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기의 붉어지던 눈시울

2015.04.05 14:14

노기제 조회 수:160



20150201                오오기의 붉어지던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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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 기제”

   “아아, 굿모닝 오오기”

   몇 달 전, 모습을 보인 오오기. 낯선 이름에 어눌한 말투가 생소하게 느껴져 어디사람이냐 물었다. 몽골에서 왔다기에 한국말은 못하려니 영어로 얘기를 했다. 매일 아침 공원에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그룹에서다. 가입한지 얼마 안 된 나도 초중급자들과 어울리는데 실력 맞는 파트너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오오기가 처음 온 날, 누구하나 함께 치자고 불러 주지를 않으니 삐죽삐죽 불편하게 서성이던 그를 코트로 불러 함께 쳤다. 넉넉지 않은 아침 운동 시간에 초보자를 상대 해 주며 시간을 허비 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룰도 모르고 게임 카운트도 할 줄 모른다. 키는 178 센티 정도. 장신에 마른 체격이고 나이는 그저 40대 어디쯤으로 보였다. 나름대로 차근차근 룰을 알려주면서 함께 어울려 줬다. 가끔 한국말을 툭툭 뱉는데, 언니, 하지 마, 안돼, 아이구 참, 나쁘다, 아주 단편적 단어들만 사용하면서 자주 계면쩍어 하며 웃는다.

   나 보다 젊은 남자라서인지 나날이 실력이 좋아 진다. 요즘은 같이 파트너를 해도 그리 억울하지 않은 점수를 낸다. 가끔 연세 높으신 분들에게 언니, 언니 하기에, 어른들껜 사모님이라 부르라고 했다. 한 번도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몇 달이 지났다. 그저 그렇게 같은 날 나오면 같이 치고, 따로 만나 얘기를 해 본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인적사항을 들은 것도 없다.

   오랜만에 오오기의 모습이 보였다. 많은 회원들이 나와서 코트가 찼다. 멀거니 혼자 섰다. 빈 공간에서 난타라도 같이 치려고 손짓으로 불렀다.  몇 차례 공이 오고갔는데 지나가는 말처럼 내일 돌아간단다. 무슨 소린가 싶어 잠시 멈춰서 다시 물었다.

   80이 넘은 어머니가 아파서 몽골로 돌아가기로 결정 했단다. 미국엔 학생 비자로 와서 6년이나 살았단다. 무슨 공부를 얼마나 했나 했더니, 언어연수에 컴퓨터를 공부했다는데, 그게 제대로 된 학교에서 학위 따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에서 머물기 위한 수단이었다. 돈을 벌어 몽골에 있는 식구들을 보살펴야 했던 때문이다.

   몽골을 떠나면서 처음 택했던 나라인 한국에서는 3년을 살다 왔단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외관상으로 보면 전혀 차이를 알 수 없이 똑같은 점을 감안 했던 때문이다. 미국 문화보다 먼저 익힌 한국 문화다. 쉽게 융화 되리라 기대 했었지만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자연스레 선택한 지역이 한인 타운이었다.

   개인적인 얘기를 살짝 물었다. 몽골을 떠나기 전에 이혼을 했고, 딸이 둘 몽골에 있단다. 30대 중반에 뜻을 세워 홀로 외국 생활을 계획 했던 거다. 9년이란 세월이 지나 40대 중반이 되도록 열심히 살아 왔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주저앉는 모습이다. 고국에 두고 온 식구들도 보고 싶고, 확실하게 뭔가를 이룰 수도 없는 상태가 계속 되는 날들이다. 용기를 내서 돌아가기로 결심 했단다.

   그 동안, 체류 신분도 불법이 됐다. 막노동이라도 계속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지만, 일자리도 만만치 않다. 고정적 수입이 없는 불안정한 삶이다. 고향에선 목 길게 빼고 식구들이 기다린다. 날마다 얼마나 망설였을까. 영어도 한국말도 제대로 못한다. 세월만 보냈다는 자괴감에 우울하기도 했겠지.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 수가 있을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가슴이 먹먹해 온다.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엄마 드릴 선물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니? 밝게 웃으며 음식만 아니면 상관없단다. 아침운동 하러 나온 내가 뭘 갖고 있겠나. 적절히 쓰임 받기를 기다리는 준비 된 비상금뿐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아무래도 식구랑 같이 사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아들이 돌아온다니 어머니가 기뻐하실 터, 좋은 선물 사는 데 보태고, 널 다시 보면, 식구들이 많이 행복 해 하겠구나.

   물건이 아닌, 현금에 크게 놀라면서 순식간에 눈자위가 붉어지며 촉촉해진다. 나도 모르게 나도 젖는다. 갑자기 밀려오는 행복감이 우리 둘의 마음을 파란 하늘로 띄워 올린다. 울먹이며 애써 표현하는 말, “This is a first time." 그렇게 말 해 줌이 고맙다.

   내일 아침에 나오겠다며 총총 사라진다. 조금 더 줄 걸 그랬나? 순간 하늘에 묻는다. 또 내가 내 힘으로 어찌 해 보려 건방을 떨고 있는 거 맞죠? 내 기분대로 행하고 나면 반드시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

   지금은 도움 받고 기뻐하는 오오기 모습에 내가 흥이 나서 더 주고 싶지만, 인간의 결정은 부작용도 따르고, 자랑도 따르고, 아까운 마음도 따라 온다. 여기서 멈추자. 뭔가 인간의 방식대로 계산기 두드리며, 내가 그렇게 했는데 넌 고맙단 마음도 없냐? 뭐야, 괜히 걱정 했잖아. 내가 안 해도 충분히 넉넉한 사람인데 공연히 오지랖 넓은 척 손해 본거 아냐?

   얄팍한 생각에 벌써 기쁨은 사라진 듯, 밤참 설치고 오오기가 떠난다는 아침을 맞는다. 오오기는 벌써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공원에 와 있다. 완전히 사라진 눈가의 물기, 해맑은 얼굴로 “굿모닝 사모님”

   놀라운 일이다. 어제까지 “하이, 기제” 로 동년배 취급하더니, 가르친 지 몇 달이 되도록 한 번도 사용하지 않던 “사모님”이란 단어를 쓴다. 어제 내 나이를 알려 주면서, 선물 편하게 받아도 된다고 말한 결과다. 내가 너보다 대략 20년 정도는 더 살았다는 거. 다른 뜻은 없다. 내가 자란 내 나라의 따뜻한 문화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내게 행복감을 듬뿍 안겨준 오오기.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가볍고 행복하기를 빌며 크게 두 팔 벌려 안아 줬다. 다 잘 될 거야. 어머님도 두 딸도 친구들 친척들...... 다시 만나는 그들의 모습을 내가 미리 그려보며 오오기의 이루지 못한 꿈 대신, 식구들의 꿈이 이루어진 것에 focus를 맞추고 있다.

   날마다 배드민턴 치러 가는 아침 시간이면, “굿모닝 사모님” 하는 인사와 어우러진 오오기의 모습이 내게 보일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든다.
                                                       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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