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와이프 (동심의 세계)
2008.12.06 16:00
한국교육원에서의 소설 모임이 끝나고 두어 블록 떨어진 칼스쥬니어에서 커피와 잡담을 버무리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었다.
“얘, 그린 아빠야, 아직 모임 끝나지 않았어?”
누님의 전화였다. 이제 커피 뒤풀이 만 끝나면 제 고모에게 맡겨둔 그린이를 데리러 가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응, 이제 곧 끝나려고 해. 뭐 별 일 없지요?”
“별 일 없기는, 저 기집애가 그냥 찔찔 울고 난리가 났다니까 글쎄. 지금도 저 구석에서 울고 있어, 여기 웨스턴 찜질방인데 어지간하면 지금 와서 데리고 갔으면 좋겠어.”
“그래요? 알았어요, 지금 갈게.”
좀처럼 없던 일이라 몹시 궁금증이 일었다. 가끔 사정이 생기면 누님에게 아이를 맡기곤 했지만 이렇게 전화로 데려가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옆 사람에게 금방 다녀오겠다는 귓속말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그린을 픽업해서 곧장 집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모임에 참석한 어느 분을 댁으로 모셔다 드릴 약속을 한 터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린이 울음은 그쳐있었지만 벌건 눈자위는 그대로였다. 나는 차문을 열어 자리에 앉히고 곁눈으로 슬쩍 훔쳐보며 물었다.
“왜 울었니?”
그린은 뚱하게 부은 얼굴을 창밖으로 돌린 체 대답을 않는다.
"왜 그랬어, 무슨 장난쳐서 고모한테 야단맞았어?"
그 말에 그린이 성난 얼굴을 홱 돌리며 울음 섞인 음성으로 항변을 했다.
"노오, 나 장난 안쳤어!"
"어, 어 그래, 알았어, 화내지 마. 그럼 무슨 일로 울었어?"
"아빠 와이프 때매 울었어!"
"뭐, 아빠 와이프?"
기가 막혔다. 난데없이 아빠 와이프라니, 대체 그린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가만히 있었다. 앞을 주시하며 운전에만 열중했다. 잠시 그렇게 시간을 흘렸다. 그린이 불쑥 화를 내기는 하지만 마음이 여려서 오래가지 못한다. 더구나 아빠의 침묵으로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을 가장 참지 못하는 아이 이다. 얼마 가지 않아 예상대로 그린의 입이 열렸다.
"고모가... 아빠 와이프 해준다고, 거기... 찜질방에서... 어떤 아줌마하고 말했는데, 내가 그 아줌마 싫어서... 울었어."
나는 하마터면 하하하,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나는 목을 꺾어 웃음터널을 막고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 아줌마 베리 루드야, 보이스도 애깨깨깨 하는 하이톤이고, 아이도 이렇게 칭총챙 무섭게 생겼어."
곁눈으로 슬쩍 넘겨다보니 그린이 여자의 목소리를 흉내 낼 때는, 혀를 빼물고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칭총챙 ?어진 눈은 약지손가락으로 양 눈꼬리를 당겼다 내렸다 하며 모습을 그렸다.
"내가 저쪽으로 가다가 그 아줌마 발을 건드렸는데 그 아줌마가 나한테 얘, 잘보고 다녀야지,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하고 화를 냈어. 펄스널리티가 언컴퍼터블이야. 그래서 내가 고모한테 그 아줌마하고 말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고모가 쪼그만 게 뭘 안다고 그러니, 하면서 나한테 화냈어. 그래서 더 울었어."
그린이 3학년이던 이 년 전의 어느 날 프리웨이가 막혀서 이십 여분이나 늦게 학교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떠난 빈 교실에 보조 교사 한 사람과 그린이 남아 있다가 허겁지겁 들어선 나를 보고 그때까지 불안하게 기다리던 그린이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우는 아이를 다독여서 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지 않은 대화를 그린과 나누게 되었다. 그 대화의 발단은 그린의 불평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아빠, 왜 늦게 왔어?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와서 다 데려갔잖아."
"그린아, 아빠가 말했지, 트레픽 때문에 늦었다고.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있으니까 일찍 픽업할 수 있지만 너는 아빠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지."
"그럼 아빠도 와이프 만들어, 아빠 트레픽 있을 때 나 데려가게."
그렇게 전혀 짐작도 못한 말이 그린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새엄마에 대한 아이의 생각이 어떤지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러면 그린은 새엄마가 어떤 사람이면 좋겠어?"
그렇게 묻자 그린이는 눈을 굴리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는 아이처럼 생기가 도는 목소리로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말했다.
"오케이, 훠스터블 이스 프리티, 쎄컨원 이즈 나이스, 써드원 이스 드라이브, 댓스 ?!"
나는 그날 모처럼 유쾌하게 하하, 웃었다. 첫 번째 조건인 미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나 두 번째의 마음이 좋아야 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내건 드라이브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쁘고 나이스하면 뭘 할까, 운전을 못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없는데 말이다. 세 번째 조건인 드라이브는 그린에게 가장 절실한 현실적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린을 데리고 칼스쥬니어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이 '그린이 왔구나, 그래 어서와라, 뭐 먹을래?' 하며 반겨주었다. 그 중 한 여성회원이 얼른 그린의 손을 잡고 주문창구로 데려가더니 한 아름 먹을 것을 안겨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 먹구름이 끼었던 그린의 얼굴이 흡족한 표정으로 환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치킨너겟을 오물거리는 그린의 볼떼기에 입을 대고 살며시 물었다.
"그린아, 여기 있는 여자들 어때?"
