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이월란 (2015-1)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구석구석 켜켜이 쌓인 세월을 들추어
다시 차곡차곡 진열해 두어야만 했다
잊힌 세간들이 유골처럼 묻혀 있었다
매수인들의 눈은 현미경처럼 빈틈을 노릴 것이다
천하에 공개될 알몸 사진이 두려워
확대된 가족사진은 현상금 붙은 몽타주처럼
일찌감치 벽장 속으로 감추었다
늙은 몸 치장하고 맞선 자리에 나간 듯
첫인상은 거래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성형이 필요한 결함을 숨기려
덧칠한 화장은 극히 자연스러워야만 한다
중개업자의 만능키로 현관을 따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화려한 인테리어와 전망 좋은 집을 기대하며
하자 없이 약점 잡힌 헐값을 찾아 발품을 판다
지나간 잘잘못을 따지듯 변기를 열어보고
성적을 매기듯 옷장 문을 열어볼 것이다
난방과 통풍을, 채광과 수압을 체크하는 깐깐한 소행들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는 합법적인 사생활 침해다
말 많은 주택가는 값이 매겨진 전단을 돌리며
시세와 실거래를 따져 물을 것이다
혐오시설 하나 없어도 나이는 부끄러운 과거다
동네마다 이 땅을 떠나고 싶은 욕망처럼
내놓은 집들이 넘쳐난다
저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려는 것일까
SHORT SALE 이란 낯 뜨거운 부적을 단 둥지는
일생을 망치고 뒷길로 숨어든 창녀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헐값을 부르고 있다
이해타산의 겨를 없이 본능적으로 펜을 들고
번개처럼 사인을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없을 것이다
세월이 만든 헌집은
등골 휘도록 상납해온 평생의 월급을 먹고
청산해야만 하는 허물이 되었다
협잡꾼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늘도 문을 따고 들어온다
전 재산을 건 사소한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시세는 하늘에 있고 땅은 실거래를 한다
욕심을 먼저 사버리고 급매로 내놓은 둥지가 위태로워도
중개인은 결코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우리는 초를 태워 케케묵은 행각에 향을 뿌리고
쳐들어오는 적군을 피해 도망치듯 집을 비운다
불행한 기억에 막 떠오른 햇살을 앉혀두고
외로움에 찌든 애견의 흔적마저 걷어내고
변장한 보금자리만을 무대 위에 남긴다
나의 과거를 송두리째 사 줄 누군가의 클릭을 기다린다
FOR SALE 이라는 간판이 지난 밤 거센 바람에
휘떡 넘어져 낙엽과 몸을 섞고 있다
유기견처럼 버려진 지붕이 떠돌고 있다
좌판 위에 나를 내 놓은 것처럼
집이 화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