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대기실 2
이월란(08-10-22)
군복무늬가 하얗게 표백당한 군용기 한 대 지상으로 복귀한다
영공을 날아다니는 꿈을 수비하고 돌아온 삶의 전투는
기착지마다 무디어진 무기들로 분리수거 당했고
탑승객들은 다시 미션으로 돌아갈 것이다
목자 잃은 슬픈 노마드 족들은 구름짬마다 집을 짓고
은익 같은 디아스포라의 화석을 새긴다
아직 전사자는 없다
다만, 일등석 중간쯤에 열 두 시간 동안의 기내식을 모조리 토해놓은
토사물이 그가 날아다닌 정처 없는 지상의 지도를 그려 두었을 뿐이다
날개가 없어도 머물지 못하는 행려의 자취는 원격조정당하고 있다
한적한 국내선, 상아빛 육질마다 혼혈의 고향이 묻어난다
물빛 해조음이 악센트를 달고 증발한다
대형실내화분들이 스넥바마다 작동 중인 랩탑 모니터 속에서
유년의 갈숲을 동시통역 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제 3국인이 지구를 굴리며 오고 있다
영혼의 질긴 뼈대는 기억의 생가 속에 미라처럼 누워 있고
지평선 너머 사막에 용접된 설원이 이젤에 걸린 화폭처럼 펄럭이고 있다
너울처럼 세월 걸친 어깨마다 환히 젖는 눈시울
우린 지층 속에 숨겨진 원유를 찾기 위해
그리움의 탄띠를 허리에 차고 화약고 같은 노을로 뛰어든 자살테러범
영혼의 동란이 수시로 폭파하는 적막한 분화구
희사 받은 종말의 안식을 위해 유방이 서른 개씩 달린 이방의 여신에게
절을 하며, 버리기 위해 움켜쥐는 야누스
본토발음으로 주문을 외어 나의 제사를 집전하는 모순의 은폐자
그리움의 해쥬에 빠진 이방인이 되어
빛의 순도 앞에 핼쓱해진 낮달이 되어
영혼의 절규가 익숙하게 세뇌 당하고 있는, 이 길도 알고 보면 초행길
지느러미 같은 활주로에 떠도는 영혼을 유도등이 제대로 유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