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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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 아침에] 칠순에 졸업장을 받다

이희숙 수필가

이희숙 수필가

육 학년 칠 반에 입학했다. 가슴에 손수건을 단 아이처럼 설레며 컴퓨터를 열었다. 이국땅에서 50여 년이 지나서야 단발머리 문학소녀의 꿈을 찾았다. 뒤늦게 시작한 탓에 은퇴 후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에 대한 초석을 닦았다. 문학사와 시, 수필, 아동문학, 소설, 희곡, 논술과 독서지도까지 섭렵하며 새벽잠을 깨웠다. 많은 책을 읽고 감상 리포트를 쓰며 몰두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쓴 시, 동화, 소설을 학과 게시판에 올리면 학우들이 읽고 자신의 소견이나 평을 써 올렸다. 그 후 실시간 줌으로 교수님과 함께 합평 시간을 가졌다. 합평을 들은 후 교정하고 퇴고한 글을 다시 제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을는지.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지식의 깊이를 더했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묵은 뇌를 새롭게 하여(renew) 한결 젊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태평양을 건너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한국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장소와 시차를 극복하며 공부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졸업이란 학생이 학교 규정에 따른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친다는 의미다. 나 또한 졸업이라는 과정을 통과했다. 시골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서울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기대로 부풀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쏟아지는 함박눈이 내 앞길을 축복해주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선 대학의 좁은 문을 통과해 넓은 학문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열망으로 차 있었다. 교육대학 문을 나설 땐 긴장했다. 교육 현장에 나가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으리라.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먼저 유아교육(Early Child Development) 과정을 공부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커뮤니티 2세 교육의 뜻을 펼치고자 어린이학교를 설립해 30년간 운영했다. 해마다 졸업식을 성대하게 준비했다. 그들의 성장과 활동을 담은 앨범을 제작하고 트로피를 수여하며 마음껏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축하객 없는 졸업식을 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어 식장을 정성껏 마련했다. 졸업생 한 사람씩 순서를 진행하며 학교 문을 내보내야 했다. 마스크 속에서 안아줄 수도 없는 서운함을 남긴 채. 그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평생 해오던 일을 내려놓으며 은퇴했다.
 
내 나이 칠십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이수함으로 졸업이라는 문에 이르렀다. 돋보기 속 아픈 눈을 비비며 책장을 넘겼다. 새벽 3시에 열리는 실시간 합평 세미나를 위해 밤잠을 설치는 어려움을 겪었다. 형설의 공을 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지. ‘해냈구나! 잘했다!’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길 원했다. 졸업장에 금테를 두르는 걸로 대신할까?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나를 위한 졸업 축하 카드를 만들어 보았다.
 
졸업을 한 단계에서 할 몫을 다 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남기고 싶다. 남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출발로 다가온다. 이제 배운 이론과 실기를 좋은 글쓰기에 적용할 터.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오직 내가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이희숙 / 수필가

 

   (퇴고)   칠순에 졸업장을 받다

                                                                                                                                이희숙

육 학년 칠 반에 입학했다. 가슴에 손수건을 단 아이처럼 설레며 컴퓨터를 열었다. 이국땅에서 50여 년이 지나서야 단발머리 문학소녀의 꿈을 찾았다. 뒤늦게 시작한 탓에 은퇴 후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에 대한 초석을 닦았다. 문학사와 시, 수필, 아동문학, 소설, 희곡, 논술과 독서지도까지 섭렵하며 새벽잠을 깨웠다. 많은 책을 읽고 감상 리포트를 쓰며 몰두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쓴 시, 동화, 소설을 학과 게시판에 올리면 학우들이 읽고 자신의 소견이나 평을 써 올렸다. 그 후 실시간 줌으로 교수님과 함께 합평 시간을 가졌다. 합평을 들은 후 교정하고 퇴고한 글을 다시 제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을는지.  

