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오여사는 신바람이 펄펄 납니다. 아이들이 학교 간 틈에 잠시 친구들과 어울렸다가도 ‘어야, 야들 올시간이 되야뿌렀네!’ 하며 발딱 허리를 일으키기 일쑤 입니다.
즐거워 죽겠다는 속내를 꽁꽁 싸고 감추는 오여사의 진짜 즐거움은 바로 아이들로 인해 들어오는 짭짤한 수입에 있습니다. 아이 하나에 2천불씩 한 달이면 6천불인데, 어학연수가 끝나는 삼 개월치를 이미 선불로 몽땅 받아 챙겼으니 오여사의 기분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물론 오여사 말마따나 아이들의 모든 이동을 위해 아예 전용 운전수로 들어앉은 작은 아들과, 하루 두 세 끼씩 음식 만들고 빨래 하느라 가정부가 되어버린 자신의 인건비, 그리고 마켓비용과 세 아이들의 여가 비용으로 지출되는 잡비들을 빼면 별로 좋은 벌이가 아닐런지도 모릅니다. 허지만 어차피 직장이 없어 빈둥빈둥 밥이나 죽이던 작은 아들이나, 필름 살돈이 없어 그 좋아하는 사진촬영도 제대로 못나가던 오여사의 입장으로 보면 복이 덩쿨째 굴러들어 온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인 마켓의 생선부에서 일하는 남편과 변호사 사무실에 다니는 큰아들의 수입으로 방 세 개짜리 하우스의 월부금과 자동차 두 대의 할부금, 그리고 마켓비와 각종 유틸리티 고지서로 늘상 쩔쩔매던 오여사의 형편이 서울 아이들 셋으로 하여 춘궁기의 배꽃처럼 활짝 핀 것입니다. 서울 아이들 때문에 자기 내외가 허드레 물건을 넣어두는 창고로 잠자리를 옮겼다는 이야기는 비어져나오는 즐거움을 감추기위해 입에 달고 사는 오여사의 고정 래파토리 중 하나입니다.
그런 오여사에게 요즈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은혜’ 라는 아이(서울에서 온 아이 중 하나)가 부리는 공연한 심통 때문입니다. 성깔이 사납고 욕심이 많은 은혜는 다른 두 아이들과 등을 지고 사사 건건 말썽을 부리는 것입니다. 공원에 가자고 하면 영화가 보고싶다고 틀고, 도서관에 가자면 이번엔 동물원에 데려다 달라고 까탈을 부린답니다. 그래서 이젠 그 은혜의 의향을 먼저 물어보는데, 두 아이들이 그러자고 동의를 하면 방금전에 한 자신의 결정을 뒤집으며 다시 마음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고것이 어제는 말이야, ‘우리 엄마가 돈 많이 주었으니까 용돈 좀 주세요!’ 이러지 않나? 하이고, 서울 아이들 당돌 하기가 참나무에 붙은 딱따구리 같드라니까. 참내, 기가막혀서. 이름이 은혠데 우짬 고레 은혜스럽잖은가 모르겄네 잉-.”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는 오여사는 가당치도 않다는 얼굴로 입을 헤, 하고 벌립니다.
-어학연수 올 아이들이 줄을 섰당게,- 언젠가 오여사가 자못 흥감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어렵사리 연결된 서울의 세 아이들이 예정된 공부를 잘마치고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오여사의 당면한 목표입니다. 그래야 그 엄마들을 통해 소개된 다른 아이들이 또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정규교육 외에 주말과 공휴일이면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아 다니는 것도 내심 오여사가 아이들의 부모를 겨냥한 속셈(좋은 의미의)이 그렇게 깔려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취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돌아가면 기념이 되라고 학교는 물론 아이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지성으로 사진 찍어 엘범을 만드는 것도 오여사의 또다른 일거리입니다. 이렇게 공들여 쌓고 있는 오여사의 ‘부업탑’을 열 살짜리 은혜가 마구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교육적으로 다스리느냐 아니면 아이의 압력에 굴복하고 마느냐 하는 것으로 지금 오여사는 부업의 갈림길에서 목하 고민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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