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꽃
2008.05.04 19:41
은행나무꽃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목요야간반 오명순
봄햇살이 따스하게 어깨에 내려 앉는 늦은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름다운 지구의 봄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풍 나온 구름가족들의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어졌다. 가로수인 은행나무였다. 오밀조밀 조그맣던 연두색 은행잎이 어느 사이 초록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나무 밑에 잎인지 꽃인지 모를 무엇인가 잔뜩 떨어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은행나무꽃이었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놀랍고 신기했다. 왜 지금까지 은행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은행나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다. 은행나무에 열매가 있으니 꽃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오늘에야 꽃을 발견한 내가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은행나무꽃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꽃의 색깔이 잎의 색과 비슷했다. 잎이 나오면서 바로 꽃이 따라 피고 금세 떨어지니 그동안 잘 보지 못하고 지나칠 만했다.
은행나무는 봄에는 연둣빛으로, 여름에는 푸르름으로, 가을에는 노란잎으로 1년 내내 아름다운 나무이다. 병충해에도 강하고 공해에도 잘 견디어서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주시내 거리에서 은행나무를 많이 볼 수 있나 보다.
은행나무는 생명력이 강하여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1000년이 넘는다고 하니 장수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하여 식물의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잎과 열매 모두 우리에게 유익하여 잎은 당뇨와 고혈압 치료제뿐만 아니라 피를 맑게 하는 약을 만들고, 열매는 기침 천식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열매의 겉껍질은 냄새가 고약하고 독성이 있어서 함부로 만졌다가는 큰 코를 다친다. 하지만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껍질을 벋겨야 하므로 은행열매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수고를 해야 한다.
겉껍질속에 또 단단한 속껍질이 있으니 철통 같은 방어다. 드디어 알몸인가 하면 또 얇은 껍질이 있다. 열을 가하면 노르스름하던 열매가 녹색으로 변하여 쫄깃하고 맛이 있는데 그렇다고 욕심껏 많이 먹을 수도 없다.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암나무 수나무를 사이사이 섞어서 심어야 열매를 잘 맺는다고 한다. 암나무는 특유의 냄새가 나고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무나 접근 못하게 하려는 깊은 뜻이 있어서일까. 모를 일이다. 그래서 가로수로는 수나무를 많이 심는데 열매를 얻기 위해서 사이좋게 짝을 맞춰 심는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이 한참 무르익던 어느날, 서울에 사는 남자동창이 전화를 했다. 동창회를 하면서 연락처를 알게 된 친구다. 전주에 일이 있어 가니까 차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답답한 찻집보다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좋을 것 같아서 경기전에서 만났었다. 노란 은행잎이 수북히 떨어져 있는 경기전 주위의 모습들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 때 은행잎을 쓸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둔 분들에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연인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튼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노란 은행잎이 한 몫을 한 셈이었다. 그 때 예쁜 은행잎을 주워서 책갈피에 끼워 둔 것이 생각났다. 연하카드에 넣어 보내려고 했었는데 무심하게 아직도 책갈피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쩌다 때를 놓쳐 카드 대신 메일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은행잎이 빛을 보지 못하고 긴 잠을 자고 있으니 얼마나 지루했을까.
부채살 모양의 노오란 은행잎. 올해에는 초록의 은행잎도 주워서 예쁘게 말려야겠다. 젊은 날의 푸르름을 간직한 초록 은행잎과 곱게 노후를 마친 노란 은행잎을 한 방에 두어야지. 그들이 책갈피속에서 세상이야기를 나누며 눈 내리는 긴 겨울밤이 외롭지 않도록 나란히 두어야겠다. 그들의 얘기가 끝날 즈음 나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은행잎의 삶을 담아 긴 여행을 보내리라.
은행잎들은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야 할 그들이 매달려 있던 몸체를 생각하며 기도도 잊지 않을 것이다. 은행나무꽃을 발견한 이 아침이 내 눈속에서 초록으로 반짝이고 은행나무와 더욱 친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고 기쁘다. 여름으로 가기 전에 경기전에 있는 은행나무를 만나러 다시 한 번 가 봐야겠다.
