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반지

2008.04.01 17:25

윤석조 조회 수:732 추천:2

커플(couple) 반지
              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윤석조

                                                          


성당으로 가는 도중에 휴대전화를 받으니, 마음속으로 그리며 보고 싶은 제자의 목소리였다. 전화로 두어 차례 연락했던 철수가 고향 영암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전주에 들르겠다며, 아내와도 함께 만나자고 했다.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제자를 만났더니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자를 포옹(抱擁)하며, 그리운 얼굴을 확인하였다. 키도 훌쩍 크고 운동선수 같은 몸매였다. 주차된 차 옆에서 또 다른 제자를 만나니 소녀 때의 얼굴 모습이 조금 남아 있어 더욱 반가웠다.
  덕진동 고궁이란 식당으로 갔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결혼식 하객들로 어찌나 손님들이 많던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43년 만에 만나는 제자인지라 전주의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근처에 예식장도 없어 일요일은 한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점심때가 지나고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번호표를 받아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나오는 동안 홀에 있는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제자의 지나온 이야기와 다른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맙기도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었다. 제자들은 서울지역에 육십여 명, 광주지역에 이십여 명이 살고 있어, 지역별로 모임도 가지고 있고 서울과 광주를 번갈아가며 만나기도 한다고 하였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제자들이 어느새 정년을 했거나 곧 정년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제자들의 근황(近況)을 듣고 나니 내 젊음이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중학교에 가 있었다.
철수가 처음 나를 찾으려고 노력한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겹도록 고맙기도 하였다. 자리를 찾아 좋은 음식을 들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노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버렸다. 또 만나자고 약속하며 일어서며 내가 밥값을 계산하려 하자,
“선생님이 점심 값을 내면 다시는 선생님을 뵙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에 함께 웃어버렸다.
영암구림중학교는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복직했던 학교였다. 2년 동안 학생들과 정이 들었던 곳이라 그 제자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흘러가버린 43년 전의 제자인 전철수는 인간성도 좋고 공부도 잘하더니 광주 K고등학교에 진학했었다. 내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철수와 제자들은 늘 편지로 구림중학교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전북으로 온 뒤에는 소식이 끊겼다, 10여 년이 지난 뒤, 전주시청에 근무하는 제자(현재 광주광역시 여성정책과장)를 만나 무척 반가웠고 대접도 잘 받았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바쁜 시간에도 내가 근무하는 곳을 알아내어, 전화를 걸어주었던 제자도 있어 소식이 오갈 수 있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내 실수로 모든 연락처를 모두 잃어버렸다. 마음 한구석에 그리움으로 남아 가끔 생각나는 사람들이었다. 소식을 전혀 모르다가 26년이 지나 내가 장수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철수가 조달청제주지사에 근무한다며 전화를 해주었다. 제주도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고, 같은 반 친구였던 최기숙과 결혼하였다고도 알려주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나 반가웠던지……. 며칠이 지나자 제주도 특산물인 버섯과 한약재, 마른 수산물까지 보내주어 교육청에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내가 곧 전근이 되는 바람에 또 연락이 끊겼다. 내 잘못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퇴직 후에는 영암 구림중학교에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 취미로 문학공부를 시작하고, 영광스럽게 등단도 하였다. 졸저인 수필집 『노을빛 사랑』이 내 고희기념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제자들(전라고12회 3ㅡ3)이 분에 넘칠 정도로 호화스럽게 마련한 성대한 잔치자리였다. 물리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하였던 내가 수필집을 만들고 나니 이 졸작을 옛날 제자들이 읽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철수에게만은 꼭 전해주고 싶었다. 조달청 전북지사를 찾아가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얻어 어렵게 철수와 즉석에서 통화를 하고나니 즐거움이 가득했다. 책을 보내주었고 전화만 몇 차례 오갔는데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은 것이다.
못 다한 이야기를 미루고 헤어질 때, 철수 내외는 연노랑 종이주머니와 명함을 함께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두 제자들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으로 고맙게 받았다.
집에 와서 종이주머니 속의 상자를 열어보니 커플반지였다. 돈 많고 귀한 사람들의 약혼이나 결혼 때 주고받는 반지라고 생각하였던 커플 반지! 아내와 약혼과 결혼식을 올릴 때도 끼워주지 못하고 얇은 황금반지로 대신하여, 내 마음 한 구석에 그늘로 남아있던 그 반지였다. 내 감정은 흘러가 버린 약혼식 때가 떠올랐고, 좋아하는 아내의 맑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어려운 고비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을 새기며 서울에서 사업을 잘하고 있다는 김인선(임실동중 졸업생) 부부의 새해인사와 금가락지 선물을 받았을 때도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개척하며 모범적인 생활로 공기업의 관리자로 성장한 제자다. 제자들의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건네준 커플반지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반지였다. 베풀어야 받을 수 있다는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베풀어야할지 모르겠다. 제자들의 따뜻한 인사와 대접 그리고 소중한 선물들을 받기만 하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옛날에는 내가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제자들에게 배우고 있구나 싶었다.
                          (2006.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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