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을 베고 누운 고릴라
이월란 (2015-9)
시설에 들어온 기억은 없다
다만 눈을 떴을 때
정글을 베낀 초록벽과
불모의 영토가 익숙해져 있었을 뿐
눈을 감을 때마다 침묵하는 세상 속
사육 당한 기억마다 네 발이 자란다
몸의 일부가 된 만성 두통이
번갈아가며 이마 위에 새처럼 앉아
체온이 피어나는 거적대기를 한 번씩
오랜 세월처럼 들추어 보다
다시 누명처럼 뒤집어 쓴다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할 때마다
방음된 생명 하나가 유리벽 너머
쿵, 돌아눕는다
짙은 신음이 시든 꽃처럼 떨어지는
위조된 밀림 속
세상은 어디든 좁아 터져 있다
사람들이 하루빨리 집을 그리고
네모난 지붕 아래 서둘러 갇히는 것처럼
철조망이 없는 곳엔 깊은 웅덩이가 있다
하늘을 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 번씩 조물주처럼 등장하는 조련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사라진다
14불짜리 하루해가 뉘엿뉘엿 넘어지면
생사를 초월한 눈빛만 허공에 매달려 있다
세상은 크고 작은 동물원의 연속
벽을 쓰러뜨려 베고 누우면
한 마리의 어둠조차 따라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