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야 돈

2016.04.08 04:47

김길남 조회 수:68

돌아야 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한 바퀴 도는 현상을 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도, 학교 운동장을 일주하는 것도 도는 것이다. 도는 것은 여러 가지다. 팽이도 돌고 회오리바람도 돈다. 제비는 공중을 돌고 붕어는 물속을 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매개해 주는 돈도 돈다. 내 호주머니 돈이 사과장수 지갑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사람에게 거스름돈 내줄 때 그 쪽으로 간다. ‘돈’이라는 말도 돌고 도니까 생긴 말인지도 모른다. 나라에서도 잘 돌리려고 돈을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 돈이 돌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메일에서 읽은 이야기다. 한 청년이 주말이 되어 친구들과 놀러 갔다. 오후에 들어가 자려고 20만원을 주고 펜션을 계약했다. 펜션 주인은 그 돈을 받아 외상으로 가져다 쓴 고기값을 갚았다. 고기집 주인은 그 돈으로 세탁소에 밀린 세탁 비를 냈다. 세탁소 주인은 친척들이 찾아와 묵었던 펜션 집에 밀린 빚을 갚았다. 오후에 놀러 갔던 청년이 급한 사정이 생겨 펜션 계약을 취소하고 20만원을 받아갔다. 돈은 다시 청년에게 돌아왔는데 돌고 돌아서 세 집의 빚이 없어졌다. 돈은 이렇게 돌아야 한다.

교직에 있을 때 일이다. 봉급을 받으면 우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쌀가게에 가서 쌀을 팔았다. 아내는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왔다. 아이들 통학하는데 쓰라고 용돈을 나누어 주었다. 옷가게에서 옷도 사주고 신발을 신기기도 했다. 가끔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도 다녔다. 아내에게는 화장품도 선물하고 결혼기념으로 옷도 한 벌 서비스했다. 이렇게 쓰는 게 일반가정의 일이다. 상대 가계에서는 물건이 잘 팔려 수입이 오르고 그 집도 똑 같이 생활용품을 산다. 이런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살만하다.

그런데 일반가정에서 주머니를 닫고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고 미래가 밝지 못하므로 아끼려 한다. 앞날을 위해 최소한도로 소비하고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게다. 내수가 풀리지 않는 원인이다. 경제전망이 밝지 않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돈이 도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여기저기에 공장을 짓고 아파트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길을 내고 다리를 놓으며 수도관을 묻고 전신주를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보면 그런 장면이 어쩌다 눈에 띈다. 할 만큼 했기에 필요가 없어져서 그렇다면 되지만 할 일은 많다고 본다. 경제가 풀리지 않아 돈이 없어 못하는 것이다.

대 기업에서 쌓아놓고 있는 자금이 수십조 원에 이른다.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마땅히 투자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게다. 세계경제가 어려우니 투자하여 물건을 만들어도 팔릴 전망이 없다는 게다.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누가 사업하지 않겠는가. 서로 뛰어들 것이다. 또 경쟁은 얼마나 심한가. 후진국이 나날이 발전하여 선진국 수준을 따라오니 싼 임금으로 덤비는 그들을 막을 길이 없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다른 나라가 깜짝 놀랄만한 그런 제품을 내 놓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국은행에서 지난 7년간 5만 원 권을 22억 장 방출했는데 12억 장이 회수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발행하여 총 화폐발행량의 78%까지 늘렸다 한다. 화폐발행 잔액이 2009년 37조 4천억 원이던 것이 2015년에는 86조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 돌지 않고 어디에 쌓여있다는 게다. 은행이자가 적으니 넣어보았자 별 것 아니므로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중통화량을 공급한 통화로 나눈 것을 통화승수라 한다. 1999년은 30%였으나 2015년은 19%라 한다. 89%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 마큼 돌지 않는다.

돈의 흐름에 동맥경화가 일어났다. 막힌 돈길을 뚫어 순활하게 돌도록 해야 하는데 묘한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정부에서 잘 돌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자금도 지원하며 기업을 격려해야 하리라. 국민들도 닫은 지갑을 열어 막힌 돈길을 열어주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나도 과일 한 봉지라도 사러 나가야겠다.

(2016.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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