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가치를 일깨워 준 병신년

2016.01.12 09:08

은종삼 조회 수:165

‘한자(漢字)’의 가치를 일깨워 준 병신년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은종삼



‘병신년’이라니! 어감이 글쎄다. 꼭 장애인 여자를 비하시키는 말 같다.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60년 만에 찾아오는 ‘붉은 원숭이해’다.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60갑자의 33번째 되는 해를 일컫는 일상용어다. 갑오년, 을미년 다음 병신년인데 해마다 쓰는 60갑자 중 올해는 새해 인사말에서 병신년이라는 해의 명칭이 매우 껄끄러운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연하장에 해마다 쓰던 60갑자 대신 ‘2016년 원숭이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병신년 대신 붉은 원숭이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는 기사도 실려 있다. 페이스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병신년’이라는 단어를 한자와 병기하지 않으면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하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한 신문 머리기사 타이틀에 ‘丙申年’이라고 한자를 노출시켜 표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지치단체의 신년 하례 인사 광고 문안 등 여기저기에 한자 표기가 눈에 띤다. 바야흐로 병신년이 한자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한자는 한글과 함께 우리의 언어생활에 절대 필요한 양대 문자다. 그럼에도 일부 한글 전용론자들의 홀대로 한자가 제자리를 잃고 있어 안타까운 게 현실이다. 한자는 고조선 시대 시가인 공후인(箜篌引)과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가 전해 주고 있듯이 2000여 년 이상 사용해온 우리 문자요 우리 문화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말의 70% 이상이 한자어다. 한자를 모르면 정확한 어의(語義)를 파악하기 어려운 표현도 많다.

방화범(放火犯)과 방화수(防火水)가 있다. 전자는 불을 지르는 것이요 후자는 불을 끄는 것이다 ‘방화’라는 낱말을 한자를 전혀 모르고서 쉽게 이해가 되겠는가?

아무리 쉬운 말로 글을 쓴다고 해도 역시 한자를 모르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땅히 쉬운 말 한글로만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언어생활일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 수준의 생활언어가 아니고선 한자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한글로만 쓰겠다는 한 중앙 일간지 신문조차 한자를 병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코 한자를 뿌리 채 뽑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전통문화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교양인이라면 모름지기 한자를 적절히 살려 쓰는 언어 구사력이 필요하다. 한글로만 쓰자면서 똥을 인분(人糞)으로 늙은이를 굳이 노인(老人)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똥, 인분, 늙은이, 노인 모두 우리말들이다. 언어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가려 쓸 일이지 한자어라고 해서 배척해서야 되겠는가?

새해가 되면 지방자치단체나 사회단체, 기업체 등에서 새해 각오를 다지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정읍시는 올해 금석위개(金石爲開)를 뽑았다. ‘생각을 한군데 집중해서 행하면 쇠나 돌도 능히 뚫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단한 각오가 새겨져 있다. 왜 하필 한자로 된 사자성어일까? 결코 유식함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깊은 함축적 의미가 한자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한자의 맛을 잘 살린 간판이나 신문 문구를 보면 절로 미소를 짓는다. 豚(돈-돼지)사랑 음식점도 있고 酒立(주립-술로 세운)대학 술집도 있다. “부안으로 ‘夜한 九景’하러 오세요.” (밤경치 아홉 곳 구경)라는 신문 표제도 있다. 통일로 미래路(로-길)라는 TV 프로그램도 한자를 쓰고 있다. 한자는 여전히 현대인의 사상 감정을 잘 담아내 주는 필수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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