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사의 노래를 듣노라면
-로마에서 생겼던 일
라디오에서 비제의 카르멘(Carmen) 제 2막에 나오는 ‘투우사의 노래’
가 흐를 때면 내 머리는 영락없이 로마로 간다. 기억은 꼭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3년 8월 이 때쯤에 로마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유럽 여헹목적지인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 길에 로마 경유, 파리를 거쳐 서울로 들어가는 여정 속에
로마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이태리 구두 등 쇼핑도 좀 하고 가까운
관광명소들과 교황청을 둘러보고 내일이면 로마를 떠나는 날 저녁에
일행 중의 한 친구와 함께 오페라 감상을 하기로 하고 호텔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극장으로 갔다.
맑게 개인 날 저녁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노천극장엔 벌써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입장해 있었다.
이날 공연되는 오페라가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Bizet, Grorgrs
1938-1875)의 작품 카르멘이었다. 내용은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비제나 카르멘은 조금 듣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작품은 아니라 생각하고
로마의 마지막 밤을 뜻깊게 보내기로 한 것이다.
다 알고 있는 바 대로 비제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대표적 작곡가로
성악교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0세 때에
파리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웠고 지메르만에게서 곡을
익혔으며 때로는 구노의 강의를 들었는데 ‘53년 지메르만이 죽은
후에는 알레비에게 사사하였기 때문에 구노와 알레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8세 때인 ‘56년에 칸타타 다윗(David)을 콩쿠르에 제출하여 입상한
뒤로 ‘57년에는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Clovis et Clotilde)로
로마대상을 받아 3년 가까이 관비 유학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서는
그 때부터 오페라 창작에만 주력했고 바로 이 카르멘은 1945년에 발간된
프랑스의 소설가 메리메(Merimee, Prosper/1803-1870)작품을 극화한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스페인으로 집시인 카르멘과 용기대龍騎隊의 사병 돈 호세
하사와의 연애, 그리고 갈등의 비극을 묘사한 작품으로 전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내는 그녀를 단도로 찔러 죽이는 비극인데 비제가 죽던 그 해인
1875년에 작곡, 3월 파리의 오페라코미크 극장에서 초연한 뒤 같은 해 6월,
비제가 37세로 요절할 때까지 3개월 동안에 33회나 공연된 유명한 작품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나중에 자료를 보고 알게 된 것이요, 그날 밤에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그 진수를 만끽해 보겠다고 찾아가서는 4막 끝까지를 다 감상도
못하고 나오는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이태리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한 때문도
없다하지 못하겠으나 성미가 급한 한국사람의 근성도 조금은 발휘되어서
가극은 거의 다 끝난 것 같고 또 완전히 땡 하고 막이 내린 뒤에 나서려면
복잡도 하겠지만 익숙지 못한 지리에 타고온 호텔 버스를 어떻게 찾을까
심히 걱정도 되고 해서 미리 버스에 올라타고 일행을 기다리는 것이 속 편
하겠다는 생각의 일치를 본 것이다. 밖에 나서니 수 많은 버스들이 줄지어
있고 기사들은 삼삼오오 질펀하게 앉아서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좀
이상하다 생각했다. 기사들이 출발 준비차 시동을 걸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리만큼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 때 제 4막을 여는 징소리가
크게 밖으로 울려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밖에서
마이크로 울려퍼지는 대사만 들으며 둘이서 웃음을 지으며 몹시 아쉬워 했던
기억이 지금도 ‘투우사의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으며 자꾸만 솟구친다.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카르멘’의 4막은 결국 듣도, 보도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아무튼 로마의 씁쓸한 해프닝을 주고 받으며 이튿날 친구와 파리행 비행기
수속을 다 마치고 레오날드 다빈치 공항 면세점에서 넥타이 몇개를 사는
동안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아서 출구를 찾아 나서는데 웬 공항이 그렇게도
크든지 아무리 달려가도 우리가 들어가야할 입구 번호가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촉박하고 파리에서는 영사관에서 마중을 이미 나왔을
시간이고 이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일정이 모두 어긋날거라는 착잡힌 생각을
하는 가운데 출구에 도착하니 공항직원이 투 레잍 하고 문을 걸어잠근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기내에 한 번 연락을 취해보도록 요청한 뒤 잠시
머뭇거리는데 기내에서 답이 오기를 들여보내라고 하였는지 문을 열어주어서
탑승할 비행기까지 특별 자동차로 움직였던 기억이 오늘 따라 새삼스러운데
그 때 본의 아니게 잠시나마 우리 때문에 파리행 비행기가 연발하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 그지 없었다.
