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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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시평
2016.08.15 06:24

백남규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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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란의 시세계

-시의 화자와 어조를 중심으로- -백남규 (2010)

 

1.들어가는 말


시는 가장 주관적인 문학양식이며 시인의 독특한 개성이 언어를 통하여 표현된 미적인 세계이다. 시의 아름다움에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는 월란시의 내면세계를 분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시의 화자와 어조를 규명해 봄으로써 그의 시세계의 의미에 접근해 보고자한다. 시를 담화의 한 양식으로 보면 화자와 이 화자의 목소리인 어조가 연구대상이 된다. 화자는 탈<persona>이라고도 불리는데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어조는 화자의 말씨, 목소리 즉 시의 어투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화자의 제재와 청중,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화자의 <태도>로 정의된다. 화자와 어조는 시의 다른 구성요소들과 함께 시의 전반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의 주제를 살아나게 한다.

이월란시인은 시사문단(20072월호 신인상)으로 데뷔한 이후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 일기를 쓰듯이 한두 편의 시를 발표하고 있는데 경이적인 작품량을 보이고 있다. 문단 진출이후 3년동안 900여편의 시를 썼고 시집도 두 권(모노로그, 흔들리는 집-이하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이글에서 인용한 시의 출처는 이 두 시집임.)을 출간했다. 작품성도 인정받아 북한강문학상과 미주동포문학상을 수상했다.

 

2.진정한 자아를 찿는 시인의 목소리


월란시의 화자는 일인칭 화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인칭 화자가 사용되는 경우 시적화자는 시인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시는 수필과 마찬가지로 가장 주관적이고 고백적인 장르이다. 시인 스스로 자신의 시를 비밀일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일인칭 화자로 쓰인 시는 실제 시인의 목소리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시인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독백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를 화자와 청자의 대화체계로 본다면 화자와 청자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시인-(화자-함축적 화자-제재-함축적 청자)-독자. 이 때 시인과 독자는 텍스트 바깥에 존재하게 된다. 아래 시의 경우 청자는 화자 자신이다. 그러나 모든 시의 청자는 궁극적으로 텍스트 바깥에 존재하는 독자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나의 몸은 정확한 좌우대칭이었다.

아이 하나 낳고 나선 한쪽 귀퉁이 살점이 아이가 되었는지

휘청휘청 한쪽으로 자꾸만 기울어졌다.

아이 하나를 더 낳으면 다른 한쪽의 살점이 아이가 되어

평형을 되찿을까 하나를 더 낳았더니

달팽이관에 이상이 온 듯 같은 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횅하게 뚫린 틈새가 만져져 바람이 거센 날엔

시리다 못해 아리다.

평형감각이 완전히 퇴화했다.

반고리관의 림프액은 이제 수평의 세월을 잊었다.

자궁 속 아이들의 인자는 똑같아서 같은 부위의 살점만을

뜯어 먹고 자라는 것일까

아이들은 나만큼 자랐는데 빈 살집은 채워지지 않아

가끔씩 나를 주저 앉히기도 한다.

바람이 집을 지은 틈새가 가벼워지고 또 가벼워져

날아가려한다. 자꾸만 날아가려한다.

-분신 ,전문-

 

 

이 시는 화자인 내가 나 자신과 내적인 대화를 나누는 독백의 통화체계를 이루고 있다. 시적 자아는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졌다. 균형감을 찿기 위해 아이를 하나 더 가졌지만 몸은 점점 더 기울어졌다. 인간의 욕망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시의 화자는 아내와 며느리 그리고 아이를 낳은 어머니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살아왔다. 아이들의 키가 화자만큼 성장할 동안 기우뚱해진 몸은 더욱 가벼워져 어디론가 자꾸만 날아가려한다. 잃어버린 자신을 찿으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시적 자아가 찿은 길은 무엇일까? 아래의 인용시 포효를 보면 시인은 아마도 시쓰기에서 잃어버린 영혼의 분신을 찿으려고 하는 것 같다. 인간의 욕망중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왜 태어났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수하다. 우선 나는 여자다. 나는 홍길동이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등은 진정한 대답이 아니다. 이른바 진정한 자아을 찿아 길떠나기를 시작한 시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시인의 목소리는 당연히 진지하고 절실하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내가 좋아하는 시집을 읽었다. 몇백 년 침잠시켜

살포시 떠낸 청정수 같은 성정이 신의 메신저 같은 생언어로 피안의 담장

을 넘었다. 금 간 다기 같은 한 뼘 가슴에 고스란히 고여와도 난 여전히

한 마리 배고픈 짐승. 울어야한다.

