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에 들어서며....
2014.12.28 03:46
종착역에 들어서며....
올해의 막달, 12월도 중반이 넘었습니다. 뭔가 똑 부러진 실과(實果)도 없이 또 한해를 보내며 1년이라는 상자에 담아 놓았던 마음의 일기장을 한쪽 두 쪽 새로이 펼쳐 봅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다수가 나름대로 정신없이 ‘말’처럼 달려 왔다고 합니다. 해 마다이긴 하지만, 시간이라는 ‘발찌‘를 벗기려고 넘어지고 다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달렸다고 합니다. 혹자(或者)는 사는 게 ’희망이 없다‘고 탄식했고 어떤 이는 맨날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들만 가득하다고 이제는 신문 보기조차 짜증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희망을 일구는 작은 노력들도 많았다고 생각하면서.... 12월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랐고, 여유 없이 살긴 했지만 그래도 돌아다보면 지난 세월은 항상 아쉽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인생,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삶이라지만 그중에서도 무엇을 얻었느냐기 보다는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를 먼저 생각해 봅니다.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ㅡ 두 가지 모두가 다 중요하겠으나 둘 중 하나를 간직해야 한다면 저는 ‘살아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존재’를 상실하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해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향하면 그림자를 볼 수가 없다“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이 문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경구입니다. 혹자는 너무 앞만 보고 살면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겠지만, 눈멀고 귀가 들리지 않았던 헬렌 켈러가 그 힘든 삶 속에서도 꽃피운 성공을 떠올려 볼 때, 밝고 명랑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인생은 틀림없이 밝아진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얼굴이 햇살같이 밝아야 복이 옵니다. 자신의 불행을 자꾸 한탄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면 어둠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 끝에는 파멸만이 있을 뿐이지요. 밝음은 어둠을 이기는 법입니다. 밝은 얼굴은 역경을 극복하게 해주고 성공을 가져다주는 복덩어리입니다.
흔히 입만 웃는 미소는 가식이고 이를 '썩소'라고 합니다. 눈이 같이 웃어야 진짜 ‘미소’라는 말이지요.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눈가에 주름살이 잡히고, 이를 '뒤셴 미소(Duchenne Smile)'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런 근육 움직임을 가장 먼저 발견한 프랑스의 신경 해부학자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이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번 울고 싶을 때 두 번 웃는다' 는 마음가짐으로 ‘썩소’ 보다는 ‘미소’로 모든 일을 밝고 긍정적으로 다가갔었다면... 아마 못 이룰 일이 없었던 한 해가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입니다만, 그러려면 우선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논에 물꼬를 트듯 마음을 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논과 아래 논이 무던히 양보해야 나락이 매달리고 여물 듯 서로가 배려하고 참아주고 견뎠어야 했는데... 그러나 현실을 보면 우리에겐 머리로 알고 있는 그것이 가슴까지 전달되어 행동으로 보이기에는 아직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내가 우선이고, 내 가족이 먼저고, 나의 이익이 먼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소설가 복거일씨는 "건강한 사회를 세우려면 도덕적으로 시민 의식의 성숙이 필요“ 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정부 규제가 줄고 개인의 권한이 늘어나면 도덕심도 커진다, 이는 개인들이 시장에서 공동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며 신용을 쌓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정부 권한이 크다 보면 개인들이 작은 이익을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게 되고, 부패의 제도화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신이 커지면 협력이 부실해지고 도덕이 약해진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도덕이 나온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그는 "시장만으로 도덕 사회가 이뤄지진 않는다"면서 "개인이 각자 할 일을 다 하면서 ‘플러스 알파’까지 행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즉 ‘플러스 알파’는 각자가 생업에 충실하면서 ‘이웃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이라면서 ‘도덕 재무장 운동’을 주창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달라스 동포사회에도 지난해의 묵은 ‘떼‘가 있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털었으면 합니다. 우리 미주 동포 모두가 앞으로는 각자가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이웃을 돌보고 배려’하는 ‘플러스 알파‘를 잉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새로운 시발(始發)역, 양(羊)띠 새해가 문을 엽니다. 그 때는 너도나도 함께 더불어 ‘희망찾기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합니다. 돌아다보면 어딘가에 ‘순한 양(羊)’들의 눈망울 보듯 우리들을 미소 짓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희망을 북돋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을 찾아 서로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작은 희망들이 모여져 세상을 바꾸는 큰 힘으로 만들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해의 막달, 12월도 중반이 넘었습니다. 