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가족

2008.12.06 15:07

이용우 조회 수:1377 추천:133

토요일 이른 아침 나는 뒤뜰에서 바베큐그릴을 닦고 있었습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그린이 학교에서 열리는 ‘스쿨 카니발’에 바베큐그릴을 가져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밑에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것을 끄집어내어 거꾸로 엎어놓고 환기통 부근과 그믈망으로된 고기판의 찌든 때를 긁고 있는 데 ‘하이,’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머리를 들고 올려다보니 옆방 루딕의 잠묻은 얼굴이 창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하이, 굿모닝 루딕.”
내가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하자 루딕도 굿모닝, 하며 마주 답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거 오늘 쓰실겁니까? 나도 바베큐그릴이 필요한데... 오늘이 헬렌 생일이거든요.”
아차, 나는 헬렌의 생일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그제사 떠올리며 루딕이 왜 이렇게 허겁지겁 눈을 비비고 나왔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지난 주 그린이가 다음 토요일이 헬렌의 생일이라며 예쁜 초대장을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그것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오, 그래, 오늘이 헬렌 생일이지요. 그런데 어쩌지, 학교 카니발에 바비큐 그릴을 가져 가기로 이미 약속을 했는데...”
내가 난처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루딕도 낭패라는 듯 눈자위를 치켜뜨며 어깨를 으쓱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언 듯 떠오르는 한 생각이 있어 생일 파티를 몇 시에 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루딕도 내 말에 무슨 감을 느꼈는지 얼굴이 밝아지며 오후 3 시부터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케이, 문제 없어요, 학교 카니발은 점심 바비큐니까 이 그릴을 두 시 전까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되지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딕의 입술이 바나나처럼 길게 휘어졌습니다.
“오, 미스터 리, 베리 굿, 땡큐! 땡큐 쏘머치!”

우리 아파트는 네 가구가 사는 포유닛 콘도미니엄입니다. 아래 층에 두 집, 위층에 두 집이 삽니다. 아파트 정면에서 보면 밭 전(田)자의 생김 그대로 네 개의 입 구(口)자 안에 한 가구씩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파트의 생김이 이렇다 보니 결국 네 가구가 모두 주차장이 있는 뒤쪽을 향해 거실, 식당, 부엌, 그리고 두 개의 방과 화장실, 마지막으로 세탁장이 일자로 주욱 늘어선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해 보면, 좌 하의 口 안에는 올 9월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그린’이와 내가 살고 있으며, 우 하에는 엘에이 필의 바이올린 주자 ‘루딕’과 시청 공무원 인 ‘에이미’ 부부가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 짜리 딸 ‘헬렌’과 사는 집입니다. 우 상에는 지난 4월에 돌잔치를 한 베이비 걸 ‘마야’가 컴퓨터 샾을 하는 아빠 ‘프레디’와 연방공무원인 엄마 ‘엘리쟈벳’과 함께 살고, 좌 상에는 남미계 2 세인 ‘아르만도’와 흑인 아내 ‘욜란다’ 그리고 유아원에 다니는 네 살배기 아들(네 가구 중 유일한 사내 아이) ‘키노’의 집입니다. ‘아르만도’와 ‘욜란다’ 부부는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주 몇캔에 기분이 좋아지면 파바로티처럼 솔래미오를 불러젖히는 ‘아르만도’는 영화사의 요리사이며, 후피골드버그와 흡사하게 생긴 ‘욜란다’는 엑스트라 배우 입니다. 이들이 부부가 된 것은 미루어 쉽게 짐작이 가는 일입니다. 어쨌든 요약하여 우리 위층에는 ‘키노’ 네가 살고, ‘루딕’의 위층에는 ‘마야’ 네가 사는 것입니다.

바쁘게 서둘렀지만 어느새 오후 2시가 10분을 넘어섰습니다. 나는 학교 친구들과 더 놀고싶다는 그린이의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아직도 열기가 남은 바비큐그릴을 트렁크에 싣고 달려와 보니, 모든 자동차를 밖으로 내보낸 뒤뜰 주차장에는 나무가지 마다 매달린 ‘헤피 버스데이’ 깃발과 풍선이 바람에 나부끼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오, 땡큐 미스터 리, 땡큐 마이 부라더!”
개스펌푸로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던 루딕은 내가 나타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든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어깨를 와락 껴안으며 땡큐를 연발했습니다. 루딕에게 어깨를 붙잡힌 체로 넘겨다 보니 밭 전(田)자 네 가구의 모든 식구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 시무룩해 있던 그린이도 어느새 풍선 하나를 손에 쥐고, 달아나는 키노의 뒤를 헬렌과 함께 좇고 있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모래산 이용우 2008.12.06 2360
29 한국어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702
28 꿈, 강아지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465
27 하이꾸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875
26 아빠 와이프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203
25 선거 (아이 마음 어른 마음) 이용우 2008.12.06 2140
24 In The Year of 2026 (아이 마음) 이용우 2008.12.06 2382
23 생명보험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1320
22 허깨비 이용우 2008.12.06 1221
21 잉꼬 아침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1373
20 첫영성체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1677
19 숙제 (아이 마음 어른 마음) 이용우 2008.12.06 1238
18 달그림자 이용우 2008.12.06 1308
17 엔젤 마미 이용우 2008.12.06 1379
16 제비 이용우 2008.12.06 1639
15 양철지붕 이용우 2008.12.06 1538
14 헤븐 스트릿 이용우 2008.12.06 1949
13 그리운 질투 이용우 2008.12.06 1301
» 아파트 가족 이용우 2008.12.06 1377
11 마음항아리 이용우 2008.12.06 1198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2
전체:
32,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