대체 어떤 짐승의 소리로 울어야하나, 나의 몸을 검색한다. 사랑도 검색

당하고 진실도 검색 당하는 세상. 내 몸 어딘가에 오래전 삼킨 울음의

끝자락이 살짝 보일지도 모른다. 성대는 비어있다. 짐승의 이름은 업그레

이드가 중지되어 사실상 음성파일의 기능은 마비되어 있었다. 음메에 소

꿀꿀 돼지, 휘이힝 말, 멍멍 개, 야옹 고양이. 메에에 염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나의 울음소리는 이 집안에 없다.

문을 열고 뒤꼍으로 나갔더니 맙소사! 비는 언제부터 나를 기만하고 있었

. 허공은 지느러미를 내어 빗살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키 작은 잔디와

키 큰 나무들은 하나같이 물풀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파도가 그들 사이에

잡초처럼 자라나 뒤란 가득 바다가 채워지고 있었다. 피아골의 낮은 폭포

소리를 넘어 어지러운 비의 세상 한 귀퉁이에서 세상을 치는 드럼 소리.

그제서야 들려온다.에어컨 박스위의 함석판 뚜껑이다.

저 독특한 울음소리는 묘하게 흐느끼는 어중간한 바다 가운데서 내가 찿

던 바로 그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난리를 부르는 듯 생철판 가득 쏟아지

는 비의 함성.햇볕 따가운 사막의 집요한 침묵 속에서 비가 오면 제 몸

을 후두두득 치면서 세상을 뒤흔드는 저 울음소리. 클릭! 클릭!

화려하고도 요란한 목청은 조용히 다운로드 중이다. 양철 가죽을 두른 짐

승의 음성파일로.

-포효, 전문-

 

시에는 세가지 목소리가 있다. 첫 번째는 시인이 자기자신에게 하는 목소리이고 두 번째는 크건 작건 간에 시인이 그의 청중(독자)에게 하는 목소리이다. 세 번째는 시 가운데서 가공적인 인물이 또 다른 가공적인 인물에게 말하는 목소리이다. 이월란의 시에서는 첫 번째 목소리가 우세한데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의 토로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월란시의 대부분은 일인칭 현상적 화자만 나타나고 청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독자를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쓴 시가 많다. 이 경우엔 언어의 표현기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화자의 주관적 정조를 나타내기에 적합하다.

가슴에 금이 간 시적 자아는 그 틈을 메우려고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그래도 여전히 배가 고프고, 잃어버린 길을 찿을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로 울어보고 싶지만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억압된 울음이라 성대가 마비되어있다. 답답하여 문을 열고 뒤뜰로 나가니 요란한 빗소리가 들리고 있다. 앞을 가로 막고 사납게 쏟아지는 빗살 사이로 화려하고도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에어컨 박스 위의 함석뚜껑에 떨어지는 빗소리다. 이 시의 화자는 좋아하는 시인의 청아한 목소리보다 큰 목청으로 세상을 깨우는, 그런 시를 쓰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자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 화자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짐승을 발견한다.

 

입양을 했을까. 사냥을 했을까. 새끼를 친 적도 없는데

후미진 구석마다 짐승들이 기거한다. 울음소리가 들린다. 스산한 바람소리 같은

늑대, 여우, 사자, 살모사, 살쾡이, 스컹크 .....모두 모두 사이좋게도 살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의 몸 밖으로 뛰쳐나오려 호시탐탐 노리고들 있다.

휙 돌아보면 두 발자국에 깔려 있을 때도 ,가슴을 할퀴고 달아나 버릴 때도 있다.

이제야 말이지만, 육신의 우리안에 개미새끼 한 마리 키우지 않는 인간을

내가 본 적이 있던가.

아주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일수록 언뚯언뜻 눈빛마다 작은 짐승들이

뛰쳐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는 대놓고 자랑하기를,

자기는 잡다한 종류의 시시껄렁한 짐승들보다는 작은 편도 아닌

자기 체구보다 훨씬 큰 공룡 한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고 거드름을

피웠다.

난 그를 존경해마지 않을 수 없었다.

