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는 21일은 ‘아버지의 날’이다. 아버지의 날은 1910년 미국의 한 여성이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을 지정해 달라며 국가에 청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후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날을 지켜오다가 1973년에 이르러 닉슨대통령이 공식적으로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지정하면서 미국의 국가 기념일이 되었다. ‘어머니 날’에 비하면 다소 무게(?)가 없지만, 그래도 기념일을 맞아 백 마디 미사여구보다는 ‘아버지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故 김현승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들 ‘아버지’에 대해 새로운 발견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이 시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모든 인간들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서 인간 본연의 순수함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시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과 같은 존재인 아버지를 노래한 시이다. 말없이 사랑과 근심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는 매일 매일의 힘든 수고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면서 외로움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어린것들의 순수한 피' 즉 자식들의 올바른 성장과 순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나름대로 이 분의 시를 분석한 한 평론가의 주석(註釋)을 보면,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즉 가족 단위에서 말하는 본래의 아버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 바람 세파의 어려운 현실적인 시련들에 문을 닫고 뜨락의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되고,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가족에 대한 염려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 날’을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즉 아버지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끄덕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근심과 걱정으로 인해 술자리에서 마음의 눈물을 흘리는...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이것이 동서 구분 없이 바로 우리들 아버지의 현대적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