(2008. 4. 19.)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목요야간반 오명순
봄햇살이 따스하게 어깨에 내려 앉는 늦은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름다운 지구의 봄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풍 나온 구름가족들의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어졌다. 가로수인 은행나무였다. 오밀조밀 조그맣던 연두색 은행잎이 어느 사이 초록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나무 밑에 잎인지 꽃인지 모를 무엇인가 잔뜩 떨어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은행나무꽃이었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놀랍고 신기했다. 왜 지금까지 은행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은행나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다. 은행나무에 열매가 있으니 꽃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오늘에야 꽃을 발견한 내가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은행나무꽃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꽃의 색깔이 잎의 색과 비슷했다. 잎이 나오면서 바로 꽃이 따라 피고 금세 떨어지니 그동안 잘 보지 못하고 지나칠 만했다.
은행나무는 봄에는 연둣빛으로, 여름에는 푸르름으로, 가을에는 노란잎으로 1년 내내 아름다운 나무이다. 병충해에도 강하고 공해에도 잘 견디어서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주시내 거리에서 은행나무를 많이 볼 수 있나 보다.
은행나무는 생명력이 강하여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1000년이 넘는다고 하니 장수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하여 식물의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잎과 열매 모두 우리에게 유익하여 잎은 당뇨와 고혈압 치료제뿐만 아니라 피를 맑게 하는 약을 만들고, 열매는 기침 천식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열매의 겉껍질은 냄새가 고약하고 독성이 있어서 함부로 만졌다가는 큰 코를 다친다. 하지만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껍질을 벋겨야 하므로 은행열매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수고를 해야 한다.
겉껍질속에 또 단단한 속껍질이 있으니 철통 같은 방어다. 드디어 알몸인가 하면 또 얇은 껍질이 있다. 열을 가하면 노르스름하던 열매가 녹색으로 변하여 쫄깃하고 맛이 있는데 그렇다고 욕심껏 많이 먹을 수도 없다.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암나무 수나무를 사이사이 섞어서 심어야 열매를 잘 맺는다고 한다. 암나무는 특유의 냄새가 나고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무나 접근 못하게 하려는 깊은 뜻이 있어서일까. 모를 일이다. 그래서 가로수로는 수나무를 많이 심는데 열매를 얻기 위해서 사이좋게 짝을 맞춰 심는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이 한참 무르익던 어느날, 서울에 사는 남자동창이 전화를 했다. 동창회를 하면서 연락처를 알게 된 친구다. 전주에 일이 있어 가니까 차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답답한 찻집보다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좋을 것 같아서 경기전에서 만났었다. 노란 은행잎이 수북히 떨어져 있는 경기전 주위의 모습들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 때 은행잎을 쓸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둔 분들에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연인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튼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노란 은행잎이 한 몫을 한 셈이었다. 그 때 예쁜 은행잎을 주워서 책갈피에 끼워 둔 것이 생각났다. 연하카드에 넣어 보내려고 했었는데 무심하게 아직도 책갈피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쩌다 때를 놓쳐 카드 대신 메일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은행잎이 빛을 보지 못하고 긴 잠을 자고 있으니 얼마나 지루했을까.
부채살 모양의 노오란 은행잎. 올해에는 초록의 은행잎도 주워서 예쁘게 말려야겠다. 젊은 날의 푸르름을 간직한 초록 은행잎과 곱게 노후를 마친 노란 은행잎을 한 방에 두어야지. 그들이 책갈피속에서 세상이야기를 나누며 눈 내리는 긴 겨울밤이 외롭지 않도록 나란히 두어야겠다. 그들의 얘기가 끝날 즈음 나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은행잎의 삶을 담아 긴 여행을 보내리라.
은행잎들은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야 할 그들이 매달려 있던 몸체를 생각하며 기도도 잊지 않을 것이다. 은행나무꽃을 발견한 이 아침이 내 눈속에서 초록으로 반짝이고 은행나무와 더욱 친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고 기쁘다. 여름으로 가기 전에 경기전에 있는 은행나무를 만나러 다시 한 번 가 봐야겠다.
(2008.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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