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손님/김상권
2012.05.31 07:09
뜻밖의 손님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전혀 생각지도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도 밤 9시가 넘어서다. 그는 황의정이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선물이라면서 우유 두 팩을 내 놓았다. 고맙고 반가웠다. 내가 그 학생을 만난 것은 전주 H초등학교에 근무했을 때다. 나는 4학년 9반 담임이었고 그는 옆 반인 4학년 8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꼭 인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참 착하다.”라고 칭찬해주곤 했었다.
그 어린 학생이 이젠 40대 중반이 되어 우리 집을 찾은 것이다. 작업복 차림이었고 얼굴은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80이 넘은 노모(老母)와 부인 그리고 2남 1녀와 함께 살고 있단다. 일정한 직업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그의 삶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그는 오늘 뿐만 아니라 몇 년 전에도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우리 집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또 8년 전에는 내가 근무하는 완주군 B초등학교를 찾아 온 적도 있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약 2㎞를 걸어서 온 것이다. 작은 화분을 들고서. 어떻게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알았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자기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찾지 않고 나를 찾다니…….
황의정의 방문을 받고서야 오늘이 ‘스승의 날’이란 걸 알았다. 정년퇴직을 한 뒤로는 스승의 날을 잊고 지냈는데 그 때문에 새삼스럽게 나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가르쳤으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많이 부족한 교사였다.
주위에서 제자 자랑을 많이 하는 선배나 동료 선생님을 본다. 흔히 말하는 출세한 제자들을 자랑한다. 그럴 때마다 주눅이 든다. 나에겐 그런 제자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는 실패한 교사라 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지식위주의 교육을 시킨 교사였지, 스승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다. 나에겐 거창한 제자가 없는 대신 황의정 같은 착한 제자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
참 스승은 누구일까.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특히 어머니의 보살핌이 크다. 즉 부모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의 첫 스승은 부모이며 가정이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도 있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과수원 옆길에 떨어진 알밤 1개를 주웠다. 저녁식사를 하려고 할 때 그걸 부모님께 드렸더니 부모님은 다정한 말씨로 이렇게 말하였다.
“얘야, 그 알밤이 비록 사람이 다니는 길에 떨어졌다 해도 우리 것은 아니지 않느냐? 바로 그 자리에 놓고 오너라.”
그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부모님은 저녁밥을 먹지 않고 기다렸다가 그 아이가 돌아오자 같이 식사를 했다.
다른 한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다가 우연히 땅에 떨어진 500원 짜리 동전을 주웠다. 그걸 어머니께 드렸더니
“이 귀한 것을 어디서 났느냐?”
고 하면서 칭찬을 했다. 그 어린 아이는 칭찬이 또 듣고 싶어서 땅만 쳐다보고 다녔지만 동전은 없었다. 결국 친구의 돈을 훔쳐서 어머니께 갔다 드렸더니 영문도 모르고 역시 칭찬을 했다. 알밤을 주은 아이는 나중에 훌륭한 학자가 됐고 돈을 주은 아이는 강도가 되어 교도소에 가는 신세가 됐다. 이처럼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가정교육의 소중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와 너, 어느 누구든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는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스승은 한 사람일 수도, 여럿일 수도 있다. 나이에 상관이 없다. 어린이도 스승이 될 수 있고, 친구나 제자도 스승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언행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반드시 그 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공자는 말했다. 곧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공자 자신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선(善)과 악(惡)을 가졌다면 둘 다 스승이 된다는 말이다. 선이면 힘써 본받고, 악이면 자신에게도 행여 악이 있는가, 반성하고 고쳐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도 스승이 있고, 선인들과 선인들의 글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스승은 인간뿐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갈이나 물, 산, 숲, 등에서 무언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바로 나의 스승인 것이다. 자갈에서 인내를, 물에서 포용력을, 산이나 숲에서 베풂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스승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내 안에는 많은 스승이 있다. 내 마음속에 스승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스승은 누구인가. 아마도 오늘 뜻밖에 찾아온 손님이 나의 스승이려니 싶다.
