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배정웅 시인과 최면

2016.12.26 09:33

노 기제 조회 수: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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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기억 속 배정웅 시인과 최면

  

   “대표 작품 두 편만 제 사무실로 보내주십시오.”

  

   어느 단체의 장, 배정웅이라 밝히시던 전화 음성이 들린다. 겨우 글쓰기에 입문해서 등단이란 절차를 밟은 지 얼마 안 되었던 새내기 수필가인 내게, 대표 작품이란 것이 있을 리 없던 때다. 이미 이름 알려진 문인들의 작품을 두 편씩 모아 책으로 묶는 작업에 나를 불러 주신 깊은 배려다. 황공했지만 어깨를 으쓱 대고 싶었던 그 희열을 잊지 않고 있다. 아주 높은 나무를 올려다보듯 해야 했던 큰 키, 부드럽지만 우렁찬 음성, 온화한 표정에 항상 따스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던 문학의 대 선배님이셨던 배정웅 시인.

  

   지병으로 소천 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투병중이란 사실조차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상황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미주한국문인협회 행사 때마다 덕담이나, 격려사나, 축하 메시지, 또는 작품낭송 등으로 반드시 모습을 보이던 분이다. 그렇게 뵐 때 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마디씩 건네는 둘만의 독특한 주제로 짧은 대화를 하곤 했다.

  

   최면이다. 몇 달 과정 이수하고, 졸업식에 졸업증서와 최면사 자격증 까지 받았다. 그리고 써 낸 수필이 두 편. 최면에 관한 따끈따끈한 나 나름대로의 경험이었다. 배정웅 회장님 사무실로 찾아뵙고 제출했던 두 편의 수필로 후에 대화의 길이 생긴 것이다. 정성껏 읽어 주신 걸 알았다. 내 글의 내용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계셨다. 가슴에 뭔가 탁 맞고 자극 된 호기심을 폐기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시고자 최면 강의 듣기를 실천에 옮겼던 경우다. .

  

   그 당시 난, 여러 가지 갱년기 장애 증상으로 위급했던 지경이었다. 절박함으로 최면에 입문했던 나와는 다르게, 단순히 최면을 알고자 했던 배정웅 회장님께선 결국 아무 효과도 얻지 못하셨나보다. 언젠가 내게 고개를 갸웃둥 해 보이며 아닌 것 같다고 넌지시 동의를 구하던 모습에 키득 대면서 머리를 끄덕여 드렸다. 사실 난, 엄청난 효과를 봤는데 말씀 드릴 수가 없었다. 워낙 심한 우울증이었고 나이 들면서 늘어나는 배 둘레와 망가지는 내 몸매를 위해 확고하게 최면을 믿고 주문을 외웠었다. 게다가 강사가 내게 해준 최면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정성껏 걸었던 최면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던 것을 경험했던 때문이다.

  

   배 회장님이 최면에 관심을 보이시던 그때,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최면을 실습할걸. 시와 수필이란 다른 장르를 선택했던 관계로 배정웅 시인님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음이 안타깝다. 그 때 확실하게 최면으로 건강을 빌어 드리고, 평안함을 누리도록 마음을 써 드렸다면 지금처럼 떠나신 후, 아쉬움으로 답답해지는 순간은 피할 수 있었을 터.

  

   남기신 작품들을 통해서 후회 섞인 만남을 시도해야겠다. 문학이란 넓은 세상에서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후배를 향한 남다른 관심과 배려를 주셨던 귀한 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201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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