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빵

2008.04.01 17:57

김길남 조회 수:717 추천:2

스탈린 빵
                       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내가 전주사범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앞에는 스탈린빵집이란 별명이 붙은 풀빵집이 있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느냐 하면 그 집 주인이 소련 수상 스탈린처럼 팔자수염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풀빵은 아주 맛이 좋아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나는 먹고 싶은 그 풀빵을 한 번도 사먹지 못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용돈이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등록금을 내고 기차통학비를 대기도 어려웠으니 군것질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남들이 빵 이야기를 하면 먹고 싶고 구미가 당기기는 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꼭 한 번 어느 친구가 사주어 먹어 보았더니 그 맛이 기가 막혀서 지금도 기억하고있다. 오가는 길가에 있지만 그 앞을 지나려면 오히려 기분이 안 좋아 돌아서 다녔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좋은 옷에 멋있는 신을 신으며 이것저것 군것질도 잘했다. 나는 그런 것을 보며 나도 언젠가 잘 살면 저런 일을 해 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동창회 때 친구 하나가 얼큰히 취해 나에게 스탈린 빵 이야기를 하는데 나와 똑 같은 경험이어서 나도 맞장구를 치며 옛일을 회상하기도 하였다.

요새도 우리 아파트 앞에 붕어빵을 구워 파는 포장집이 있다. 지나가다 가끔 사먹으며 옛날 생각을 한다. 지금 먹는 붕어빵이 그 때 그 시절 스탈린 빵보다 질은 나을지 모르나 배가 고프던 어려운 시절에 먹던 그 빵 맛과 같으랴 싶다. 그리고 날씨도 추운데 떨며 고생하는 그 주인을 생각했다. 그 사람도 직장을 잃고 이런 붕어빵 장사를 하지나 않을까? 그 집 아이들도 나처럼 군것질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사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만 불이고,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10위권에 들며, 수출규모가 3천억 불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인데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생활고에 시달려 가족이 집단자살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일자리가 없다고 야단들인데 중소기업에서는 일꾼이 없어 외국에서 노동자를 데려다 쓴다. 이것은 국민의 눈이 너무 높아 시시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어디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할 곳이 없었다. 돈을 벌려고 해도 벌 곳이 없었다. 나도 학교에 다닐 때 품삯을 받고 남의 집일을 한 일이 있었다. 그 집의 거름을 내고 밭을 파는 일이었다. 재를 짊어져 내는데 인분이 많이 섞여있어도 개의치 않고 하였다. 또 사금을 파고자 흙을 파내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 일은 삽으로 흙을 파 지게에 짊어지고 가서 버리고 오는 일이었다. 한 평 넓이로 파 들어가 얼마나 많이 파내느냐에 따라 품삯을 정했다. 나는 어려서 어른들처럼 많이는 못했지만 하루 일을 하여 돈을 벌어 본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때의 상황보다 지금은 매우 다르다. 일할 곳이 없어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한다면 어찌 일할 곳이 없을까?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그런 것이다. 국민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힘들고 어렵다고 안하면 가만히 앉아서 누가 갖다 바치겠는가. 내가 발로 뛰고, 머리를 쓰며, 힘을 들여야 한다. 물론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그 옛날 내가 어렸을 때와는 크게 다르다. 그렇더라도 사정을 생각하여 태도를 정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세 끼니 먹을 것 걱정이 없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을 지녔으며,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요일 별로 할일을 정하여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1주일에 세 번 등산을 하고, 날마다 일정에 맞춰 수필창작, 문인화, 농악, 당구, 배구도 하면서 즐긴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앞으로 살 날이 그리 많지 않다. 건강하게 살다가 아파서 고생하지 않고 가기를 바랄 뿐이다. 스탈린 빵을 먹고 싶어도 사먹지 못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고 지금의 생활을 만끽하며 남은 날을 즐겁게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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