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더 고민해야 한다/박세정

2016.01.02 16:45

박세정 조회 수:65

더, 더 고민해야 한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세정

 

 

  새해 첫날 아침이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평소보다 2시간여남짓 더 자고 일어나서인지 피로가 싹 가셨다. 무의식에 잠재된 한 줄기 생각이 그만 눈을 뜨고 일어나라고 부추긴다. 오늘은 바로 거의 모든 일간지마다 2016년 신춘문예 당선자를 발표하는 날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내가 응모한 일간지부터 확인했다. ‘물미장’, 제목부터 남달랐다. 활짝 웃으면서 당당하게 포즈를 취한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글과 씨름하며 보낸 세월이 작가의 얼굴에서 웃음을 걷어내게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지금 이 순간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겨우 세 번 응모해 놓고선 이 무슨 가당찮은 생각인가?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번지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현관 앞에 배달된 신문을 들고 지하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운동을 하면서, 신문을 읽을 생각이었다. 지면 곳곳이 신춘문예 소식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상하게도, 당선된 글보다는 당선자의 소감이나 심사위원들의 평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 글을 쓰게 된 작가의 생각과 정신 그리고 그 글을 당선으로 확정한 심사위원들의 평이 나에겐 더 살뜰히 와 닿는다. 그들의 글은, 내 글이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하고 내 글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비교하는 척도가 되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시에 당선된 작가의 글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금 이 시간은 혹독했던 과정보다 뜻 깊은 순간을 떠올리고 싶다. 근래에는 ‘더, 더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 또 ‘힘을 들여야 한다’는 말씀이 들려오곤 했다. 고백하자면 절벽에 서 있을 때 들려온 귀한 ‘말씀들’이었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조상호 씨의 당선 소감 중 일부다.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고민했는가?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던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권리만 주장하는 소시민 같아서, 부끄러움이 일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당선 운운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들 모두 이런 정신으로 글을 썼기에, 신께서도 한결같은 그들의 요청에 당선이라는 결실로 앞날을 축복해 준 것이리라.

  작년에 시로 등단한데 이어, 올해 시조로 당선된 이도 있었다. 글에 대한 진심이 극진하면 장르 구분 없이 모든 영역을 섭렵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작가 정신과 글의 내용이 탄탄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변형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기사였다. 어떤 이는, 응모 마감이 다가올 때면 늘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고 했다. 포기할까, 말까 하는 싸움 끝엔 ‘적어도 한 번 써서 내면 내가 그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테니까’ 하는 생각에 응모를 해 왔던 게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리하였다. 졸작이지만 응모라도 하고 나면 기다리는 내내 숙연해지고 들뜨기도 한다. 당선자를 발표하는 날, 결과를 확인하고 나면 실망감에 한 동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리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더 나빠지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앞으로 내 글쓰기의 자세로 곁에 두고 자주 읽어야 할 훌륭한 문장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전북일보 수필 당선자가 대구 매일신문에도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서 기사를 다시 읽어 보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어서 두 편의 글을 모두 다 읽어보았다.

  전북일도 당선작인 손훈영 님의 ‘이중주’는,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 선상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며,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도 잉태된다는 바탕위에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살아있는 공간인 테니스장과 죽음의 장소인 봉분을 균형감 있게 묘사하면서 작가의 차분하고도 탄탄한 문체로 깊이 파고든다. 곧 다가올 죽음이라는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다정한 친구 같은 존재로 해석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죽음을 휘감은 장막 아래 펼쳐진 안식의 적요가 아늑하기까지 하다는 글이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내면의 심리 묘사와 상황을 해석하는 기법이 잘 어우러져서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읽고 나서도, 글이 주는 여운에 빠져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나이이지만 글을 읽고 나서 주어진 삶을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신문의 당선작인 손훈영 님의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비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 자신을 소개해면서 비를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화두로 폭을 넓혀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간다. ‘비를 탄다’ 고 할 정도로 비를 좋아하는 작가는, 비오는 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차분하게 글로 형상화한다. 개인적 성격을 비 풍경과 밀착시켜서 글로 풀어내는 솜씨가 멋스럽고도 세련되었다. 문장과 문장 간 연결이 자연스럽고, 비오는 날의 풍경과 작가 자신의 심리가 잘 맞물려서 읽는 이도 함께 동화된다. 스스럼없이 마음의 빗장이 풀리면서 내가 글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묘사의 기술이 탁월하여 작가가 쓴 문장 몇 개는 훔치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결미에 드러낸 작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비 오는 날 홀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문득 삶과 죽음에 대한 감각이 환해져 온다. 동그란 핸들에 목숨을 얹고 어둑한 하늘을 향해 질주하노라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단순하게 정리되면서 많은 것들로부터 초탈한 심정이 된다.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약하고 가뭇없는 존재들인지 뼛속 깊이 느껴지기도 한다. 풀과 같이 약한 생명이기에 지금, 살아서, 힘차게 내 심장에 대해 그만 숙연해지고 만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나도 작가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 차 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차들 모두 정지한 풍경을 보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우친다.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보듬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작가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다가왔다. 일상의 언어로 잔잔하게 펼쳐진 글이 오래도록 강한 여운을 남겨, 내게 주어진 삶을 좀 더 의미 있는 날들로 채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편의 글 모두, 가히 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분들 사이에 겁도 없이 끼어든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보였다. 앞부분에서 언급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는 문장이 명징(明徵)하게 나를 쏘아보는 듯했다. 이것은 비단, 글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직장 상사 중, 이런 철학을 가진 분이 있다.

  ‘보고서에는 그 사람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보고서를 읽고 나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정신이다. 그런 수준이 될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쉽게 생각하고 안일하게 작성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상사에게 이 말을 직접 들었을 때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죽하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내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그 날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2016년 신춘문예는 이렇게 해서 끝났다. 낙방한 사람들이 합격한 사람들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나에겐 크나 큰 위로가 되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낼 때라야, 그 실패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편에 서서 함께 발걸음을 옮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에 힘을 얻어, 앞으로 계속해서 쓰고 또 쓰련다. 2016년 1월 1일,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2016.1.3.)

* 창작후기

 우연찮게 수필의 길로 들어선지 어느새 5년이 다 되어 간다. 수필을 쓰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삶을 해석하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리고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된다는 것도 깨우쳤다. 상처 받고 아파하는 내 자신을 보듬으며 글로 치유하였고, 절망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숭고한 삶을 만나기도 했다. 글은 나에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길을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았고 나도 모르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감사하다. 내가 지향하는 글의 마지막 종착역은 여럿이 함께 하는 삶 그것이면 된다. 그 결과가 좋다 나쁘다를 논하기 이전에 함께 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수필을 알기 전과 알고 난 뒤의 나는 많이 변했다. 내가 수필을 몰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변화를 체험하면서 내 삶은 분명히 더 풍요로워지고 풍성해졌다. 이렇듯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수필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내 글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는데 일조를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며 고심한다. 매일 단 5분이라도 짬을 내어서 글을 쓰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그 어딘가에 가 닿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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