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있는 메타포, 명료한 주제의식

2016.04.03 14:18

엄현옥 조회 수:88

*단평*

설득력 있는 메타포, 명료한 주제의식

김학의 「가시고기」 속으로

                                                                                                      엄현옥


수필은 비 허구적이며 자전적이고 자기고백적인 문학양식이다. 따라서 작품 속의 자아와 실존적 자아가 대부분 동일한 수필에서의 서사는 체험적이며 사실적이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수필이 개인의 전기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 획득을 위해 작가 체험의 객관성 확보가 관건이다.

‘나는 어떤 아빠일까?’라는 자문으로 시작되는 「가시고기」 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시청이라는 개인적인 체험을 인간 보편의 문제로 적용시켜 공감과 감정이입에 이르는 과정을 무리없이 전개한다. 가시고기는 암컷이 산란으로 생을 마치는 반면 수컷은 부화를 돕고 새끼들에게 자신을 먹이로 내주고 죽는 유별난 부성애 때문인지 부화율은 90%를 웃돈다고 한다.

수필 「가시고기」 는 감각의 전율, 기교나 반전 등의 문학적 장치 대신 담백함으로 정면 돌파하는 기법을 취하고 있다. 교시적인 방법이 아닌 자성적인 독백으로 독자의 반성과 공감을이끌어낸다. 작가는 자녀들의 성장과정에서 소통을 위해 함께 했던 시간을 반추하며 아버지로서의 노력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하던 차, 가시고기를 통해 이를 돌아 볼 단서를 제공한다. 예시(illustration)로 채택된 가시고기의 에피소드를 도입부에 배치하여 일반화에 이르는 과정으로 후반부로 진행했어도 무난하리라 생각해 본다.

가족은 문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신선한 주제다. 현대사회는 산업화로 인해 인간 본연의 도리를 벗어난 일들이 빈번하다. 인륜을 져버린 부모와 자식에 대한 뉴스도 낯설지 않고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간다. 그 의미가 극도로 약화되었다고 하나 온전한 희생과 헌신, 무조건의 사랑을 가족 이외의 어떤 대상에서 찾는단 말인가. 수필가가 된 이상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것을 통한 자기 수양은 숙명이다.

「가시고기」는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명료하며 자기 고백은 있으나 자기 미화는 걷어내 문학작품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학위 없는 건축가요, 과학자며, 생물학자요, 무사(武士)이며, 헌신적인 봉사자’인 가시고기의 부성애에 포커스를 맞추어 직접적인 주제 표출에 이르기까지 설득력 있는 메타포로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의 구력을 새삼 되짚어보면, 김학은 33년간의 방송국 PD를 거쳐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그간 전북수필문학회 및 여러 문학 단체를 창립하였으며 『행촌수필』을 발간해오고 있다. 그가 배출한 작가들은 전국에서 왕성한 글밭을 일구고 있으니 그는 한국수필문단의 진정한 농군이다. 수필에 대한 김학의 열정은 후진 양성에 머무르지 않고 창작에 정진하여 『하여가& 단심가』에 이르기까지 열 세권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이러한 문력을 지닌 작가의 삶과 수필은 명실 공히 ‘문(文)은 인(人)이다.’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요즘 대세인 소위 ‘먹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요리사는 ‘쉐프(chef)’로 불린다. 멋진 모자를 쓴 그들이 만든 대부분의 요리는 국적도 명칭도 모호하다. 수필의 전통적 기법에 충실한 「가시고기」 는 쉐프가 끓인 스프가 아닌,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요리사 김학이 질박한 뚝배기에 끓여낸 진국 설렁탕을 연상시킨다.

총체적 혼돈이 우리를 당황케 하는 하수상한 시절, 애틋한 부성애로 종족을 보존하는 가시고기의 DNA는 조만간 희귀 유전자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언컨대 21세기의 인간 세상에서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이 가시고기의 아빠로 종족을 보존하는 일보다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시고기 버전의 무리없는 적용과 행간에 담긴 사회적 가치는 수필이 문학과 인간의 상관성을 진솔하게 반영하는 장르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개인의 체험을 인간의 이야기로 객관화하여 유의미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 「가시고기」 는 김학의 작가 정신과 수필미학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 엄현옥 약력

-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이사, 고등국어교과서에 수필게재,

- 수상 ; 인천문학상, 신곡문학상 본상, 민들레문학상

- 작품집 ; 『다시 우체국에서』,『나무』,『발톱을 보내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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