내 물음이 무슨 뜻인지 안다는 얼굴로 그린이 쌔액 웃으며 슬금슬금 한 바퀴를 휘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 올 레이디 굿이야!"
“얘, 그린 아빠야, 아직 모임 끝나지 않았어?”
누님의 전화였다. 이제 커피 뒤풀이 만 끝나면 제 고모에게 맡겨둔 그린이를 데리러 가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응, 이제 곧 끝나려고 해. 뭐 별 일 없지요?”
“별 일 없기는, 저 기집애가 그냥 찔찔 울고 난리가 났다니까 글쎄. 지금도 저 구석에서 울고 있어, 여기 웨스턴 찜질방인데 어지간하면 지금 와서 데리고 갔으면 좋겠어.”
“그래요? 알았어요, 지금 갈게.”
좀처럼 없던 일이라 몹시 궁금증이 일었다. 가끔 사정이 생기면 누님에게 아이를 맡기곤 했지만 이렇게 전화로 데려가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옆 사람에게 금방 다녀오겠다는 귓속말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그린을 픽업해서 곧장 집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모임에 참석한 어느 분을 댁으로 모셔다 드릴 약속을 한 터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린이 울음은 그쳐있었지만 벌건 눈자위는 그대로였다. 나는 차문을 열어 자리에 앉히고 곁눈으로 슬쩍 훔쳐보며 물었다.
“왜 울었니?”
그린은 뚱하게 부은 얼굴을 창밖으로 돌린 체 대답을 않는다.
"왜 그랬어, 무슨 장난쳐서 고모한테 야단맞았어?"
그 말에 그린이 성난 얼굴을 홱 돌리며 울음 섞인 음성으로 항변을 했다.
"노오, 나 장난 안쳤어!"
"어, 어 그래, 알았어, 화내지 마. 그럼 무슨 일로 울었어?"
"아빠 와이프 때매 울었어!"
"뭐, 아빠 와이프?"
기가 막혔다. 난데없이 아빠 와이프라니, 대체 그린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가만히 있었다. 앞을 주시하며 운전에만 열중했다. 잠시 그렇게 시간을 흘렸다. 그린이 불쑥 화를 내기는 하지만 마음이 여려서 오래가지 못한다. 더구나 아빠의 침묵으로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을 가장 참지 못하는 아이 이다. 얼마 가지 않아 예상대로 그린의 입이 열렸다.
"고모가... 아빠 와이프 해준다고, 거기... 찜질방에서... 어떤 아줌마하고 말했는데, 내가 그 아줌마 싫어서... 울었어."
나는 하마터면 하하하,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나는 목을 꺾어 웃음터널을 막고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 아줌마 베리 루드야, 보이스도 애깨깨깨 하는 하이톤이고, 아이도 이렇게 칭총챙 무섭게 생겼어."
곁눈으로 슬쩍 넘겨다보니 그린이 여자의 목소리를 흉내 낼 때는, 혀를 빼물고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칭총챙 ?어진 눈은 약지손가락으로 양 눈꼬리를 당겼다 내렸다 하며 모습을 그렸다.
"내가 저쪽으로 가다가 그 아줌마 발을 건드렸는데 그 아줌마가 나한테 얘, 잘보고 다녀야지,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하고 화를 냈어. 펄스널리티가 언컴퍼터블이야. 그래서 내가 고모한테 그 아줌마하고 말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고모가 쪼그만 게 뭘 안다고 그러니, 하면서 나한테 화냈어. 그래서 더 울었어."
그린이 3학년이던 이 년 전의 어느 날 프리웨이가 막혀서 이십 여분이나 늦게 학교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떠난 빈 교실에 보조 교사 한 사람과 그린이 남아 있다가 허겁지겁 들어선 나를 보고 그때까지 불안하게 기다리던 그린이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우는 아이를 다독여서 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지 않은 대화를 그린과 나누게 되었다. 그 대화의 발단은 그린의 불평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아빠, 왜 늦게 왔어?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와서 다 데려갔잖아."
"그린아, 아빠가 말했지, 트레픽 때문에 늦었다고.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있으니까 일찍 픽업할 수 있지만 너는 아빠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지."
"그럼 아빠도 와이프 만들어, 아빠 트레픽 있을 때 나 데려가게."
그렇게 전혀 짐작도 못한 말이 그린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새엄마에 대한 아이의 생각이 어떤지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러면 그린은 새엄마가 어떤 사람이면 좋겠어?"
그렇게 묻자 그린이는 눈을 굴리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는 아이처럼 생기가 도는 목소리로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말했다.
"오케이, 훠스터블 이스 프리티, 쎄컨원 이즈 나이스, 써드원 이스 드라이브, 댓스 ?!"
나는 그날 모처럼 유쾌하게 하하, 웃었다. 첫 번째 조건인 미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나 두 번째의 마음이 좋아야 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내건 드라이브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쁘고 나이스하면 뭘 할까, 운전을 못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없는데 말이다. 세 번째 조건인 드라이브는 그린에게 가장 절실한 현실적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린을 데리고 칼스쥬니어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이 '그린이 왔구나, 그래 어서와라, 뭐 먹을래?' 하며 반겨주었다. 그 중 한 여성회원이 얼른 그린의 손을 잡고 주문창구로 데려가더니 한 아름 먹을 것을 안겨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 먹구름이 끼었던 그린의 얼굴이 흡족한 표정으로 환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치킨너겟을 오물거리는 그린의 볼떼기에 입을 대고 살며시 물었다.
"그린아, 여기 있는 여자들 어때?"
내 물음이 무슨 뜻인지 안다는 얼굴로 그린이 쌔액 웃으며 슬금슬금 한 바퀴를 휘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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