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맞는 동지

2015.04.05 14:18

노기제 조회 수:319



20150211             뜻 맞는 동지
                                        노기제
  
  
   해가 바뀔 무렵 전후에는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송년회, 동창회, 신년 하례식 등 파티가 줄을 이어 개최 된다. 전화가 걸려오고, 초청장이 날아오고,  웹사이트가 부산하다.

   세상을 자신 있게 살 때는 대부분의 모임에 불참이다. 회비가 아까울 정도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과 가까이 앉아 정담을 나눌 수도 없다. 상품에 눈이 멀게 되고 욕심 낸 결과는 불필요한 물건들만 잔뜩 차지하게 된다
.
   관계자의 입장에선 상품이라도 많이 진열해야 회원들이 모일 것이니 무리하게 도네이션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뜻을 같이 해 주는 동지들 때문에 넘치는 상품을 준비하면 래플(raffle) 티겟을 팔아 현금을 만들어 기금 마련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다. 필요악처럼 어느 모임에서나 그렇게 행해진다.

   불 보듯 뻔한 파티의 양상이 마뜩찮아 오랜 기간을 불참으로 일관했다. 많은 모임에 발길을 끊고 사람과의 만남에 벽을 쌓아 자신을 격리 시키고 평온하게 살다보니 슬며시 골방 밖 세상이 궁금해졌다.

   누구하나 개인적으로 초청 해 주는 사람이 없다. 모임을 알리는 전화 메시지도 없다. 자발적으로 웹사이트에 들어가 클릭클릭 하면서 파티 날짜와 시간을 메모한다. 예고 없이 파티에 모습을 보인다.

   대형 모임이 아니라서 낯익은 얼굴을 만나 쉽게 인사도 나눈다.  반기는 말들에 두 귀가 호사한다. 오랜만에 참석한 파티니 나름대로 내가 바라는 정겹고 부담스럽지 않은 파티를 기대했다. 협소한 장소에 알맞게 자리를 메운 참석자들과 그들의 눈길을 잡아끄는데 부족함이 없는, 쌓인 상품들이 관계자들의 노고를 말한다. 많은 시간을 헌신하고 여러 사람이 애쓴 모습이다.

   모임 장소를 빌려서 파티를 주관할 때, 관계자들의 준비하는 시간을 빼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세 시간여 뿐이다. 사회자가 준비한 게임이나 다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시간에 상품을 나눠 줄 퀴즈까지, 래플 티켓 추첨 등 시간이 부족하다. 아니, 쌓인 상품이 너무 많은 것이 시간에 쫓기게 되는 첫 번째 이유다.

   숨차게 진행해야하는 사회자는 마음마저 허둥댄다. 그러다보니 계획에 없던, 곱지 않은 말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저 쪽 팀들 상품을 줄까요? 말까요?”
   단체로 상품이 나가야 진행이 빨라지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응석을 부리듯, 애교도 약간 섞어 버무려서 짤막하게
   “주세요.”
   “아니, XXX님은 상품 도네이션도 안하시고, 상품만 받으려고 하시네.”
   아차, 내가 실수 했구나. 나서는 게 아닌데. 난 이 모임의 회원도 아니고 손님의 입장에서 잠깐 들린 사람인 걸, 주제 파악을 못한 내 불찰이다. 미안한 마음에 그 후론 정신 바짝 차리고 입 다물고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이런 파티가 왜 필요할까.  저마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잠시 잊고, 필요하거나 말거나, 곱게 포장 된 상품을 듬뿍 받는 기쁨과 작은 위로를 맛 보라고? 큼직한 상품 여럿을 자기 자리에 쌓아 놓지만, 파티가 끝난 후 어찌 차로 이동 할 것인가.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과 관계자들의 노고와 셀 수 없는 상품과의 상관관계를 눈으로 계산하며 씁쓸해지는 기분은, 골방을 선호하는 나만의 느낌일까?  아무라도 붙잡고 묻고 싶어진다.

    아주 작은 것을 필요에 의해 바꾸어 보자고 뜻을 같이 하는 동지가 있을 때, 용기가 난다.  허다한 경우엔 혼자만의 생각이라 간주하고 입을 다문다.  주위를 둘러보며 같은 생각을 할 만한 사람을 찾아보다가 곧 포기한다.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바람직하지 못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난 사건을 떠올려 설명을 하고, 자신의 느낌에 동의를 구하는 순서가 그것이다.  남을 비난하기를 본인이 없는 곳에서 해야 하는 과정이다.

   차지한 많은 상품을 풀어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렇게 받았으니 다음엔 많은 상품을 도네이션 해달라고 종용하던 사회자의 요청을, 어찌 받아들일지 궁금증이 스친다.

    그 많은 상품 중 하나도 안 들고 조용히 파티장을 나서는 내게 누군가 빠르게 쫓아 나와 상품 하나를 건넨다.
   “아니에요. 지금 내 나이는, 있는 것도 하나씩 버리면서 사는걸요. 고마워요. 수고 많이 하셨어요. 다음에 뵈요.”

   닫았던 마음을 슬며시 풀고 격주로 다녀 온 두 곳의 파티가 한 치의 다름도 없이 똑 같았다.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열성이 측은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뜻이 같은 사람 몇 찾아서 마음을 모아, 변화를 주면 좋겠다. 다 같이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소박하고 간소함 속에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파티를 하자고, 기회가 오면 용기를 내어서 건의 하고 싶다.  다음, 해가 바뀔 무렵에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20150401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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