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2008.07.22 16:27

최기춘 조회 수:750 추천:11

대마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좋은 사람들’ 모임은 내가 1998년 임실군청 재무과에서 함께 근무한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이름은 이상덕 아우가 지었는데 처음에는 다소 어색한 느낌도 들었으나 지나고 보니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소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다가도 우리들이 모이는 날에는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되니 얼마나 모임의 이름이 좋은가 말이다.
  좋은 사람들 부부 일행이 일본 대마도(對馬島)를 방문하던 2008년 6월 21일은 부산에서 배를 타기 전부터 궂은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 비는 정략적으로 대마도 번주 소다유께 백작과 결혼하여 한과 설움 속에서 살다가 결국 이혼하고 귀국한 뒤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난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의 눈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마도와 후쿠오카와의 거리는138km고, 우리나라와는 49.5km로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훨씬 가깝다. 대마도는 우리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뿐더러 조선조 초기에 우리가 점령 했던 적도 있어서인지 그곳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생김새도 일본 본토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나무와 야생화 그리고 풀들은 물론 노루와 토끼, 꿩, 비둘기, 참새 등 동식물들도 우리나라에 있는 것들과 같았다. 대마도시청에서는 점심때가 되면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들려주어 외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대마도는 옛날부터 우리나라를 떠나서는 살기 어려웠던 것 같았다. 섬의 88%가 산림지역이어서 농경시대에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했던 대마도는 일본 본토와는 거리도 멀뿐더러 일본의 식량사정도 우리나라만 못한 실정이라 지리적으로 가깝고 식량이 풍부한 우리나라와 교역을 통해서 식량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우리나라와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했었던 흔적이 많이 보인다. 지금 대마도에서 이루지는 각종 체육, 문화행사 또한 한국과의 친선외교보다는 한국관광객들을 상대로 관광수입을 올리려는 수단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문화유적도 대부분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들이고 문화행사나 체육행사도 우리와 연관된 행사들이 많다. 쓰시마의 아리랑축제는 해마다 8월 첫 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대마도의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행사다. 17세기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 간 문화교류의 첨병역할을 했던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하고 한국과 일본의 전통무용을 포함한 무대행사와 어린이 기마행렬, 노 젓기,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고 했다. 그 외에도 한국이 보이는 해안을 따라 달리는 국경마라톤대회와 한‧일 양국 간 친구음악제 등 체육행사나 문화행사가 대부분 한국인을 위주로 한 행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던지 최선을 다하는 일본인들의 근성이 잘 드러났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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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실군청에 근무하면서 일본 후쿠오카 현 나까가와마찌와 교류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사귄 일본인 친구들이 있어 서로 홈스테이를 하며 자주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고 일본인 친구들도 우리 집을 찾아와 서로 상당히 가깝게 지내고 있다. 2008년 12월에 나까가와마찌를 방문했을 때 환영만찬장에서 나까가와마찌 세무과장으로 정년퇴임한 친구가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국인들은 한일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냥 어물어물 넘길 수도 있었으나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싶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솔직하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 한국에는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낫다.” “이웃과는 황소 한 마리 갖고도 다투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이니 마음도 터놓고 거리만큼 마음도 가까웠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마음은 먼 나라다. 우리 국민들은 거리가 가까우니 마음도 가까웠으면 하는 생각인데, 당신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신사참배, 역사왜곡, 독도문제 등으로 우리 한국국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다. 뿐더러 과거사문제도 독일처럼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청산되지 않는 한 항상 어정쩡한 관계로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많은 일본인들도 공감을 표하면서 한일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개인 간에도 이웃과는 잘 지내야 하듯 나라 간에도 이웃 간에는 우방으로 잘 지내야하는데 참 불행한일이다. 유럽이 과거 그 많을 전쟁을 치루고 도 지금은 화폐까지도 통합하여 쓰면서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낄 뿐이다.

우리 일행은 덕혜옹주의 결혼봉축기념비와 고려 문, 통신사 기념비를 답사하고 슈겐지[修善寺]에 세워진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 앞에서는 묵념도 올렸다. 국력이 약하여 혹독하게 당한 우리 선조들의 비참한 과거사를 되돌아보고 국력이 약하면 결국 그 피해는 모든 국민들이 본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대마도는 인구가 32,000명 정도로 작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국내공항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마도 여행은 첫 방문지가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여서인지 여행기간 내내 한일관계를 주로 생각하는 여행이 되어 즐거운 여행이라기보다는 뜻 깊은 여행이라 생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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