(2012. 5. 15.)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전혀 생각지도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도 밤 9시가 넘어서다. 그는 황의정이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선물이라면서 우유 두 팩을 내 놓았다. 고맙고 반가웠다. 내가 그 학생을 만난 것은 전주 H초등학교에 근무했을 때다. 나는 4학년 9반 담임이었고 그는 옆 반인 4학년 8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꼭 인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참 착하다.”라고 칭찬해주곤 했었다.
그 어린 학생이 이젠 40대 중반이 되어 우리 집을 찾은 것이다. 작업복 차림이었고 얼굴은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80이 넘은 노모(老母)와 부인 그리고 2남 1녀와 함께 살고 있단다. 일정한 직업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그의 삶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그는 오늘 뿐만 아니라 몇 년 전에도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우리 집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또 8년 전에는 내가 근무하는 완주군 B초등학교를 찾아 온 적도 있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약 2㎞를 걸어서 온 것이다. 작은 화분을 들고서. 어떻게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알았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자기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찾지 않고 나를 찾다니…….
황의정의 방문을 받고서야 오늘이 ‘스승의 날’이란 걸 알았다. 정년퇴직을 한 뒤로는 스승의 날을 잊고 지냈는데 그 때문에 새삼스럽게 나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가르쳤으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많이 부족한 교사였다.
주위에서 제자 자랑을 많이 하는 선배나 동료 선생님을 본다. 흔히 말하는 출세한 제자들을 자랑한다. 그럴 때마다 주눅이 든다. 나에겐 그런 제자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는 실패한 교사라 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지식위주의 교육을 시킨 교사였지, 스승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다. 나에겐 거창한 제자가 없는 대신 황의정 같은 착한 제자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
참 스승은 누구일까.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특히 어머니의 보살핌이 크다. 즉 부모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의 첫 스승은 부모이며 가정이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도 있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과수원 옆길에 떨어진 알밤 1개를 주웠다. 저녁식사를 하려고 할 때 그걸 부모님께 드렸더니 부모님은 다정한 말씨로 이렇게 말하였다.
“얘야, 그 알밤이 비록 사람이 다니는 길에 떨어졌다 해도 우리 것은 아니지 않느냐? 바로 그 자리에 놓고 오너라.”
그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부모님은 저녁밥을 먹지 않고 기다렸다가 그 아이가 돌아오자 같이 식사를 했다.
다른 한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다가 우연히 땅에 떨어진 500원 짜리 동전을 주웠다. 그걸 어머니께 드렸더니
“이 귀한 것을 어디서 났느냐?”
고 하면서 칭찬을 했다. 그 어린 아이는 칭찬이 또 듣고 싶어서 땅만 쳐다보고 다녔지만 동전은 없었다. 결국 친구의 돈을 훔쳐서 어머니께 갔다 드렸더니 영문도 모르고 역시 칭찬을 했다. 알밤을 주은 아이는 나중에 훌륭한 학자가 됐고 돈을 주은 아이는 강도가 되어 교도소에 가는 신세가 됐다. 이처럼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가정교육의 소중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와 너, 어느 누구든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는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스승은 한 사람일 수도, 여럿일 수도 있다. 나이에 상관이 없다. 어린이도 스승이 될 수 있고, 친구나 제자도 스승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언행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반드시 그 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공자는 말했다. 곧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공자 자신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선(善)과 악(惡)을 가졌다면 둘 다 스승이 된다는 말이다. 선이면 힘써 본받고, 악이면 자신에게도 행여 악이 있는가, 반성하고 고쳐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도 스승이 있고, 선인들과 선인들의 글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스승은 인간뿐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갈이나 물, 산, 숲, 등에서 무언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바로 나의 스승인 것이다. 자갈에서 인내를, 물에서 포용력을, 산이나 숲에서 베풂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스승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내 안에는 많은 스승이 있다. 내 마음속에 스승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스승은 누구인가. 아마도 오늘 뜻밖에 찾아온 손님이 나의 스승이려니 싶다.
(2012.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