실용 영어 및 독해와 작문, 예술과 정신, 생활 심리학, 디지털 사진, 스토리텔링 등의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지식의 깊이를 더했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묵은 뇌를 새롭게 하여(renew) 한결 젊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태평양을 건너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한국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장소와 시차를 극복하며 공부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졸업이란 학생이 학교 규정에 따른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친다는 의미다. 입학한 뒤 여러 학습활동에 참가하여 능력이 신장하고, 각종 시험에 합격하는 등, 학칙이 규정한 교육과정을 모두 끝마쳤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졸업은 상급 학교를 준비하거나 사회로 나가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 또한 졸업이라는 과정을 통과했다. 시골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서울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기대로 부풀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쏟아지는 함박눈이 내 앞길을 축복해주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선 대학의 좁은 문을 통과해 넓은 학문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열망으로 차 있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밀가루를 뒤집어쓴 짓궂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다. 검은 교복에 갇혀 살던 생활을 청산한다는 의미로 대비되는 흰색 밀가루를 뿌린다고 했다. 교육대학 문을 나설 땐 긴장했다. 교육 현장에 나가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으리라.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먼저 유아교육(Early Child Development) 과정을 공부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그것을 발판 삼고 한국 교직 경험을 접목하여 커뮤니티 2세 교육을 위해 뜻을 펼치고자 어린이학교 (Preschool, Kindergarten, Afterschool)를 설립해 30년간 운영했다. 해마다 소정의 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위한 졸업식을 성대하게 준비했다. 그들의 성장과 활동을 담은 앨범을 손수 제작하고 트로피를 수여하며 마음껏 축하해 주었다.

우리 학교에 예쁜 꽃들이 피어난 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를 맞았습니다./그지없이 여리던 꽃망울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얼마나 탐스럽게 자랐는지요/기쁜 오늘, 피어오른 사랑스러운 꽃들을 모아 더 큰 세계로 보내려 합니다./우리의 작은 정성과 기도와 축복을 한데 모아 그들의 앞날에 뿌려 놓으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축하객 없는 졸업식을 해야 했다. 거리두기로 인해 한자리에 모일 수가 없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어 식장을 정성껏 마련했다. 졸업생 한 사람씩 순서를 진행하며 학교 문을 내보내야 했다. 마스크 속에서 안아줄 수도 없는 서운함을 남긴 채. 그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학교 문을 닫았고 평생 해오던 일을 내려놓으며 은퇴했다.  

혈액암으로 투병했던 소녀가 있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학교 교정이 아닌 병원에서 잘 견디어 냈다. 가족의 사랑 안에서 희망을 키우는가 했는데 그만 병이 재발하고 말았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하늘은 작은 별을 품고 말았다. 그 소녀가 떠나기 전날, 학교 교장 선생님이 병실로 찾아와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저렸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추었다. 나는 눈부신 가로수길을 손 흔들며 걸었다. 앞에 보이는 상아탑을 향하는 발걸음은 힘찼다. 인생의 시월 어느 날, 졸업 앨범을 펼쳐본다. 젊은 나를 사랑했었다고.  

내 나이 칠십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이수함으로 졸업이라는 문에 이르렀다. 돋보기 속 아픈 눈을 비비며 책장을 넘겼다. 알람 없이도 새벽마다 눈이 번쩍 떠졌다. 새벽 세 시에 열리는 실시간 합평 세미나를 위해 밤잠을 설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주일에 네 번, 다섯 시간 동안 남편 투석 간호사 역할을 해야 했기에 틈을 쪼개 강의를 들어야 했다.

형설의 공을 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지. '해냈구나! 잘했다!'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길 원했다. 고국을 방문하여 졸업식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망설임 끝에 생각을 바꾸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 훌훌 털고 떠나기도 어려운 처지다. 졸업장에 금테를 두르는 걸로 대신할까?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나를 위한 졸업 축하 카드를 만들어 보았다.  

졸업을 한 단계에서 할 몫을 다 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남기고 싶다. 남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출발로 다가온다. 이제 배운 이론과 실기를 좋은 글쓰기에 적용할 터.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오직 내가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