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천상병
2009.01.14 15:03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정끝별 시인]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정끝별 시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유튜브 박영숙영 영상'시 모음' | 박영숙영 | 2020.01.10 | 85 |
공지 | 님들께 감사합니다 | 박영숙영 | 2014.02.14 | 190 |
공지 | 저작권 문제있음 알려주시면 곧 삭제하겠습니다. | 박영숙영 | 2013.02.22 | 246 |
73 | [스크랩]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 박영숙영 | 2010.11.30 | 293 |
72 | 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 박영숙영 | 2010.11.30 | 499 |
71 | 호 수 /정지용 | 박영숙영 | 2010.11.30 | 402 |
70 | 사랑은/김남주 | 박영숙영 | 2010.11.30 | 271 |
69 | 가을 오후 / 도종환 | 박영숙영 | 2010.11.11 | 304 |
68 | 서릿발/ 최삼용(바브) | 박영숙영 | 2011.02.07 | 631 |
67 | [스크랩]ㅡ불밥/김종제 | 박영숙영 | 2011.01.30 | 386 |
66 | 꽃잎/도종환 | 박영숙영 | 2010.09.24 | 323 |
65 | 저무는 꽃잎/도종환 | 박영숙영 | 2010.09.24 | 283 |
64 | 어떤 생일 축하/법정 | 박영숙 | 2010.08.31 | 509 |
63 | 편지 / 김 남조 | 박영숙 | 2010.07.01 | 333 |
62 | Duskㅡ황혼 | 박영숙영 | 2012.08.22 | 300 |
61 | 석류의 말/ 이해인 | 박영숙 | 2010.02.25 | 439 |
60 | {스크랩}봄비 같은 겨울비 | 박영숙 | 2010.02.17 | 432 |
59 | 동지 팥죽의 유래 | 박영숙 | 2009.12.23 | 779 |
58 | 어머니의 손맛 | 박영숙 | 2009.12.23 | 532 |
57 | 직지사역/ 박해수 | 박영숙 | 2009.12.16 | 576 |
56 | [스크랩/인생은 자전거타기 | 박영숙 | 2009.12.09 | 444 |
55 | [스크립]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 | 박영숙 | 2009.12.09 | 437 |
54 | 길 잃은 날의 지혜/박노혜 | 박영숙 | 2009.11.18 | 773 |
53 | 도 종 환/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할 표현들 | 박영숙 | 2009.11.13 | 413 |
52 | 용서 / U.샤펴 지음 | 박영숙 | 2010.06.09 | 356 |
51 | 낙 엽 송/황 동 규 | 박영숙 | 2009.11.03 | 527 |
50 | 나뭇잎 하나가/ 안도현 | 박영숙 | 2009.11.03 | 437 |
49 | 가을에게 | 박영숙 | 2009.11.03 | 395 |
48 | [스크랩]인생의 그리운 벗 | 박영숙 | 2009.11.13 | 427 |
47 | [스크랩] 우정/이은심 | 박영숙 | 2009.11.13 | 397 |
46 | 울긋불긋 단풍을 꿈꾸다 | 박영규 | 2009.10.25 | 695 |
45 | 박노해/ "나 거기 서 있다" | 박영숙 | 2009.11.13 | 609 |
44 | [스크랩] 안부 | 박영숙 | 2009.11.13 | 445 |
43 | [스크랩}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박영숙 | 2009.09.28 | 345 |
42 | [스크랩]삶속에 빈 공간을 만들어 놓아라 | 박영숙 | 2009.09.28 | 481 |
41 | [ 스크랩]가끔은 애인같은 친구 | 박영숙 | 2009.08.27 | 356 |
40 | 시와 언어와 민중 의식 (한국문학(韓國文學) 소사 에서) | 박영숙 | 2009.08.20 | 483 |
39 | 새벽 /설램과 희망을 줍는 기다림 | 박영숙 | 2009.08.13 | 608 |
38 | 그 날이 오면 - 심 훈 - | 박영숙 | 2009.07.10 | 546 |
37 | 봄은 간다- 김 억 - | 박영숙 | 2009.07.10 | 597 |
36 | 초 혼 (招魂)- 김소월 - | 박영숙 | 2009.07.10 | 747 |
35 | 청 산 도(靑山道)- 박두진 - | 박영숙 | 2009.07.10 | 456 |
34 | 들길에 서서 - 신석정 | 박영숙 | 2009.07.10 | 857 |
33 | 나의 침실로 - 이상화 - | 박영숙 | 2009.07.10 | 588 |
32 | 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 | 박영숙 | 2009.07.10 | 750 |
31 | 가을비/- 도종환 - | 박영숙 | 2009.07.10 | 516 |
30 | 스크랩] 어느 봄날의 기억 | 박영숙 | 2009.04.23 | 451 |
29 |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 펌글 | 박영숙 | 2009.03.11 | 368 |
28 | 광야/이육사 | 박영숙 | 2009.01.14 | 436 |
27 | 산정묘지/조정권 | 박영숙 | 2009.01.14 | 473 |
26 | 잘익은사과/김혜순 | 박영숙 | 2009.01.14 | 532 |
25 | 산문(山門)에 기대어/송수권 | 박영숙 | 2009.01.14 | 612 |
24 | 푸른곰팡이 산책시 /이문재 | 박영숙 | 2009.01.14 | 514 |
» | 귀천/천상병 | 박영숙 | 2009.01.14 | 417 |
22 | 겨울바다/김남조 | 박영숙 | 2009.01.14 | 652 |
21 | 님의친묵/한용운 | 박영숙 | 2009.01.14 | 714 |
20 |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 박영숙 | 2009.01.14 | 406 |
19 |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 박영숙 | 2009.01.14 | 569 |
18 | 목마와 숙녀/박인환 | 박영숙 | 2009.01.14 | 356 |
17 |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 박영숙 | 2009.01.14 | 334 |
16 | 빈집/기형도 | 박영숙 | 2009.01.14 | 410 |
15 | 저녁눈 /박 용 래 | 박영숙 | 2009.01.14 | 336 |
14 | 대설주의보/최승호 | 박영숙 | 2009.01.14 | 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