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이 오면
2012.09.24 14:39
봄, 봄이 오면
金 鶴
오늘은 立春. 겨우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벌거벗었던 나무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얼굴을 붉히는 날이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만큼이라도 치부를 가릴 잎새가 그리운 날이다. 겨울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 버리고 화사한 봄맞이를 나서는 날이다. 입춘, 그것은 겨울의 종착점이자 봄의 출발점이다.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왔다.
봄이다.
어느새 봄이다.
모악산(母岳山) 산마루에는 새치처럼 잔설(殘雪)이 희끗희끗하지만, 벌써 내 가슴속에 슬며시 들어온 봄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 마음을 점령당한 탓인지 내 눈에는 봄의 모습이 보이고, 내 귀에는 봄의 소리가 들리며, 내 코에는 봄의 냄새가 잡히고, 내 입에는 봄의 맛이 느껴진다. 유난히도 눈이 자주 내렸고 추위가 들쭉날쭉 했던 지난겨울 내내, 나는 봄을 기다리며 움츠리고 살았다.
봄이 오면 봄노래를 부르고 싶다. 유행가의 봄노래도 좋지만 그보다는 봄을 소재로 한 동요를 더 부르고 싶다. 나이는 비록 이순(耳順)을 넘어 고희(古稀) 고개를 넘었을지라도 동요를 부르며 사그라져 가는 동심(童心)을 되찾고 싶다.
봄이 오면 봄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노란 약 병아리들의 도란거리는 소리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농부들의 쟁기질 소리, 탈탈거리며 바쁘게 달리는 경운기 소리,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의 방망이질 소리, 골목 안을 활기차게 하는 어린이들의 뛰노는 소리, 앞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이런 봄의 소리를 들으며 느슨해진 삶에 새로운 활력을 충전하고 싶다.
봄이 오면 책을 읽고 싶다. 새 학년 참고서를 사는 학생들로 붐빌 서점에 들어가 시집이나 수필집 몇 권을 사는 일도 즐거움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 시집이나 수필집을 펼쳐들고 몇 편을 읽다가 지루하면 나폴레옹 식 낮잠을 잠깐씩 즐길 수 있는 것도 봄의 낭만이 아니랴. 겨우내 삭막해진 마음을 맑고 밝게 가꾸려면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읽는 게 안성맞춤이려니 싶다. 그리하여 내 마음이 봄의 꽃밭처럼 고와진다면 그게 내 이웃으로도 번지지 않겠는가.
봄이 오면 옛 친구를 만나고 싶다. 아득한 옛날의 학창시절, 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났고 졸업하면서 헤어졌던 정다운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울 것이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 동고동락했던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나는 일 역시 동창생을 만나는 일 못지않게 기쁘기 마련이다. 서로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작해야 애경사(哀慶事) 때나 얼굴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현대인의 비극이다. 바람결에 안부 몇 번 듣고 나면 나이만 자꾸 불어나는 게 요즘의 삶이 아니던가. 나 스스로부터 만날 기회를 만들고, 만나기가 어렵거든 전화나 편지라도 해야겠다. 이것 역시 가는 정 오는 정이 아니랴.
봄이 오면 바깥나들이를 자주 하고 싶다. 틈나는 대로, 들로 산으로 쏘다니면서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다가 쑥이며 달래, 냉이, 씀바귀 등 봄나물을 캐어 식탁에 올리면 그 식탁이 얼마나 풍성할 것인가. 밥상머리에 앉은 식구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고울 것이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이웃집에도 봄맛을 전해 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봄이 오면 글을 쓰고 싶다. 누구나 읽고 나서 머리를 끄덕이고 무릎을 칠 그런 글을 한 편 쓰고 싶다. 한 번 읽고 나서도 다시 또 한 번 더 읽고 싶어 하는 그런 작품을 빚고 싶다. 사탕처럼 달콤하기도 하고, 숭늉처럼 고소하기도 하며, 비타민처럼 몸에 이로운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까. 혼돈과 불확실성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고 가닥을 잡아주며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려니 하는 기대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원고지 앞에 앉는다.
봄이 오면 미움을 녹여 사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긍정적이며 낙천적이고, 항상 남을 이해하는 자세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때때로 궤도를 벗어나는 수가 많다. 수양이 덜된 탓이다. 이제부터라도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들 듯 미움을 녹여 사랑을 만들 줄 아는 마음 밭을 일궈가야 하려니 싶다.