뭔가 똑 부러진 실과(實果)도 없이 또 한해를 보내며 1년이라는 상자에 담아 놓았던 마음의 일기장을 한쪽 두 쪽 새로이 펼쳐 봅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다수가 나름대로 정신없이 ‘말’처럼 달려 왔다고 합니다. 해 마다이긴 하지만, 시간이라는 ‘발찌‘를 벗기려고 넘어지고 다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달렸다고 합니다. 혹자(或者)는 사는 게 ’희망이 없다‘고 탄식했고 어떤 이는 맨날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들만 가득하다고 이제는 신문 보기조차 짜증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희망을 일구는 작은 노력들도 많았다고 생각하면서.... 12월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랐고, 여유 없이 살긴 했지만 그래도 돌아다보면 지난 세월은 항상 아쉽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인생,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삶이라지만 그중에서도 무엇을 얻었느냐기 보다는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를 먼저 생각해 봅니다.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ㅡ 두 가지 모두가 다 중요하겠으나 둘 중 하나를 간직해야 한다면 저는 ‘살아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존재’를 상실하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해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향하면 그림자를 볼 수가 없다“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이 문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경구입니다. 혹자는 너무 앞만 보고 살면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겠지만, 눈멀고 귀가 들리지 않았던 헬렌 켈러가 그 힘든 삶 속에서도 꽃피운 성공을 떠올려 볼 때, 밝고 명랑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인생은 틀림없이 밝아진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얼굴이 햇살같이 밝아야 복이 옵니다. 자신의 불행을 자꾸 한탄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면 어둠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 끝에는 파멸만이 있을 뿐이지요. 밝음은 어둠을 이기는 법입니다. 밝은 얼굴은 역경을 극복하게 해주고 성공을 가져다주는 복덩어리입니다.
흔히 입만 웃는 미소는 가식이고 이를 '썩소'라고 합니다. 눈이 같이 웃어야 진짜 ‘미소’라는 말이지요.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눈가에 주름살이 잡히고, 이를 '뒤셴 미소(Duchenne Smile)'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런 근육 움직임을 가장 먼저 발견한 프랑스의 신경 해부학자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이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번 울고 싶을 때 두 번 웃는다' 는 마음가짐으로 ‘썩소’ 보다는 ‘미소’로 모든 일을 밝고 긍정적으로 다가갔었다면... 아마 못 이룰 일이 없었던 한 해가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입니다만, 그러려면 우선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논에 물꼬를 트듯 마음을 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논과 아래 논이 무던히 양보해야 나락이 매달리고 여물 듯 서로가 배려하고 참아주고 견뎠어야 했는데... 그러나 현실을 보면 우리에겐 머리로 알고 있는 그것이 가슴까지 전달되어 행동으로 보이기에는 아직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내가 우선이고, 내 가족이 먼저고, 나의 이익이 먼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소설가 복거일씨는 "건강한 사회를 세우려면 도덕적으로 시민 의식의 성숙이 필요“ 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정부 규제가 줄고 개인의 권한이 늘어나면 도덕심도 커진다, 이는 개인들이 시장에서 공동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며 신용을 쌓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정부 권한이 크다 보면 개인들이 작은 이익을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게 되고, 부패의 제도화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신이 커지면 협력이 부실해지고 도덕이 약해진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도덕이 나온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그는 "시장만으로 도덕 사회가 이뤄지진 않는다"면서 "개인이 각자 할 일을 다 하면서 ‘플러스 알파’까지 행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즉 ‘플러스 알파’는 각자가 생업에 충실하면서 ‘이웃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이라면서 ‘도덕 재무장 운동’을 주창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달라스 동포사회에도 지난해의 묵은 ‘떼‘가 있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털었으면 합니다. 우리 미주 동포 모두가 앞으로는 각자가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이웃을 돌보고 배려’하는 ‘플러스 알파‘를 잉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새로운 시발(始發)역, 양(羊)띠 새해가 문을 엽니다. 그 때는 너도나도 함께 더불어 ‘희망찾기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합니다. 돌아다보면 어딘가에 ‘순한 양(羊)’들의 눈망울 보듯 우리들을 미소 짓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희망을 북돋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을 찾아 서로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작은 희망들이 모여져 세상을 바꾸는 큰 힘으로 만들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