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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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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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51120/1590062

(20251121일 한국일보 금요단상)

낙엽 위에 남겨진 향

이희숙

 

가을 햇살마저 저물어 가는데,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시 낭송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낙엽 위에 적힌 이야기가 남아 있는 향으로 전해진다.  

K 작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20217, 내 첫 시집과 동시집 출판기념회에서였다. 안면이 없었지만, 쾌히 오셔서 <코알라의 꿈> 동시를 암기하여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해주셨다. 미주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위원장으로서 원고를 청탁하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밝은 에너지로 동심을 위한 글쓰기에 적극적이셨다.  

어느 날 투석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혀요. 남편 투석을 돕는 선생님이 크게 보입니다. 지금은 상태가 별로 안 좋아요.” 근심에 가득 찬 메시지를 받았다. 남편이 신장 투석을 받게 된 지 세 번째 해이기에 내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분을 격려했다.  

목요일부터 복막투석을 위해 교육받기로 했어요. 그동안 음식을 너무 가려 먹어서 몸도 많이 상했어요. 잘 먹고 옛날 모습대로 명랑해지려고요. 질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봅니다. 선생님의 격려에 힘을 얻습니다.”라며 긍정적으로 애쓰셨다.  

241, ‘투석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투석하는 경과를 가끔 알려주기도 했다. “이번 주엔 피가 너무 부족해서 일단 투석을 미루고 조혈 주사 주 1회씩 6주간 맞고 다시 피검사 하기로 했습니다. 투석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이 소중하고 값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으나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마지막 날이 될 거라는 걸 예감하셨을까?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 추진하셨다. <시인 만세>를 창단하여 시와 쉼표가 있는 콘서트를 동인들과 준비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선생님은 백십 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라는 시를 절규하듯 읊으셨다. 그 열정은 내 가슴에 고스란히 아로새겨졌다.  

그해 8월 미주문협에서 문학 캠프를 개최했다.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룸메이트가 되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몸이 자꾸 붓는 현상 때문에 의사를 찾아 의논한 결과, 참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동화책 출간에 힘을 쓰셨다. 동화책 <할리우드 블러바드의 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전히 고우신데 남의 부축에 의지해 참석하셨다. 너무 빠른 속도로 건강이 나빠지지 않는가.  

요사이 선생님의 동화집을 읽고 있어요. 선배님 뒤를 이어 저도 동심을 아름답게 언어로 짜 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 빛을 간직하고 곁에 계셔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지만 읽으셨을까? 눈도 희미하고 귀도 안 들리신다고 했다. 응답이 없는 나의 다짐으로 남아야 했다.  

251031일에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어쩌나! 찾아가 뵙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으로 머무름과 이별 사이에서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쓴다. 그분의 마음 조각이 낙엽 되어 흘러가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분을 기억하는 모든 시간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선생님, 생명 강가에서 좋은 글로 세상을 적시며 길이 머무소서!”

 

   

(수필) 낙엽 위에 남겨진 향

 

  썸머타임이 해제되니 땅거미가 서둘러 내려앉는다. 가을 햇살마저 저물어 가는데,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시 낭송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낙엽 위에 적힌 이야기가 남아 있는 향으로 전해진다.  

  K 작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20217, 내 첫 시집부겐베리아 꽃그늘과 동시집노란 스쿨버스 출판기념회에서였다. 난 은퇴 후 뒤늦게 글쓰기에 매진한 터라 문인들을 잘 알지 못했다. 선생님이 시 낭송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부탁을 드렸다. 안면이 없었지만, 쾌히 오셔서 <코알라의 꿈> ‘높다란 나뭇가지에서 코알라 두 마리가 살아요아기 코알라는 엄마 등밖에 몰라요. 엄마 엄마 부르면서 순둥이 꿈들만 꾸며 살아요라는 동시를 암기하여 낭랑한 목소리와 멋있는 제스처로 낭송해주셨다. 그게 인연이랄까, 미주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위원장으로서 가끔 원고를 청탁하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밝은 에너지로 동심을 위한 글쓰기에 적극적이셨다.  