불빛에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그것들은 이목구비 손발 짓을 통해

어떡하든 몸 밖으로 뛰쳐나와 거리마다 널브러져 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난 옆구리 터진 순대처럼 널브러져 있는 사체 한 구를 보았다.

지난 밤 어둠 속에서 차에 치여 객사를 한 것이다.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식별하기조차 힘들었다.

<저런 장면 처음 봐?> 두 눈은 외면하는데 가슴은 자꾸만 기억해 내고 있다.

내 안에 있던 짐승임에 틀림없다.

-사육, 전문-

 

 

이 시도 일인칭 화자를 내세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청자는 표면상 드러나 있지 않다. 화자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고 봐야겠다. 짐승은 인간내면의 욕망을 상징한다. 우리는 그것을 쉽게 비난할 수만은 없다. 우리의 무의식 내부에 자리잡은 은닉된 욕망은 아무리 감추어도 바깥으로 새어나오기 때문이다. 욕망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충족시키는 데는 제한이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정한 틀에 갇힌다. 우리는 그것을 관습, 제도 ,규칙, 법률, 도덕 등으로 부른다. 아주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도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잖은 척 할 뿐이다. 시의 화자는 욕망에 솔직한 사람을 존경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거리에 널부러진 고양이나 개처럼 차에 치여 죽을지언정 욕망은 밖으로 튀어나오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바람이 오라 하면 허겁지겁 따라나선다.

 

바람이 오라 하면 나 따라가겠어요

맨발로 허겁지겁 따라가다 멈칫 뒤돌아도 보겠어요

눈먼 꽃들이 나 대신 울며 따라도 오겠지요

이름을 잊어버린 꽃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고

친절히 타일러 돌려보내도 주겠어요

가다가다 한가한 가랑잎에 한두 줄씩 시를 써주고

졸고 있는 꽃 이파리 희롱하다 붙들려 시껍도 하고

허기지면 설익은 열매 뚝 따 먹으며 즐거이 배탈도 나겠어요

, .바람이 오라 손짓하면 나 따라가겠어요

버려진 낡은 의자에 앉아 삐그덕 삐그덕

늙은 세월의 등이라도 긁어 주겠어요

별이 하릴없이 내리는 호반에선 나도 건달처럼 놈팡이처럼

천의 손가락으로 얌전한 호면을 휘저어 파문을 놓고

황혼의 햇살을 따라 냅다 도망질도 치겠어요

바람 속에 남은 눈물 마저 다 뿌려 주고

더 이상 젖지 않을 마른 소맷자락 나폴거리며

머리칼 헝클어진 광녀의 걸음으로 밴둥밴둥 돌아오다

그렇게 세월을 허비했다 혼쭐이라도 난다면

저 바람 탓이라 배시시 웃겠어요

-바람의 길 4-

 

 

윗시의 화자는 일인칭화자이다. 청자는 텍스트에 나타나 있지 않다. 화자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바람이 따라오라면 따라가겠다고 한다. 바람은 무엇인가? 어디에 매인 곳이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 아니겠는가. 임헌영씨는 이 시를 플라스틱 섹스세대다운 발상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노마드의 삶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해설했다.(흔들리는 집.124p) 원시적이고 순수한 생명의 길은 촘촘한 규율로 엮어진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광녀로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시적 자아는 경직된 보수적인 사람들의 비난을 받더라도 지금과 다른 새로운 삶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3.세상 둘러보기의 시-연민과 슬픔의 목소리


시란 시인이 사는 세상-당대 이웃들의 삶과 사회 상황-을 바라보고, 느낀 바를 적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과 마주 선 자의 긴장과 떨림, 울림이 있어야 좋은 시라 할 수 있다. 개인적 자아 찿기-나의 나됨-에 나선 시적 화자가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은 자아를 둘러싼 사회일 것이다. 시인은 이웃을 둘러본다. 지금은 후기 산업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시인을 둘러싸고 있음을 발견한다. 모든 존재는 누구나 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나선 삶의 나그네이다. 조선의 양반들은 벼슬살이를 통해서 남 위에 섬으로써 부유한 삶을 사는 것에다가 살아 있는 <나됨>의 뜻을 삼았다. 즉 나의 나됨을 찾는 길 위에는 자기가 선 사회의 제도와 관습이 장애물로 버티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퍼뜨리고 있는 관념-돈이 최고다-에 물들어 누구나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어 잘 사는데 나의 나됨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 많은 위태한 진실들을 딛고도 우린 당당히 서 있는데

그녀는 발이 빠졌다.

