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무엇으로 남을까
2008.08.04 11:45
내 이름은 무엇으로 남을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정원정
내게는 숙인창영조씨실기 <淑人昌寧曺氏實記>란 책이 한 권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책이다. 고창에 사는 유씨(柳氏)라는 어떤 아들이 어머니를 추모해서 발간한 내용이다. 소화 12년이니 서기로는 1937년인 셈이다. 그의 어머니의 초상화, 생가, 장례마당, 묘지의 사진과 조 씨의 이력, 조문객의 직함과 이름, 조전 보내온 이들의 이름, 모두 천여 명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사진 한 장, 책 한 권조차 귀한 집에서 심심하면 책장을 넘겨 본 책이다. 조문객 중에는 도지사, 군수, 조선총독 촉탁, 공의, 전 의관, 자동차회사 사장, 전북일보 사장, 은행 두취, 경찰서 경보 등 별별 직함이 다 있었다. 내가 소녀 때쯤에는 직함만 봐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우리 집에서 언제 없어졌는지 내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이 50줄에 들어서면서 논문 한 편을 쓸 기회가 있었다. 여성문제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다. 서울 청계천의 헌 책방을 찾아다녔다. 어느 책방에서 주인이 안에서 고서나 다름없는 책을 정하게 들고 나오면서 이런 것도 필요 하느냐고 묻는데 <숙인창영조씨실기>가 아닌가. 덴겁했다. 겉으로는 티를 안내고 가탈없이 샀다. 자료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 내 집에서 보았던 그리운 책이기도 하고, 거기에는 내 아버지의 직함과 성함이 조문객 중의 한 사람으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귀중품인 양 사가지고 왔었다.
우연찮게 여성문제에 대한 참고자료도 덤으로 덧붙이게 되었다. 몇 백 명 조문객 중 여성 40여 명의 명단도 있었다. 그러나 거의 이름이 없고 누구의 자친, 누구의 조모, 이런 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 때로부터 40여 년 전 일인데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라는 배경이 이름 구실을 한 것이다. 여성들은 결혼하는 동시에 이름이 숨어 버리는 것이었다. 박 서방 댁, 김 서방 댁이라 부른 것은 남편의 성을 따라 통용되었다. 지금도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친정 지명을 따라 고창 댁, 부안 댁 하고 부른다. 또 어떤 이는 독고물 댁이란 호칭도 있어 참 재미있다. 더러 집안끼리 최 실, 윤 실이라고 부르던 호칭도 향수어린 이름이다. 옛날이라 해서 여성들의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00여 년 전에 출생하셨던 내 어머니도 김기수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름은 숨어 있었다. 심지어 신사임당 신 씨 같은 이도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채 율곡의 모당으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가 조선사회를 거쳐 오면서 부계중심의 가족제도가 여성들을 묶어 놓았었다. 내외법으로 외출까지도 제약을 받았으니 어찌 이름인들 떳떳하게 불려졌겠는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지극히 행복하다. 내 이름을 정정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어디서든 이름을 대면 모든 신상이 들어나니 얼마나 밝은 세상인가. 나는 글을 쓰면서 윗자리에 내 이름 석자를 넣게 될 때 야릇한 충만감을 갖는 때가 있다. 내 이름을 걸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 속에 담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뒤에 하나로 묶어서 책으로 만든다면 개인사가 될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의 흔적도 될 것이다. 나아가서 가족사가 되고 어쩌면 좁은 여성사로 어느 구석엔가 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자신을 정리하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왔다 가면서 이름을 남기는 것도 좋은 일이려니 싶다. 이름이 있는 만큼 이름값을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자기가 살아온 흔적은 기록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살았느냐가 곱씹어 볼 일이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마당에 서 있던 큰 흰 목련 한 그루가 팔려 나갔다. 20년생 나무였다. 같은 해에 심은 나무를 제치고 의기양양 마음껏 어깨와 손을 펴고 튼실하게 자랐다. 태깔이 좋으니 누가 봐도 욕심을 냈다. 짱짱하게 그늘도 넓혀 주니 좋았다.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 자리와 주위환경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 날에 심은 나무인데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다른 나무는 누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나무도 언젠가는 제 몫을 할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는가. 좋은 주위환경에 있는 사람이나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나 다 자기 몫을 하지 않던가. 우리 집 울안의 나무들은 나와 고락을 같이 했다. 처음에 빈 터에 감나무만 엉성하게 40여 그루 서 있을 뿐 허허벌판이었다. 푸서리만 우거진 자갈밭에 작은 나무를 심어 놓고 물을 주고 전지하며 그들을 작품화하면서 때로는 말을 걸어 내 외로움을 달랬다. 바람 부는 밤으로는 감나무 사이사이로 휘몰아가는 바람소리가 꼭 귀신 소리로만 들렸다. 그래도 날이 새면 그 나무 하나하나가 유일한 이야기 상대였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면서 나무들은 자라서 내가 쳐다봐야 꼭대기를 바라 볼 수 있을 만큼 키가 커 버렸다. 나무가 떠난 휑뎅그렁한 자리를 바라보니 마음이 허전하고 서운했다. 다른 곳에 가서 사랑과 대우를 받기 바란다. 나도 언젠가는 멀리 떠날 터인데 내 뒤끝은 어떤 모습일까. 내 이름은 어떻게 무엇으로 남을까. 이래저래 썰썰한 슬픔이 밀려온다. 어정칠월, 작열하는 여름 햇살이 마당가득 쏟아지고 있다. 나무들은 더위에 숨이 멎었는지 가지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더위를 잊은 채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2008. 8. 3.)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정원정
내게는 숙인창영조씨실기 <淑人昌寧曺氏實記>란 책이 한 권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책이다. 고창에 사는 유씨(柳氏)라는 어떤 아들이 어머니를 추모해서 발간한 내용이다. 소화 12년이니 서기로는 1937년인 셈이다. 그의 어머니의 초상화, 생가, 장례마당, 묘지의 사진과 조 씨의 이력, 조문객의 직함과 이름, 조전 보내온 이들의 이름, 모두 천여 명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사진 한 장, 책 한 권조차 귀한 집에서 심심하면 책장을 넘겨 본 책이다. 조문객 중에는 도지사, 군수, 조선총독 촉탁, 공의, 전 의관, 자동차회사 사장, 전북일보 사장, 은행 두취, 경찰서 경보 등 별별 직함이 다 있었다. 내가 소녀 때쯤에는 직함만 봐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우리 집에서 언제 없어졌는지 내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이 50줄에 들어서면서 논문 한 편을 쓸 기회가 있었다. 여성문제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다. 서울 청계천의 헌 책방을 찾아다녔다. 어느 책방에서 주인이 안에서 고서나 다름없는 책을 정하게 들고 나오면서 이런 것도 필요 하느냐고 묻는데 <숙인창영조씨실기>가 아닌가. 덴겁했다. 겉으로는 티를 안내고 가탈없이 샀다. 자료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 내 집에서 보았던 그리운 책이기도 하고, 거기에는 내 아버지의 직함과 성함이 조문객 중의 한 사람으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귀중품인 양 사가지고 왔었다.
