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내력
이월란 (2015-1)
신생아처럼 태어난 새벽이 하루살이처럼 날아오르고 벌떡 일어났던 아침이 허리를 꺾으면, 그새 늙은 혈맥이 잡히는 곳이 있다. 돌아보는 눈동자 어디쯤에는 맑은 소금기가 도는 곳이 있다.
타고 앉으면 급행열차가 되어 하루의 이름으로 지나치던 수많은 간이역, 빛의 동맥을 따라 휑하니 내려온 자취가 있다. 눅눅해진 소음이 목청을 잃고 어스름한 소실점을 따라 집이 되는 곳.
비밀한 꽃들은 반쯤 눈을 감고 야생화 한 마디씩을 주고받는데 이별이 자리를 펴기 좋은 곳마다 밤눈 어두운 골목은 블라인드를 내리고, 인공의 빛을 가둔 지붕마다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눈빛이 있다.
가난한 아침과 불행한 밤사이 버릇처럼 최면을 마시는 경계인들은 걸음이 느린 영혼을 불러들여 충혈된 노을의 두 눈을 감기는 곳. 화근이었던 꿈마저 끌어안고 나와 독대하는 그곳에 닿으면
어둠의 봉분 앞에 걸터앉아 빛 속을 뛰어다니다 찢어진 치맛자락을 꿰매고, 동면하는 겨울로 가는 길목쯤 유서 같은 낙엽이 날리는 저녁은 하루의 가을이었다. 임종을 앞둔 오래된 병실이었다.
검은 나비들이 부화하는 노숙인의 장지 같은 서쪽 하늘 어디쯤에 닿으면, 수의 같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더 늦기 전에 고백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만 전설이 되려 한다. 하늘도 얼굴을 붉히는 그곳에 닿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