이 많은 거짓들을 상식이라 우린 유유히 흘려보냈는데

그녀는 붙들고 놓아주지 못한다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보헤미안처럼 정처 없어진 사랑에

우린 잠시 가슴 저렸을 뿐인데

그녀의 달아난 가슴은 평생 돌아오지 않는다

고막을 찢는 온갖 소음들 사이를 방음 고막을 가진 우리들은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데

그녀는 불협화음이라 손가락마다 피가 맺히도록 조율하고 있다.

우린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며 돈만 열심히 헤아리는데

그녀는 <돈이 전부일 때가 더 많았어>라며 열심히 마음만 헤아리고 있다.

잊을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다 잊은 척 우린 충실히 무대를 누비는데

그녀는 잊을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하나같이 잊지 못해 오늘의 대본조차 잊어버렸다.

삶의 시작과 끝을 마주 들고 서 있다면 살짝 미치는 것이 도리일진대

우린 도리를 잊어버리고 자꾸만 독해지는데

그녀는 도리를 다해야만 한다고 삶의 시작과 끝을 바꿔버렸다.

-광녀, 전문-

 

 

윗 시는 우리와 광녀를 비교하여 광녀가 사람다운 사람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우리라는 복수화자로 나타난다. 물론 우리중의 한 사람인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끝까지 복수화자의 시점을 유지했다. 청자는 텍스트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소음과 거짓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청자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 것은 나날이 독해지는 우리들을 반성하고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리라. 미친 여자가 오히려 바람직한 삶을 꾸려가고 있음은 가치가 전도된 시대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우리 시대의 슬픔은 많은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잘 먹고 입고 잘 살겠다는 꿈이 정말 꿈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자본주의 세상이다. 옳고 그름에 대하여, 좋고 나쁨에 대하여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눈을 감고 사는 사람을 양산해 내는 체제이다. 그저 나에게 이익이 되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을 오히려 깔보고 비웃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세상에 시비선악을 가리는 사람은 광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미국 인디언 보호구역을 여행하면서 시인은 세상의 딱딱한 모습을 본다. 하늘에 속하는 땅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는지를 이해 할 수 없는 선조를 둔 얼굴 붉은 남자는 겨우 관광가이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드넓은 평원을 백인들에게 송두리째 뺏기고 유폐되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모든 생명가진 것들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아는 자연의 형제들이었으며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들이었다. 자신들을 말살시키려는 문명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어머니 대지를 먼저 생각했고, 사물의 본성을 알아 그것으로부터 음식과 옷, 약과 도구들을 얻어낸 현자들이었다. 오염되기 전의 자연, 원초적인 신성을 간직한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던 인디언들이었다. 백인들의 위선에 찬 삶과 공허한 정신세계를 지적하는 그들의 연설은 아직도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정복자들은 정복된 땅의 모든 문화를 더럽히거나 없앤다. 일제가 조선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했듯이 말이다. 현대는 모든 것을 사고 파는 교환가치의 시대이다. 인간의 위엄을 드러내는 영혼의 시대가 아닌 것이다. 영혼까지도 더러운 돈으로 환산하려 하는 타락한 시대이다.

 

땅이 사람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뜨거운 신앙을 품고

사막 위에 낮게 엎드린 움막을 닮아 있는 저 비운의 민족

무지개 속에서 불과 물을 갈라내어 피륙을 짜고

햇빛과 물방울을 섞어 구슬처럼 목에 걸고 다니던 체로키 인디언

평원 위에 살아 숨 쉬는 혼백을 두고 불모지의 늪으로 밀려난 대지의 주인


해가 뜨고 지는 것이 그저 거룩하여 하루하루가 다 성스러웠고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대지에 엎드려 어미의 심장 소리를 듣던 구릿빛 꿈

바람을 벽 삼아 햇볕을 지붕 삼아 태어난 그들의 고결한 천국은

이제 생존을 위한 보호구역인가 멸족을 앞당기는 유폐지역인가

유약한 생존의 욕구가 땅을 빼앗은 자들의 마지막 양심 속에 아직도 살아 있다.

