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구경

2015.04.22 03:53

노기제 조회 수:340

20140415                        강 건너 불구경
                                                                노기제

   “이번 주, 금요일에 다들 오셔서 맛있는 저녁 한 끼 드세요. 공짜에요.”

   기타 동호회에서 제일 연로하신 홍선생님의 광고 멘트였다. 누구하나 관심있게 듣는 사람 없다. 공짜 저녁도 별 관심거리가 아니다. 잠시 후, 홍선생님이 나를 부르신다. “노선생님, 시간 되시면 자리 좀 채워 주세요. 돈은 제가 다 냈으니 영어가 되시는 분이 자리를 채워 주시면 한국사람인 우리들 얼굴이 좀 서겠는데요.”

   무슨일이기에 저리 애를 쓰시나 싶어 자세히 여쭤보니 혼다의원 후원의 밤인데, 한국사람들이 너무 나 몰라라 무관심이란다. 혼다의원이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기 조국인 일본에게 역사적 책임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 주도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제 15지역구 소속의 하원의원이다.

   가슴이 뜨끔했다. 나 역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듣고 흘리며 강건너 불구경 하듯. 어쩌면 활활 타는 불구경도 강건너 멀리 있으니 내게 불똥이 튈 경우는 전혀 없다는 안일한 자세였다.

   팔십을 넘긴 홍선생님은 징용군, 위안부와 같은 시대를 경험한 분이다. 이웃동네 꽃같이 예쁜 누나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어린 귀에 들린 사연은 나쁜나라 일본놈들이 강제로 끌어갔다는 토막 소식 뿐, 청년으로 장성한 훗 날, 누나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그 집안 어르신들 마저 야반도주 해서 텅 빈 집에 들러 아픈 그리움을 태웠다던 잔잔한 얘기를 들었다.

   공짜 저녁이 나의 관심꺼리가 되었나? 영어가 되는 사람이 자리를 해야 한다는 홍선생님의 말이 나를 이끌었나? 홍선생님의 간청에 마음이 동한 다른 회원들과 함께 후원회 장소에 갔다. 썰렁하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 쓰고 안내를 하는 사람 곁에 서서 그냥 들어가 테이블에 앉도록 우리를 직접 이끄시는 홍선생님을 따라 자리부터 차지했다.

   내 모양새는 공짜로 저녁 한 끼 때우러 온 사람임에 틀림 없다. 홍선생님은 연상 “아무 걱정 마시구 저녁이나 맛있게 드시면 되요. 내가 해마다 후원하고 있으니까요.” 어딘가 모르게 불편 해 하는 우리 셋, 기타동호회 회원들을 안심시키느라 표정이 바쁘다. 준비 된 테이블이 삼분의 일도 안 채워졌다.

   사람 모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짐에 주최측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우선 저녁을 서브하고 이어서 순서를 진행하겠단다.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다. 배가 고픈데 무슨말이 귀에 들어 오겠나. 그것도 전혀 관심 없는 주제를 논할 것인데.

    여럿 웨이터들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저녁상이 차려졌다. 간단한 도시락이다. 이런, 도시락 한 끼 얻어 먹자고 이 귀한 주말 저녁에 시간 쪼개서 여기까지 왔나 싶어 슬그머니 얼굴이 찌그러진다. 간단한 도시락이니 빨리 끝내면서 사회자가 혼다의원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동안, 스멀스멀 뭔가 내게 들어와서 가슴으로 얘기 한다. “진실을 밝히는 일” 이라고 자신있게 외치는 소리다.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믿기 때문” 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조국에 반기를 들었다는 용기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았다. 순간 “우리 조국의 정치인들은 뭣들 하고 있는가” 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곤 나를 돌아 본다. 위안부 문제가 거론 될 때 마다, 쌀 한톨만한 관심도 생기지 않던 내 마음, 우리들 마음이다. 그들이 당한 고통과 수치와 짐승만도 못하게 받았던 대우를 내 안으로 끌어 들여 느껴보자. 그건 개인이 당한 모욕이 아닌,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받았던 몸서리치는 치욕이었다.

   국가로 부터 보호 받지 못했던 총알받이가 아니었나. 이제 그랬던 역사를 온세계에 알리고, 흉악한 범죄자로 부터 직접 사과를 받아 내야 하는 것이, 그 시대를 피해 태어난 후세대들의 해야 할 당연한 권리 행사이며 의무라 생각한다.

   내가 그 시대를 용케 모면 했다 해서,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인양 들어 넘기던 날들이 부끄럽다. 조국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아 주고자 우리들 일에 앞장서는 혼다의원의 정의감을 우리 모두 조금씩 나눠 가슴에 두자. 단순하게 내나라, 네나라의 잘 잘못을 지적하기 전, 한 사람의 고귀한 영혼들이 꽃다운 시절에 무참히 밟혔던 역사를 무심히 덮어서는 안된다.

   일본이여, 아베 총리여. 더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행동들을 멈추고 너희들 후세에게 부끄러운 조국을 물려주는 시행착오에서 빠져 나오기를 서둘러라. 이번 미국 의회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라. 네게 주어지는 하늘의 축복이다. 세상을 향해 사죄하는 스피치를 네 입에 두실 하늘을 바라보라.

   위안부 문제, 아베총리의 사과, 일본의 과거사 속죄등 자신의 인생과는 무관하다고 피해가는 일은 현명하지 못하다. 따스한 우리들 가슴 귀퉁이에, 땅에 떨어져 밟힌 향기로운 꽃송이들을 간직하자. 그들의 희생이 값진 보석으로 태어나도록 우리가 마음을 모으자. 공짜 저녁 한 끼 대접 받고, 이처럼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나도 그런 기회 한 번 마련하고 싶다.

  이젠 강건너 불구경이 아닌, 직접 몸을 던져서라도 불을 끄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열린 가슴으로 모금함을 돌리면, 아베의 입에서 사죄를 끄집어 낼 충분한 힘이 모아질 것이다.

   “여러분, 그냥 오셔서 제가 베푸는 만찬에 응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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