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3 11:10

느지막하게 열린 신년/ 이희숙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60212/1601082
아침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눈을 의심했다. 시계가 고장 났나? 어~ 9시 45분! 늦잠을 자다니! 한국에서 미국으로, 내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직 몸은 지난 시간에 머물러 있나 보다. 모질고 호된 겨울에서 여름으로 옮겨오니 아직 얼떨떨하다. 시차와 온도 적응에 시간이 걸릴성싶다.
딸네 집에 맡기고 갔던 애완견도 다시 돌아왔다. 우리 집에 적응하느라 집안을 돌아다니며 계속 냄새를 맡는다. 나랑 같은 처지인가 보다. 청소, 빨래, 음식을 사 오며 바지런히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든 게 한국으로 떠나던 날인 12월 중순에 머물러 있다. 한국에서 연말과 새해 중순까지 두 해를 머문 셈인가? 아직 우리 집 현관에 크리스마스 화환이 걸려 있다. 그 화환을 걷어 들여오고, 카드와 쌓인 우편물을 정리한다. 새 달력으로 바꾸고, 먼저 가족과 친구 생일을 빨강 글씨로 표시한다. 새해엔 세 명의 조카며느리가 추가되어 더 풍성한 느낌이 든다. 새해라는 365 페이지 책, 첫 장에 내일이라는 새롭게 다가올 기회를 부여해 본다.
신춘문예 당선작 동화 『점 빼주는 사서 선생님』을 읽었다. 이 이야기 주인공은 남에게 늘 잘하려 애쓰고, 울지 않으려 참고, 일이 잘 안 풀리면 그 강박감에 긴장했다. 그 아이는 도서실 뒤편에 있는 ‘마음 쉼표 방’의 사서 선생님을 찾아가 자기 눈 밑에 있는 점을 없애 달라고 했다. 점을 없애면 강한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에게 눈 밑의 점을 뽑아내기 보다 긴장하는 힘을 빼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점은 욕심과 긴장을 의미한다.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아이는 비로소 힘 빼는 법을 배우고 마음의 긴장감을 풀어낸다. 지나친 긴장과 욕심을 버림으로써 몸이 자연스러워지고 마음 또한 여유를 찾게 된다는 주제의 이야기다. 바로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스럽게 힘을 빼 봐!”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이민 생활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몸으로 뛰며 몸에 배었던 긴장감, 치열하게 살아왔던 모습을 지워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으로 삶을 좁히라고 한다, 바로 거기에 참다운 평온이 있다는 것이다. 조금은 여유 있게 나를 바라보자.
한국에서 휴가를 지내면서 어김없이 7시에 아침밥을 먹고, 8시에 투석 센터로 향하며 하루 일정을 계획하는 나에게 동생이 말했다. “너무 애쓰지 마! 은퇴한 백수는 백수 답게 살아!”라고.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눈부시게 스며들면 알람 소리 없이 자연스럽게 눈을 뜨자. 창밖을 한 번 바라본 뒤 따뜻한 차를 끓인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볍지 않은가. 많은 것을 이뤄야 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하루를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은퇴 후의 삶은 느리지만 단단하고, 여유롭지만 깊이가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잔잔하게 흘러갈 터이다.
느지막하게 시작한 신년이다. 더불어 몇 걸음 늦게 디딘 여유로 걸어보자.
<이희숙 시인·수필가>
(수필) 느지막하게 열린 신년
아침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눈을 의심했다. 시계가 고장 났나? 어~ 9시 45분! 늦잠을 자다니! 한국에서 미국으로, 내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직 몸은 지난 시간에 머물러 있나 보다. 모질고 호된 겨울에서 여름으로 옮겨오니 아직 얼떨떨하다. 시차와 온도 적응에 시간이 걸릴성싶다.
딸네 집에 맡기고 갔던 반려견도 다시 돌아왔다. 우리 집에 적응하느라 집안을 돌아다니며 계속 냄새를 맡는다. 나랑 같은 처지인가 보다. 청소, 빨래, 음식을 사 오며 바지런히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든 게 한국으로 떠나던 날인 12월 중순에 머물러 있다. 한국에서 연말과 새해 중순까지 두 해를 머문 셈인가? 아직 우리 집 현관에 크리스마스 화환이 걸려 있다. 그 화환을 걷어 들여오고, 카드와 쌓인 우편물을 정리한다.
새 달력으로 바꾸고, 먼저 가족과 친구 생일을 빨강 글씨로 표시한다. 새해엔 조카며느리가 세 명 추가되어 더 풍성한 느낌이 든다. 새해라는 365 페이지 책, 첫 장에 내일이라는 새롭게 다가올 기회를 부여해 본다.
신춘문예 당선작 동화 『점 빼주는 사서 선생님』을 읽었다. 이 이야기 주인공은 남에게 늘 잘하려 애쓰고, 울지 않으려 참고, 일이 잘 안 풀리면 그 강박감에 긴장했다. 그 아이는 도서실 뒤편에 있는 ‘마음 쉼표 방’의 사서 선생님을 찾아가 자기 눈 밑에 있는 점을 없애달라고 했다. 점을 없애면 강한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에게 눈 밑의 점을 뽑아내기보다 긴장하는 힘을 빼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점은 욕심과 긴장을 의미한다.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아이는 비로소 힘 빼는 법을 배우고 마음의 긴장감을 풀어낸다. 지나친 긴장과 욕심을 버림으로써 몸이 자연스러워지고 마음 또한 여유를 찾게 된다는 주제의 이야기다. 바로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인 것을 깨닫는다.
“자연스럽게 힘을 빼봐!”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이민 생활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몸으로 뛰며 몸에 배었던 긴장감, 치열하게 살아왔던 모습을 지워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으로 삶을 좁히라고 한다, 바로 거기에 참다운 평온이 있다는 것이다. 조금은 여유 있게 나를 바라보자.
한국에서 휴가를 지내면서 어김없이 7시에 아침밥을 먹고 8시에 투석 센터로 향하며 하루 일정을 계획하는 나에게 동생이 말하지 않았는가. “너무 애쓰지 마! 은퇴한 백수는 백수답게 살아!”라고.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눈부시게 스며들면 알람 소리 없이 자연스럽게 눈을 뜨자. 창밖을 한 번 바라본 뒤 따뜻한 차를 끓인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볍지 않은가. 어제 읽다 만 책을 펼치거나, 천천히 산책할 계획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문을 열고 나가면 새 생명이 눈을 뜨고 나를 응시한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꽃들, 나무와 눈맞춤하고 인사를 나눈다. 작은 풀꽃을 바라보며, 예전처럼 바쁘게 쫓기던 시간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음을 실감하지 않을까. 시를 쓰거나 손글씨로 편지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해가 기울 무렵 소박한 저녁을 준비하고, 창밖이 어둑해지면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많은 것을 이뤄야 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하루를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은퇴 후의 삶은 느리지만 단단하고, 여유롭지만 깊이가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잔잔하게 흘러갈 터이다.
느지막하게 시작한 신년이다. 더불어 몇 걸음 늦게 디딘 여유로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