<2003. 8. 12>
-로마에서 생겼던 일
라디오에서 비제의 카르멘(Carmen) 제 2막에 나오는 ‘투우사의 노래’
가 흐를 때면 내 머리는 영락없이 로마로 간다. 기억은 꼭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3년 8월 이 때쯤에 로마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유럽 여헹목적지인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 길에 로마 경유, 파리를 거쳐 서울로 들어가는 여정 속에
로마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이태리 구두 등 쇼핑도 좀 하고 가까운
관광명소들과 교황청을 둘러보고 내일이면 로마를 떠나는 날 저녁에
일행 중의 한 친구와 함께 오페라 감상을 하기로 하고 호텔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극장으로 갔다.
맑게 개인 날 저녁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노천극장엔 벌써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입장해 있었다.
이날 공연되는 오페라가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Bizet, Grorgrs
1938-1875)의 작품 카르멘이었다. 내용은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비제나 카르멘은 조금 듣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작품은 아니라 생각하고
로마의 마지막 밤을 뜻깊게 보내기로 한 것이다.
다 알고 있는 바 대로 비제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대표적 작곡가로
성악교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0세 때에
파리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웠고 지메르만에게서 곡을
익혔으며 때로는 구노의 강의를 들었는데 ‘53년 지메르만이 죽은
후에는 알레비에게 사사하였기 때문에 구노와 알레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8세 때인 ‘56년에 칸타타 다윗(David)을 콩쿠르에 제출하여 입상한
뒤로 ‘57년에는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Clovis et Clotilde)로
로마대상을 받아 3년 가까이 관비 유학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서는
그 때부터 오페라 창작에만 주력했고 바로 이 카르멘은 1945년에 발간된
프랑스의 소설가 메리메(Merimee, Prosper/1803-1870)작품을 극화한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스페인으로 집시인 카르멘과 용기대龍騎隊의 사병 돈 호세
하사와의 연애, 그리고 갈등의 비극을 묘사한 작품으로 전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내는 그녀를 단도로 찔러 죽이는 비극인데 비제가 죽던 그 해인
1875년에 작곡, 3월 파리의 오페라코미크 극장에서 초연한 뒤 같은 해 6월,
비제가 37세로 요절할 때까지 3개월 동안에 33회나 공연된 유명한 작품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나중에 자료를 보고 알게 된 것이요, 그날 밤에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그 진수를 만끽해 보겠다고 찾아가서는 4막 끝까지를 다 감상도
못하고 나오는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이태리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한 때문도
없다하지 못하겠으나 성미가 급한 한국사람의 근성도 조금은 발휘되어서
가극은 거의 다 끝난 것 같고 또 완전히 땡 하고 막이 내린 뒤에 나서려면
복잡도 하겠지만 익숙지 못한 지리에 타고온 호텔 버스를 어떻게 찾을까
심히 걱정도 되고 해서 미리 버스에 올라타고 일행을 기다리는 것이 속 편
하겠다는 생각의 일치를 본 것이다. 밖에 나서니 수 많은 버스들이 줄지어
있고 기사들은 삼삼오오 질펀하게 앉아서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좀
이상하다 생각했다. 기사들이 출발 준비차 시동을 걸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리만큼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 때 제 4막을 여는 징소리가
크게 밖으로 울려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밖에서
마이크로 울려퍼지는 대사만 들으며 둘이서 웃음을 지으며 몹시 아쉬워 했던
기억이 지금도 ‘투우사의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으며 자꾸만 솟구친다.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카르멘’의 4막은 결국 듣도, 보도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아무튼 로마의 씁쓸한 해프닝을 주고 받으며 이튿날 친구와 파리행 비행기
수속을 다 마치고 레오날드 다빈치 공항 면세점에서 넥타이 몇개를 사는
동안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아서 출구를 찾아 나서는데 웬 공항이 그렇게도
크든지 아무리 달려가도 우리가 들어가야할 입구 번호가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촉박하고 파리에서는 영사관에서 마중을 이미 나왔을
시간이고 이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일정이 모두 어긋날거라는 착잡힌 생각을
하는 가운데 출구에 도착하니 공항직원이 투 레잍 하고 문을 걸어잠근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기내에 한 번 연락을 취해보도록 요청한 뒤 잠시
머뭇거리는데 기내에서 답이 오기를 들여보내라고 하였는지 문을 열어주어서
탑승할 비행기까지 특별 자동차로 움직였던 기억이 오늘 따라 새삼스러운데
그 때 본의 아니게 잠시나마 우리 때문에 파리행 비행기가 연발하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 그지 없었다.
<2003.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