저 파웰 호수의 기암괴석 어디를 돌아도 눈 밑에 삼색페인트칠을 하고

머리에 깃털을 꽂은 그들이 말고삐를 잡고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히히잉 나타날 것 같은데

항복의 백기를 올리기까지 피비린내나는 망령의 춤을 그치지 않았던

그들의 절규는 승자가 쓰는 역사 속에서 한갓 사라져가는 본토의 전설


사냥을 해야 할 굵은 팔뚝은 관광객들을 위해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끝없는 대초원 위에서 말을 달려야 할 두 발은 투어가이드가 되어있다.

잘린 혀뿌리는 더 이상 아버지의 언어를 말하지 못한다.

접목 당한 잉글리쉬 꽃을 붉게 붉게 피우며 야생의 혈관 가득 백인의 피를 수혈하고

금렵 사인이 붙은 한적한 사냥터 같은 보호구역에서 오늘도 곱게 사육당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어떻게 사고파나요?

맨해튼 섬을 24불 가치의 장신구에 팔아 넘겼다는, 포커 한터스같은 추장의 딸은

구획 받은 한 뙈기 땅 위에서 오늘도 허기진 관광객을 위해 파스타를 나른다.

울타리를 몰랐던 그들의 발가벗은 순수는 보이지 않는 자물쇠가 되어.

그들이 발을 담그던 시냇물의 반짝임을 흉내 낸 네온등으로 담장이 쌓이고

살아서도 자랑스럽고 죽어서도 영광스러울 그들, 살육당한 전설의 피가

그랜드 캐년의 끝자락을 오늘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개스 스테이션 한 모퉁이에 투어 팀들을 세워 놓고 완벽한 영어로 설명을 하고 있는

엉덩이를 까보면 푸른 몽고반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같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저 붉은 남자

푹푹 찌는 이 더위에 털실로 짠 빵모자를 쓰고 있다.

멸족당한 조상의 얼이 선명히 새겨진 뇌파 속으로 흐르는

생소한 문명의 바람은 오랜 세월의 폭염 속에서도 저리 시린 것일까.

 

-붉은 남자 Red Man, 전문-

 

 

윗 시는 화자와 청자가 모두 텍스트에 드러나 있지 않다. 이 경우 제재 중심의 시가 되고 제제에 대한 관찰과 서술이 주된 내용이 된다.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유럽인들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남을 수단으로 삼아 자기의 행복이나 즐거움, 꿈을 이루려는 생각은 사악한 것이다.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만 그들(강자)에 의해 땅을 빼앗긴 인디언(약자)의 삶을 목격하고 가벼운 동질감을 느낀다. 변방의 오지를 보호구역이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그들을 가두고 사육하고 있는 비정한 그들을 함축적 화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텍스트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땅을 빼앗은 자의 양심속에 유약한 생존욕구가 살아있다는 구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들의 양심 때문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그들은 아주 나쁜 인간들이 아니라는 해석인지, 아무튼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는 표면상 표현되어있지 않다. 대신 부조리한 역사의 굴레속에서 신음하는 약자들의 좌절과 슬픔에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에대한 저항이나 분노보다 연민이나 동정을 노래하는 것은 억눌린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관련된다.

 

장기간의 낭패와 좌절,허무의 복용으로 냉소와 체념의

독이 전신에 퍼져있음.권력에 대한 고혈압,양심에 대한

저혈압 증세로 항체와 면역이 극도로 약화되어 있음.

초조와 불안의 담석이 자라고 있으며 이판사판의 쓸개도

제거해야함. 가치관의 혼란으로 혈류에 장애가 왔으며

용서의 심근이 경색되고 사랑의 동맥은 경화 중임.혈청

엔 불필요한 선입견과 독선의 과도한 노폐물이 쌓였고

희망의 백혈구와 꿈의 뇌수가 점차적으로 응고되고 있음.

욕심의 비만은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많고 물질 만

능의 염증은 외상이나 세균의 칩입에 대해 몸의 일부에

충혈,부종,발열, 통증을 동반할 것임. 나르시시즘의 과

잉은 과민성 신경장애로 이전될 수 있으며 팔자소관이라

는 안일한 처방은 거의 약발이 떨어졌음. 무수한 타성에

젖은 생활방식은 정상적인 노화현상과 함께 육체의 모든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음. 인생역전이라는 칼을 댄다면

막대한 출혈이 예상되며 거의 완치 불가능


-어떤 진단서,전문-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 풍경을 보이는 시이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병을 가식없이 드러내고 있다. 용서와 사랑의 감정이 거세된 채 냉소와 좌절감속에 허덕이는 사람은 시인을 포함한 이웃과 세상사람들일 것이다. 이 시에서는 드러난 화자와 청자가 없다. 화자가 텍스트안에 직접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다. 이 경우 대상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데 유용하다.

