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사의 날개

2011.01.29 08:36

홍원근 조회 수:317 추천:84



<재단사의 날개>
안마을 철도 건널목 건너가기 전에 있는 낡은 집에 사는 정태호를 만난 건 2년전이었다.텁수룩한 수염과 머리, 여윈 얼굴의 수많은 주름들은 이제 갓 마흔을 넘긴 그를 쉰살쯤 되어 보이게 하였다. 게다가 몇달을 빨지 않고 입었을지 모르는 누런 옷...

그는 소아마비로 두다리를 마음먹은 대로 쓰지 못하여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런 그가 안스러워 그의 집을 가끔 다녀오곤 했다.비록 다리를 못쓰지만 그의 손재주는 비상했다.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가지가 그의 손에서 쉽게 만들어져 나왔다. 어떤때는 플라스틱 끈으로 별 쓸모도 없는 큼직한 광주리 몇개를 만들어주면서 쓰라고 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두다리에 저렇게 힘이 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양복점에서 일류 재단사로 일하면서 결혼도 하고 잘 살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성복이 보편화 되자 양복점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정태호와 같은 재단사도 필요없게 세상이 바뀌었다. 자연 일자리가 없어졌고.... 돈도 못벌고 소아마비로 걸음거리도 시원찮은 태호를 두고 태호 처는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한다. 둘사이에 아이도 없었다

아내가 자취를 감춘 그날부터 태호는 술로 나날을 보내게 되었는데, 먹는 술의 양과 비례하여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두다리의 힘도 점점 약해져가서 결국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장날이 되면 휠체어의 휠을 양손으로 힘겹게 돌려 장터로 가곤 하였다. 몸이 약한 탓에 소주 석잔에도 만취가 되었다.

  술을 먹는 날의 태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애꿎은 부모들만 못살게 들볶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부모들이 딸이 있는 미국으로 피난삼아 살러 갔었는데, 지난 추석에 일시 귀국하였다가 폐인이 된 아들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리곤 딸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여러번 전화를 하였지만 가지 않고 아들을 돌보며, 틈틈이 식당일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밥 몇번 사주고 더벅머리, 더벅수염 깎아주고, 방 청소해주고,병원 업고가서 3급장애인인 그를 1급장애로 바꿔주는 것, 고작 그 정도밖에 못해 주던 차라 후유 -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돌아온 부모덕에 정태호의 생활은 단박 바뀌었다. 홀로 컵라면만 먹던 그의 입에 더운 쌀밥과 국이 들어가기 시작한 지 몇달이 지나갔다.

  지난 여름 끝무렵이었다.집앞 느티나무 그늘 아래 휠체어에 앉아 먼 산을 맥없이 쳐다보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가 대뜸,차 한대만 사주세요 하였다.
"차는 왜?"
"그걸 타고 멀리 가려고요.."
" 어딜?"
"갈만큼 가다가 다리 높고 큰 강물이 있으면 그리로 풍덩 빠지려고요."
  "......그럴 작정이라면 굳이 차를 따로 살 필요가 있을까? 내 차를 타면 되지. 태우고 가다가 높은 다리를 만나면 아예 두다리에 큼직한 돌을 달아서 강물로 던져줄게....."

기가 차다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 늦여름 오랜 가뭄에 기가 죽어가는 넓은 호박잎처럼 그의 웃음도 야박한 하루하루에 지치고, 걸 희망이 없는 앞날에 무기력해진 그런 웃음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그의 어머니가 힘없이 우체국에 들러
"우리 태호 안보고 싶어요? 요즘은 왜 그렇게 안왔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데 제가 가서 뭘 하게요?"
" ..... 태호 죽은지 벌써 보름이 되었어요"
" ......"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늙은 그의 어머니의 두눈에 흐르는 굵은 눈물이 사실임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봐도 태호 어머니는 그냥 울기만 하였다. 아직은 젊은 나이.....장애의 멍에를 지고 힘겹게 허덕이던 허망한 삶......가버린 태호 처에 대한 작은 원망이 엉뚱하게 마음 한구석에서 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강물에 빠지게 차를 사달라고 하던 그에게 다리에 돌을 달아주겠노라고 한수 더 뜬 농담을 건넸던 일이 가시처럼 가슴에 아프게 박혀왔다.

그리고 몇달이 지났던가.... 거리를 지나다가 아직도 남아있었나 싶게 양복점 간판이 눈에 띄길레 나도 모르게 무조건 안으로 들어갔다.제법 비싼 가격의 양복을 한벌 맞추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거나하게 취한 정태호가 휠체어를 밀며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듯한 환영이 언뜻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휠체어 뒤에 달린 두개의 손잡이에는 별 쓸모도 없는 노란색 광주리 두개가 달려 있었다.

다시 또다른 장면이 스쳐갔다.파란 강물 위에 놓인 높고 긴 다리위를 흰색 자동차를 타고거침없이 달려가며 싱긋 웃는 정태호의 사람좋은 얼굴이....
그다음 장면이 또 이어질까봐 심하게 도리질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아 태호는 푸른 강물위를 씽씽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왠지 보이지 않았다.다만 두개의 희디흰 날개가 소리없이 그의 등 뒤에서 펄럭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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