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수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강 양 순
왜 늙은 나이에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가? 그것은 어린시절부터 나의
꿈이었으니까. 어느 날 어떤 집앞을 지나가다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만 발이 얼어 붙은 듯 그 피아노소리에 매료되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 몸에선 환희에 찬 전율이 흐르고 있었다.
일찍 시집가서 내 정체성도 찾지 못했고, 아이들 기르노라 내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나의 소리에 귀를 기우릴 수도 없었다. 내 자존감은 바로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언감생심 내 나이 40이 다 되어서야 꼭
피아노를 쳐 보겠다고 나섰다. 남편은 내가 한 번 한다면 꼭 하고 마는 성질을 알기에 두 말 않고 피아노를 사주었다.
처음에는
딸부터 가르치고, 나는 딸의 등 뒤에서 배우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내 딸은 피아노에 소질이 없었다. 피아노를 치라면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싫은 것을 강제로 시킨 내 잘못이 컸다. 나는 그때부터 피아노 임자가 되어 시간이 날 때마다 피아노를 쳤다. 비록 바이엘을 쳤지만
나에겐 환희였다. 40대에 피아노를 치다니, 사람들은 웃었다. 친구들도 쟤가 저러다 말겠지 하며 나를 놀렸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 피아노에
내 생명을 건듯 연습에 매진했다. 피아노란 악기는 어려서부터 하지 않으면 손이 딱딱해져서 늙은 나이에 마스터하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 번 연습할 것을 나는 10번 아니 백 번 연습을 했다. 누가 말려도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엔 체르니, 소나티네, 가곡이나
유행가 반주 등도 학원에 가서 배웠다.
학원 수강생들은 다 학생이었지, 나같이 늙은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젊은 학생들은
나를 보고 웃으며 지나쳤지만, 그 마음 속에는 저런 늙은이가 무슨 피아노를 치느냐면서 나를 경멸했을 것이다. 나는 모멸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열심히 나를 채찍질하며 다시 잡은 내 소중한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려 했다. 내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도 그토록 오랜 세월
딸네 집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딸네 집에 피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우울증의 특효약은 바로 피아노였다.
마음이
우울해지면 피아노로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을 쳤다. 찬송가란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신을 찬양하는 나의
마음속에 신이 함께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다. 그 뒤 귀국했을 때도 여러곳의 학원을 들락거리며 째즈음악을 배워 가곡이나 유행가 반주를 넣는
법을 익히며 살았다. 내 성격 자체가 우리 부모한테 물려 받은 DNA 영향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내가 수필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수필을 쓸 때마다 나의 마음 가득 환희가 물결친다. 희망의 메시지가 도달할 때까지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아무 글이든 날마다 쓰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 한 편 나오겠지, 하는 뱃장으로 글을 쓴다.
예술이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또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사랑해야 한다. 모든 것을 걸어 올인했을 때 못 이루는 일은 없다고 본다.
이것이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나의 열정을 펴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산속에서 수행하는 스님들도 하루 종일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108배의 절을 하고도 남에게 설법과 수행과 봉사의 삶을 살지 않던가?
나도 이제부터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꾸준히 수필을 쓰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나도 훌륭한 수필가가 되고 싶다.
(2014. 8.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