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오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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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또 다른 하루

2022.03.26 15:11

강창오 조회 수:25

에취! 쇼핑몰 코너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중 목에 허가리가 걸려왔다. 큰 재채기 소리가 미안해 얼른 사방을 둘러봤다. 지나치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젊은 청년 하나가 빙긋이 웃으면서 “Bless you” 하며 옆의 가게로 들어갔다. “Thank you”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데 테이블 저 켠에 앉아있던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 하나가 티슈 다발 하나를 내밀면서 쓰라고 했다. 하나만 뽑아 쓰려고 하니까 자기는 더 있다면서 다른 티슈 다발을 꺼내 보여주었다.

친절을 베풀어줘 고맙다고 해놓고 보니 로컬 여인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액센트가 귀에 꽂혔다. 내친김에 모국어가 뭐냐고 물었더니 아르메니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수단의 수도 카르투움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내가 호기심에 어떻게 그렇게 먼거리를 뱅뱅 돌아서 런던까지 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아주 흔쾌히 그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세대가 터키에서 살고 있을 때 크리스챤인 아르메니안들을 핍박하기 시작해서 몇몇 사람들과 함께 배타고 도망나왔는데 막상 다다른 곳이 수단이었단다. 그녀 자신은 거기서 낳고 자랐는데 아버지가 2차 대전때 영국군에 입대해 싸웠고 1971년에 그녀가 7 살이었을 때 급기야 온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아까 “Bless you”하며 상점으로 들어갔던 젋은 청년이 그 여인에게 접근해 물건을 건네준 뒤 서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아들이나 친척 인것 같았다. 아무튼 그녀에게 나의 짧막한 지식으로 아르메니아와 수단의 지리적 배경을 얘기했더니 놀라움을 표하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박해받던 시기가 1900년초 오토만 터기 제국의 아르메니안 대 학살 시기냐고 물었을때는 완전히 감동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영국땅에서 만난 일반 사람들 가운데 그 역사와 지리적 배경을 아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하면서 알아줘서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그 젊은 청년 역시나 내가 자신들의 역사적 입장을 알고 있었다는데 대해서 연신 미소를 지으며 끄떡였다. 이어 대화를 나누게 되서 고맙고 이젠 가야겠다며 일어서는데 그녀는 불쑥 내 손을 잡으려다가 머쓱해하며 힘차게 악수를 청하지 않는가? 판데믹 시기라 기꺼이 악수 대신 팔꿈치대기 인사로 끝내고 헤어졌다.

이번에는 쇼핑몰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료를 내려고 티켓을 스캔했다. 4파운드 정도였는데 코인을 넣는 구멍이 계속 막혀있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어리둥절 하고 있으니까 뒤에 있던 젊은 인도계 여인이 그 머신은 카드만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맞은편에 있는 머신으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그녀가 들고있던 카드를 덥썩 찍어주며 됐다고 했다. 나는 뜻밖에 받은 호의에 고맙다며 4파운드를 주려 했지만 나중에 혹시 그 돈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라며 받기를 거절했다. 물론 액수가 문제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서슴치 않고 도와주는 그녀의 선의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아무튼 오랫만에 거리를 걸을겸 쇼핑몰에 나왔는데 뜻하지 않았던 이 두 가지 일로 작은 보람을 느끼는 또 다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