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르는 기사

2016.04.02 06:19

김기영 조회 수:119

〈수필〉 행복을 나르는 기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기영

정성스럽게 폐백음식 상자를 들면 아내도 양손에 한 상자씩 들고 나선다. 뒤에 따라오면서 잘 들고 가라며 잔소리를 한다. 운전하는 중에도 천천히 조심히 가라고 계속한다. 예식장 안으로 들어가 폐백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조심하라며 어린아이에게 주의를 시키듯 반복한다. 말하지 않아도 내 나름대로 정성과 주의를 다 하며 운반하는데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늘 예식을 하는 신혼부부들을 생각하며 속에서 솟아오는 불평들을 억누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장의 지시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다.

아내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뿐이 아니라 솜씨가 많은 편이다. 전자제품이나 여러 가지 기계를 다루는 기술도 나보다 낫다. 내가 하는 일을 바라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져간다. 어떤 때는 약간 자존심이 상하지만 잠시 후에 내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고쳐 놓는다. 교회에서 꽃꽂이를 담당하여 봉사하고 있다. 처가에 있던 오래된 재봉틀을 가져다 헌 옷 수선은 물론 다른 사람들 옷도 만들어 주니 남들도 인정하는 솜씨다.

아내는 젊어서부터 음식점이나 예식장에 가면 여러 가지 음식을 유심히 살펴보기를 좋아한다. 이웃에 사는 교인이 폐백을 하는 것을 몇 번 보더니 친척들 혼사에 폐백을 해주었다.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의 폐백을 몇 번 했으나 오랫동안 손을 놓고 지냈다.

딸이 장성하여 혼인하면서 다시 진흙 속에 묻혔던 솜씨를 나타냈다. 정성을 쏟아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으리라. 하나밖에 없는 가장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에서 시댁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음식이다. 시댁 어른들을 존중하는 마음과 시댁 어른들과 화목하고 두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의식의 음식이다. 딸의 혼인 폐백을 보고 교인과 친지들에 의해 소문이 번져 부탁하는 사람이 늘어 부업이 되었다.

요즘은 혼인을 준비하는 과정이 대부분 현금으로 해결된다. 옛날처럼 바느질하고 수를 놓고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별로 없다.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식당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며, 혼수와 전자제품은 매장에 가면 다 해결할 수 있다. 편리한 세상이다. 폐백도 손수 준비가 힘들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잘하는 사람이나 업체에 부탁하면 된다. 아내도 부탁이 오면 정성을 다해 준비하여 혼주에게 전달하거나 가까운 곳은 직접 폐백실로 가져가 진열하는 것을 본다.

아내는 직접 반죽을 하고 기름에 튀기며 음식을 만든다. 가위로 오리고 실로 꿰어 예쁘게 장식을 한다. 시장에 가서 직접 싱싱하고 건강에 좋은 재료를 사다 며칠간 준비한다. 나는 시장에 갈 때 기사로, 호위병으로, 심부름꾼으로 따라다닌다. 다 준비가 되면 포장을 하고 신부 이름을 쓰고 내용물을 표시하는 일은 내가 한다. 그리고 전날 오후나 당일 아침 일찍 운반하는 기사 노릇을 한다. 현직에서 은퇴하고 삼식이로 지내는 것보다 가끔 소일거리가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돕는다.

얼마 전에 방송에서 식당폐업 주방물품 판매업을 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서민 갑부 프로그램을 보았다. 처음 5평에서 시작하여 15년 만에 20배인 1,000평으로 확장했다는 경기도 시흥의 박재원 정연화 부부가 소개되었다. 남편은 폐업식당을 찾아다니며 견적 내고 폐업정리를 하며 물건을 확보하는 일을 한다. 아내는 남편이 확보한 물건을 가게에서 정리하고 손님을 접대하며 판매하는 방식으로 분업화된 사업을 한다.

물건을 사는 남편은 사업이 망해 폐업하는 사람의 형편을 고려해 시세보다 더 많은 돈을 주면서 용기를 북돋워 준다고 한다.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또는, 자기 형제가 당한 일처럼 생각하면서 도와준다고 한다. 사람은 은혜를 입거나 횡재를 하면 이웃에 소개하거나 다시 찾는다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고객을 대하니 사업이 번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내도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팔 때 자신의 형제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미신이지만 음료수를 부어 놓고 다시는 이곳으로 되돌아오지 말고 꼭 성공하여 부자가 되라고 빈다. 그리고 잡귀는 물러가라고 물건 주위에 뿌리고 난 뒤에 실려 보낸다. 부부가 사업에 실패했으나 재기한 용기와 노력에 감동했다. 더 큰 감동은 폐업하는 사람과 새로 시작하는 사람을 내 가족 내 형제처럼 여기는 마음이다. 이익보다도 폐업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며,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하기를 비는 마음에 감동했다.

아내는 음식을 만들 때 맛과 멋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시댁 어른들께 처음 인사를 하는 예식이니 맛도 중요하지만, 미적 감각을 살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꾸민다. 음식이니 건강에 유의하여 만들고, 식구들끼리 여럿이 먹을 수 있도록 풍성하게 한다. 그러니 예식을 마치고 나면 시집 어른은 신부 부모에게 폐백을 잘해 보내 잔치를 했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러면 다시 신부 어머니는 아내에게 폐백을 잘 해줘서 칭찬을 들었다며 고맙다고 전화가 온다. 나는 아내가 너무 신경을 쓰고 고생을 하기에 적당히 하라고 한다. 하지만 뒤에 걸려오는 감사전화를 생각하며 피로를 잊고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러면 또 주위에 소문이 번지고 소개가 되어 주문이 들어온다. 너무 정성을 쏟는 아내에게 불만을 나타냈으나 아내가 자랑스럽다. 앞으로는 조심하여 싣고 가라는 아내의 주의에 순응하며 오늘 혼인하는 두 가정과 부부의 행복을 비는 기도를 드리고 나서 출발해야겠다.

(2016. 04. 02.)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1 강가에서 바라다 본 삶과 죽음 배영순 2016.04.15 60
120 인간의 노화 이장재 2016.04.14 13
119 아시나요? 홍치순 2016.04.13 86
118 치매사회 생존법 홍창형 2016.04.12 260
117 문장부호와 원고지 쓰기 문장부호 2016.04.12 878
116 인생은 외롭다 마크 송 2016.04.11 219
115 수필로 쓰는 작은 수필론 윤요셉 2016.04.09 159
114 돌아야 돈 김길남 2016.04.08 68
113 아빠가시고기 김학 2016.04.06 115
112 퇴고 김성은 2016.04.05 37
111 100살까지 팔팔한 관절 법 이장재 2016.04.04 76
110 설득력 있는 메타포, 명료한 주제의식 엄현옥 2016.04.03 88
109 약이 되는 먹거리 이장재 2016.04.03 16
» 행복을 나르는 기사 김기영 2016.04.02 119
107 헬조선이란 언어프레임에 대하여 박재광 2016.04.01 20
106 양계장 닭들의 외출 신길우 2016.04.01 56
105 담티고개 윤근택 2016.03.31 323
104 달라지는 장례문화 김현준 2016.03.30 97
103 아랫배 두드리기 여봉 2016.03.28 740
102 걷기에 대해 알아봅니다 여봉 2016.03.28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