 

사람들은 아파서 웃어요

내가 아파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내가 서러워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많이 많이 울고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웃음이 나더군요.

.......

사람들은 아파서 웃어요.

사는 게 아프대요

 

-당신, 웃고 있나요?-

 

 

이 시의 화자는 일인칭 화자이다. 시인과 동일시 할 수도 있고 허구적으로 내세운 인물일 수도 있다. 텍스트에 청자가 드러나 있지 않다. 화자 중심의 시는 일인칭 화자의 내면 정서를 잘 나타낼 수 있다. 시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어조를 지니고 있다. 세상을 둘러보니 아픈 사람투성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슬프고, 아프고, 괴롭다. 내가 아파보니 남의 아픔을 이해하겠더라는 화자의 웃음의 철학, 어떤 웃음일까?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없는 노쇠와 죽음, 절망등이 앞에 놓여 있다. 이런 공포스런 사실을 앞에 놓고 우리들은 종종 웃음이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초연, 달관의 웃음이라고도 부르지만 이런 웃음은 좀 쓸쓸하고 딱하다.


4. 시쓰기 열망에 사로잡힌 영혼

문학은 그냥 씌어진 채로 있는 글이 아니다. 특정한 인물이 특정한 어조로 특정한 사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월란의 시중에는 제재가 시나 시쓰기인 것이 많이 있다. 나의 나됨의 정체성을 시쓰기에서 찿기 때문일 것이다. <중독-들의 병동에서>,<나쁜 시>,<오줌 소태> 최근의 <詩人是認 그리고 矢人>등이 있다.

 

나쁜


나 어릴적 엄마는 말했었다. 입이 닳도록

나쁜 짓을 하면 나쁜 사람이야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인간이야

알고도 나쁜 짓을 하면 더 나쁜 인간이야


달콤하고도 말랑말랑한, 애매해서 도무지 안개 같은 시

암컷과 수컷 간의 사랑 일색으로 식상한 연시풍의 시

자기감정을 과장해서 덧칠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 시

일회성의 공허한 유희만 있을 뿐 삶을 관통하는 반성적 성찰이 없는 시

안일한 감상주의와 자아 분열적 글쓰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시

상화의 개연성도 없고 개성도 없으며 시 정신을 철저히 망각한 시

시류적인 어투와 관념어,클리쉐(cliche)로 일관한 시

불필요한 산문형식과 억지로 만든 흔적이 앙상하게 드러난 시

삶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안이나 절실한 감동이 없는 시

절제와 균형이 부족하여 추상적 관념의 나열로 마무리된 시


이상,세상 곳곳에 무료로 비치되어 있는 진단서들이다. 눈 감고 어느 것을

집어들어도 기가 막히 내 증상이다. 저런 진단서들을 마주 대할 때마다

몸 소름 돋듯 통증이 되살아난다. 저 질기도고 촘촘한 그물을 빠져

나갈 재주는 내게 없다. 겁나게 똑똑한 사람들은 시시콜콜 밥알이 곤두서듯

짜증을 내고 있다. 속옷만 겨우 남겨둔 채 애써 치장한 내 옷을 벗겨 버렸다.

한 때 속치마 같은 속옷 패션도 유행은 했었다고. 거나한 밥상엔

구색만 갖춘 눈요기식 들러리 반찬도 더러는 필요하다고, 더 뻔뻔스러워

지지 않으면 이 짓을 더 이상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다.

뻔뻔스러워야만 했던 내 삶의 순간순간들을 죄다 끌어 모아서라도

더 뻔뻔해져야만 한다. 낙오되지 않을 정량의 목숨을 항상 유지 하는 것은

커트라인을 넘어선 뻔뻔함 속에 알몸을 늘 담가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명백백한 오류의 코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원죄를 안고서도 희망 없는

투병생활을 자처한 이 역마살, 완치의 길이 투병의 길보다 훨씬 쉬운 특

이병 앞에서 특이체질이라 인정하고 뒷걸음질 칠 때마다 적당한 자아도취

제도 복용해야한다.