  어느 날 투석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혀요. 남편 투석을 돕는 선생님이 위대하게 보입니다. 몸 컨디션에 따라서 다른데 지금은 상태가 별로 안 좋아요.” 근심에 가득 찬 메시지를 받았다. 남편이 신장 투석을 받게 된 지 세 번째 해를 맞이하였기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분이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격려했다좋은 영향과 힘을 보탤 수 있었을까?

  “다음 주 목요일부터 복막투석을 위해 교육받기로 했어요. 그동안 음식을 너무 가려 먹어서 몸도 많이 상했어요. 잘 먹고 옛날 내 모습대로 명랑해지려고요. 질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봅니다. 선생님의 격려에 힘을 얻습니다.”라며 긍정적으로 대처하려 애쓰셨다. 그 후 투석을 위해 수술받으셨다.  

  241, ‘투석 시작! 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투석하는 경과를 가끔 알려주기도 했다. “저를 위해 기도 하시는 선생님, 감사드리며 현재 상황을 알려 드립니다. 피검사 결과 크레아틴 3.7 GFR 13, 이번 주엔 피가 너무 부족해서 일단 투석을 미루고 조혈 주사 주 1회씩 6주간 맞고 다시 피검사 하기로 했습니다. 투석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이 소중하고 값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으나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아쉬움에 머무르지 않고 온갖 힘을 기울이셨다.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예감하셨을까?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 추진하셨다. <시인 만세>를 창단하여 시와 쉼표가 있는 콘서트를 동인들과 준비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선생님은 백십 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라는 시를 절규하듯 읊으셨다. 그 열정은 우리네 가슴에 고스란히 아로새겨졌다.  

  그해 8월 미주한국문인협회에서 문학 캠프를 개최했다.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하셨기에 내가 룸메이트가 되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몸이 자꾸 붓는 현상 때문에 걱정스러웠다. 의사를 찾아 의논한 결과 참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동화책 출간에 힘을 쓰셨다. ‘동화작가들이여 힘을 내자! 한강을 보라. 동화에서 영감을 얻었지 않았는가!’라며 동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셨다. 그해 가을, 동화책 <할리우드 블러바드의 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전히 고우신데 남의 부축에 의지해 걸어 참석하셨다. 너무 빠른 속도로 건강이 나빠지지 않는가.  

  “선생님, 요사이 시간이 될 때마다 선생님 동화집을 읽고 있어요. 밑줄을 치면서 배경이나 캐릭터에 대한 표현을 꼼꼼하게달맞이꽃이 되어 별빛으로 간직하고프다는 선생님 글에 뭉클했어요. 선배님의 뒤를 이어 저도 동심을 아름답게 언어로 짜 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 빛을 간직하고 곁에 계셔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지만 읽으셨을까? 눈도 희미하고 귀도 안 들리신다고 했다. 응답이 없는 나의 다짐으로 남아야 했다.  

  투석 시작 1년 후 선생님은 방법을 바꿔 혈관 Fistula 수술을 받았다. 이제 병원에서 Hemo Dialysis 투석을 받기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하지 않아 더 손쉬운 방법임에도 할리우드 아파트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선생님 보고 싶은데 어떠세요? 혼자만의 메시지가 카톡 화면에 남겨질 뿐이었다.  

  251031일에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어쩌나! 찾아가 뵙지도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만 남는다. 그분이 사라진 계절은 빛이 식어간 계절의 흔적과 같다. 머무름과 이별 사이에서 눌러쓴 글을 그리움이라는 봉투에 담아본다. 붉은 단풍 아래 놓고 간 그분의 마음 조각이 낙엽 되어 흘러간다. 존재는 사라짐이 아니라, 그분을 기억하는 모든 시간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선생님, 생명 강가에서 좋은 글로 세상을 적시며 길이 머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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