우연찮게 여성문제에 대한 참고자료도 덤으로 덧붙이게 되었다. 몇 백 명 조문객 중 여성 40여 명의 명단도 있었다. 그러나 거의 이름이 없고 누구의 자친, 누구의 조모, 이런 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 때로부터 40여 년 전 일인데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라는 배경이 이름 구실을 한 것이다. 여성들은 결혼하는 동시에 이름이 숨어 버리는 것이었다. 박 서방 댁, 김 서방 댁이라 부른 것은 남편의 성을 따라 통용되었다. 지금도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친정 지명을 따라 고창 댁, 부안 댁 하고 부른다. 또 어떤 이는 독고물 댁이란 호칭도 있어 참 재미있다. 더러 집안끼리 최 실, 윤 실이라고 부르던 호칭도 향수어린 이름이다. 옛날이라 해서 여성들의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00여 년 전에 출생하셨던 내 어머니도 김기수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름은 숨어 있었다. 심지어 신사임당 신 씨 같은 이도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채 율곡의 모당으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가 조선사회를 거쳐 오면서 부계중심의 가족제도가 여성들을 묶어 놓았었다. 내외법으로 외출까지도 제약을 받았으니 어찌 이름인들 떳떳하게 불려졌겠는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지극히 행복하다. 내 이름을 정정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어디서든 이름을 대면 모든 신상이 들어나니 얼마나 밝은 세상인가. 나는 글을 쓰면서 윗자리에 내 이름 석자를 넣게 될 때 야릇한 충만감을 갖는 때가 있다. 내 이름을 걸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 속에 담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뒤에 하나로 묶어서 책으로 만든다면 개인사가 될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의 흔적도 될 것이다. 나아가서 가족사가 되고 어쩌면 좁은 여성사로 어느 구석엔가 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자신을 정리하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왔다 가면서 이름을 남기는 것도 좋은 일이려니 싶다. 이름이 있는 만큼 이름값을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자기가 살아온 흔적은 기록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살았느냐가 곱씹어 볼 일이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마당에 서 있던 큰 흰 목련 한 그루가 팔려 나갔다. 20년생 나무였다. 같은 해에 심은 나무를 제치고 의기양양 마음껏 어깨와 손을 펴고 튼실하게 자랐다. 태깔이 좋으니 누가 봐도 욕심을 냈다. 짱짱하게 그늘도 넓혀 주니 좋았다.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 자리와 주위환경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 날에 심은 나무인데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다른 나무는 누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나무도 언젠가는 제 몫을 할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는가. 좋은 주위환경에 있는 사람이나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나 다 자기 몫을 하지 않던가. 우리 집 울안의 나무들은 나와 고락을 같이 했다. 처음에 빈 터에 감나무만 엉성하게 40여 그루 서 있을 뿐 허허벌판이었다. 푸서리만 우거진 자갈밭에 작은 나무를 심어 놓고 물을 주고 전지하며 그들을 작품화하면서 때로는 말을 걸어 내 외로움을 달랬다. 바람 부는 밤으로는 감나무 사이사이로 휘몰아가는 바람소리가 꼭 귀신 소리로만 들렸다. 그래도 날이 새면 그 나무 하나하나가 유일한 이야기 상대였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면서 나무들은 자라서 내가 쳐다봐야 꼭대기를 바라 볼 수 있을 만큼 키가 커 버렸다. 나무가 떠난 휑뎅그렁한 자리를 바라보니 마음이 허전하고 서운했다. 다른 곳에 가서 사랑과 대우를 받기 바란다. 나도 언젠가는 멀리 떠날 터인데 내 뒤끝은 어떤 모습일까. 내 이름은 어떻게 무엇으로 남을까. 이래저래 썰썰한 슬픔이 밀려온다. 어정칠월, 작열하는 여름 햇살이 마당가득 쏟아지고 있다. 나무들은 더위에 숨이 멎었는지 가지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더위를 잊은 채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2008.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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