풍성한 밥상에서 떨어진 밥풀 같은 글자들도 때론 찌든 허기를 달래줄 수

있을까

작심삼일 일지라도 매일 결심하고 매일 용서 받는 일기나 제대로 썼다면

지금쯤 난 아주 참한 인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쁜 시인 줄 알면서도 계속 나쁜 시를 쓰고 있는 난 나쁜 시인이에

.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기보다는 시 같지 않은 시를 쓰는 인간같은

인간이고 싶은.....

 

 

이 시의 화자는 시 같지 않은 시를 쓰는 시인이다. 현상적 청자는 엄마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독자가 청자일 것이다. 어릴 적 시인의 엄마는 나쁜 짓 하면 나쁜 인간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알고도 나쁜 짓 하면 더 나쁜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시인은 나쁜 시인 줄 알면서도 시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자신을 나쁜 시인이라고 고백한다. 시쓰기의 고통을 토로하는 화자는 자신의 시를 폄하하고 있다. 풍성한 밥상의 들러리반찬이라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상관없는 시라고 평하는 비평가들이 있지만 뻔뻔하게 시를 계속 쓰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내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낙오되지 않을 정량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헤밍웨이는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전쟁터를 좋아했다고 했다. 죽임을 당해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곳이라서 말이다. 이월란씨의 글쓰기는 어느 정도일까 가끔 궁금하다. 매일,밤낮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열망의 근원은 무엇일까.헤밍웨이는 선천적인 병이라고 고백했다.

 

손가방에

주머니에

책상 위에

싱크대 위에

침대 머리맡에


질금질금 지려 놓은 파지들

요도를 타고 내리는 오줌발처럼

지리고 또 지려도 돌아서면 또 마려워

주춤대던 악취가 향취로 변할때까지

여기저기 지려 놓은 주석註釋 없는 배설물


오줌길 가렵듯 삶이 지나온 가슴길 여기저기 가려워

싸질러 놓고도 낯뜨거운 삽뇨증에 걸린 여자처럼

무참히도 드러낸 치부가 시라는 너울을 쓰고

열없게 거리로 나간다.

처음 운전하는 아이가 차를 몰고 나가는 걸

지켜 볼 때처럼 내어 놓고도 마음졸이는 되새김질


늘옴치근에 힘을 주어도 질기게도 배어나오는

노르짱하게 오염된 관념들

지렁이의 배설물은 토양이나마 부드럽게 해준다는데


아래로 아래로 비워도

위로 위로만 차오르는 것들

내 몸 삼킨 흙 씹어 뱉지도 못하고

지렁이가 되어 꿈틀대기만 한다.

 

-오줌소태,전문-

 

 

시를 쓰고 발표한 후 마음 졸이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리고 지려도 돌아서면 또 마려워 여기 저기 지려 놓은 시들을 부끄러워하는 시적 화자의 고백이 진솔하다.

 

시를 쓰기 전에 나는, 시는 그냥 시인 줄 알았다.

시 속에 피어 있는 꽃은 그냥 꽃인 줄만 알았고

소 속에 솟아오른 산도 그냥 산인 줄만 알았다.

시를 조금,아주 조금 쓰고 보니 시는 그냥 시가 아니었다.

시 속에 피어 있는 꽃들은 돈이었고

시 속에 솟아오른 산들은 인맥이었고

시 속에 출렁이는 바다는 행사였고 후광이었다.

나는 나의 시가 가난하고 허접스러워도 그냥 시였음 좋겠다.

텅 빈 웃음소리로 빛나는 행사도 아니고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저 혼자 피고 지는 이름없는 꽃이었음 좋겠다.

누가 부르든지 부르지 않든지

저 혼자 단풍들다 시린 눈 맞는 산이었음 좋겠다.

저 혼자 파도치다 잠드는 바다였음 좋겠다.

나는 나의 시가 그냥 시였음 좋겠다.

 

-나의 시,전문-(미주문협,이월란 문학서재)

 

 

대학 졸업후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 아내와 며느리, 어머니로서 집안살림을 감당하면서 살았던 시인의 문학적 꿈은 어느날 돌개바람처럼 그녀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한 가슴을 시쓰기로 채웠다. 문단에 데뷔도 하고 상도 받았다. 일인칭 화자는 시인이다. 이 시는 시인과 화자를 동일 인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동안 열중하여 매일 시를 쓰고 발표했던 시인이 뒤를 돌아보니 텅 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정성이 결여된 박수와 칭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시 속에 꽃들은 돈이었고, 산들은 인맥이었다.’ 는 구절은 상업주의에 물든 시단의 풍토를 깨닫고 비판하는 목소리이다.