봄! 희망과 약동의 계절인 이 봄부터 모두의 마음 밭에 사랑과 웃음의 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金 鶴
오늘은 立春. 겨우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벌거벗었던 나무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얼굴을 붉히는 날이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만큼이라도 치부를 가릴 잎새가 그리운 날이다. 겨울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 버리고 화사한 봄맞이를 나서는 날이다. 입춘, 그것은 겨울의 종착점이자 봄의 출발점이다.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왔다.
봄이다.
어느새 봄이다.
모악산(母岳山) 산마루에는 새치처럼 잔설(殘雪)이 희끗희끗하지만, 벌써 내 가슴속에 슬며시 들어온 봄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 마음을 점령당한 탓인지 내 눈에는 봄의 모습이 보이고, 내 귀에는 봄의 소리가 들리며, 내 코에는 봄의 냄새가 잡히고, 내 입에는 봄의 맛이 느껴진다. 유난히도 눈이 자주 내렸고 추위가 들쭉날쭉 했던 지난겨울 내내, 나는 봄을 기다리며 움츠리고 살았다.
봄이 오면 봄노래를 부르고 싶다. 유행가의 봄노래도 좋지만 그보다는 봄을 소재로 한 동요를 더 부르고 싶다. 나이는 비록 이순(耳順)을 넘어 고희(古稀) 고개를 넘었을지라도 동요를 부르며 사그라져 가는 동심(童心)을 되찾고 싶다.
봄이 오면 봄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노란 약 병아리들의 도란거리는 소리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농부들의 쟁기질 소리, 탈탈거리며 바쁘게 달리는 경운기 소리,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의 방망이질 소리, 골목 안을 활기차게 하는 어린이들의 뛰노는 소리, 앞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이런 봄의 소리를 들으며 느슨해진 삶에 새로운 활력을 충전하고 싶다.
봄이 오면 책을 읽고 싶다. 새 학년 참고서를 사는 학생들로 붐빌 서점에 들어가 시집이나 수필집 몇 권을 사는 일도 즐거움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 시집이나 수필집을 펼쳐들고 몇 편을 읽다가 지루하면 나폴레옹 식 낮잠을 잠깐씩 즐길 수 있는 것도 봄의 낭만이 아니랴. 겨우내 삭막해진 마음을 맑고 밝게 가꾸려면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읽는 게 안성맞춤이려니 싶다. 그리하여 내 마음이 봄의 꽃밭처럼 고와진다면 그게 내 이웃으로도 번지지 않겠는가.
봄이 오면 옛 친구를 만나고 싶다. 아득한 옛날의 학창시절, 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났고 졸업하면서 헤어졌던 정다운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울 것이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 동고동락했던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나는 일 역시 동창생을 만나는 일 못지않게 기쁘기 마련이다. 서로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작해야 애경사(哀慶事) 때나 얼굴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현대인의 비극이다. 바람결에 안부 몇 번 듣고 나면 나이만 자꾸 불어나는 게 요즘의 삶이 아니던가. 나 스스로부터 만날 기회를 만들고, 만나기가 어렵거든 전화나 편지라도 해야겠다. 이것 역시 가는 정 오는 정이 아니랴.
봄이 오면 바깥나들이를 자주 하고 싶다. 틈나는 대로, 들로 산으로 쏘다니면서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다가 쑥이며 달래, 냉이, 씀바귀 등 봄나물을 캐어 식탁에 올리면 그 식탁이 얼마나 풍성할 것인가. 밥상머리에 앉은 식구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고울 것이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이웃집에도 봄맛을 전해 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봄이 오면 글을 쓰고 싶다. 누구나 읽고 나서 머리를 끄덕이고 무릎을 칠 그런 글을 한 편 쓰고 싶다. 한 번 읽고 나서도 다시 또 한 번 더 읽고 싶어 하는 그런 작품을 빚고 싶다. 사탕처럼 달콤하기도 하고, 숭늉처럼 고소하기도 하며, 비타민처럼 몸에 이로운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까. 혼돈과 불확실성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고 가닥을 잡아주며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려니 하는 기대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원고지 앞에 앉는다.
봄이 오면 미움을 녹여 사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긍정적이며 낙천적이고, 항상 남을 이해하는 자세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때때로 궤도를 벗어나는 수가 많다. 수양이 덜된 탓이다. 이제부터라도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들 듯 미움을 녹여 사랑을 만들 줄 아는 마음 밭을 일궈가야 하려니 싶다.
봄! 희망과 약동의 계절인 이 봄부터 모두의 마음 밭에 사랑과 웃음의 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