꿈은 실현되는 순간 그것의 무의미한 반면을 드러낸다.’ 는 말이 있다. 시인으로 인정받고 문학상도 받았다. 박수갈채와 환호속에 기분이 우쭐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시인을 둘러싼 것-사람들, 문단. 잡지사 ,문학행사 등등-들이 순수한 의미를 잃고 장사속을 드러낸 경우를 엿보기도 했을 것이다. 시쓰기에 골몰한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가난하고 수수하지만, 아무도 와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시를 쓰겠노라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4.고향을 그리워 하는 시


월란의 시중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가 상당수 있다. 태평양을 건너 낯선 미국땅에 살고 있으니 고향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시인을 낳아준 부모님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가. 개인적 존재인 나는 나를 낳아준 부모가 있다. 부모의 부모로 이것은 계속 이어진다.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인 까닭이다. 또한 인간은 살아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뒤를 돌아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현재가 괴롭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이민살이의 괴로움을 잠시 잊기 위해 이민자들은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

 

구름꽃을 밟으며 고향에 가면

담장과 싸우고 등지고 앉아

찰랑찰랑 햇살을 가지고 노는 콩만한 가시내 하나 있다.

공깃돌에 인 손톱가시 앞이빨로 자근자근 씹어 밷으며

땅따먹기로 차지 한 땅 가위로 잘라 귤빛 노을옷을 입혀 놓고

봇도랑 가에 외주먹 묻어 모래성 쌓고 있는 고 가시내


<토닥 토닥 토닥 토닥

까치는 집 짓고 송아지는 물 먹고

토닥 토닥 토닥 토닥

까치는 집 짓고 송아지는 물 먹고>


까치란 놈이 모래성의 단단한 아치형 등뼈를

세상 속에 버젓이 드리워 줄때까지

흰소리 같은 노랫가락 신들린 주문인 듯

모래성이 무너질까 세상이 무너질까 침이 타도록 불러재끼며

밥 먹으라는 엄마의 고함 소리 몰개 속에 묻어버리는 가시내

외주먹 뺀 집채 안에 호박꽃잎 뜯어낸 샛노란 촛불 밝혀두면

봇도랑 온 몸에 유채꽃으로 쏟아지던 햇살 보다 더 밝아지는 세상에

눈이 부셔 울었던 가시내


고향에 가면

까치가 되어 집을 짓고 엇송아지처럼 물 마시며

모래성 쌓고 있는 가시내 하나 있다.

 

- 가시내, 전문 -

 

 

추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세상살이에 지칠 때 과거를 돌아보며 그 때가 좋았지말하는 것, 추억이란 무지개색깔과 과일향기로 덧칠해져서 사람들을 가끔 위로한다. 이민 살이에 지친 화자는 돌아 갈 수 없는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세상 슬픔 모르고 놀던 가시내를 떠올리고 있다. 시인 자신의 유년시절 체험과 고향정서로써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는 <그리워라>,<별리동네>,<장대비>등이 있다. 화자와 청자 모두 텍스트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함축적 화자는 물론 시인자신이다.

 

5.맺음말

월란시의 화자와 어조를 살펴보았다. 정리해보면 시인은 주로 일인칭 화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어조는 자기 고백적 독백체가 많다. 시적화자인 나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주관적 감정토로에 열중하고 있다. 물론 일인칭화자를 상상적 체험을 통한 허구적 인물로 상정할 수 도 있으나 월란시의 경우는 시의 내용이나 체험, 절실하고 진솔한 감정을 볼 때, 시인과 화자가 일치한다고 봐야겠다. 화자 중심의 자전적 체험을 주된 제재로 하고 있다. 시쓰기를 통하여 개인적 자아의 정체성을 찿고 있으며 차츰 사회적 자아와 역사에 눈을 돌리고 있다. 개인적인 외로움이나 슬픔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가 짊어진 외로움과 슬픔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어느 시대나 시인은 그가 속한 언어공동체의 사람들의 아픔이나 슬픔을 드러내야하는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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