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4 08:48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50313/1555880
가능성, 그 안의 열쇠
이희숙
나는 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한다. 밤새 잠겼던 여러 개의 문을 연 후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바람으로 환기시킨다. 가슴을 젖히고 푸른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주어진 시간을 설렘으로 맞이한다. 손에 들린 열쇠는 하루를 여는 중요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닫힌 공간의 문을 열고자 하는 호기심은 누구나 추구하는 욕구다.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재미있는 발명품이 열쇠일 것이다. 열쇠는 견고한 빗장을 연다고 할까. 굳게 갇힌 비밀의 공간을 손쉽게 공개해주는 요술과도 같은 비법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 문을 열려면 방법을 알아야 한다. 열쇠는 내부의 잠금 장치를 특정한 방식으로 정렬하여 실린더나 레버가 움직이도록 만드는 원리로 작동한다. 상대를 서로 끼어 맞추는 퍼즐과도 같다. 볼록과 오목의 조화에 열쇠의 비밀이 있음을 본다. 그를 통해 태극기의 빨강, 파란색과 같이 양과 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이치를 배운다. 나아가 우주 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형성된 자연의 진리를 알 수 있다.
옛 집안 어른은 며느리에게 경제권을 넘길 때 곡간 열쇠를 주었다. 곡간은 쌀가마를 보관하는 곳으로 재물이 있는 곳을 뜻한다. 그곳을 연다는 것은 살림을 주도하는 책임 징표로 통장 관리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다. 존재가 인정받고 실력을 발휘하는 물건이 틀림없다. 열쇠를 통해 위치와 권한을 부여 받게 됨을 깨닫는다. 나 또한 세월이 갈수록 열쇠 개수가 많아진다. 소유하는 물건이 늘어나기 때문이리라. 편리하고 필요한 욕구를 채워주는 대신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열쇠 꾸러미가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로 느껴진다. 또한 열쇠는 요즈음 일상에서 사용하는 이메일, 은행카드 등 모든 계정의 비밀번호와 같다고 할까? 기억의 늪에서 헤매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인 바티칸 시의 성 베드로 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성스러운 공간에서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많은 성화와 조각품을 감상했다. 그 가운데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를 발견했고, 발코니 벽에 베드로가 열쇠를 받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고. 천국 열쇠를 통해 교황의 특권을 받았다. 그가 순교한 후 시신이 보관된 무덤 터에 자리잡은 것이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대 최고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수차례 변경을 거쳐 바로크 양식으로 힘들게 완공되었다. 그 성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많은 사람을 팔로 안으려는 듯 넓고 웅장한 광장이 펼쳐졌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장이 열쇠 형상이라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마치 천국의 열쇠를 품은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열쇠 형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버튼을 누르거나 칩, 전자식 키로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지문 터치, 얼굴 인식으로 문을 연다. 이미 열쇠 대신 스마트 폰으로 차 문을 열도록 개발했다. 언젠가는 무거운 열쇠 꾸러미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형태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열쇠를 '문제를 해결하는 키'라고 일컫는다.
단순한 도구 이상의 지혜와 통찰력을 통한 해결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비밀과 보호, 권한과 책임의 일차적인 개념을 넘어 새로운 문을 여는 변화와 기회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노력하는 열쇠에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나의 인생에서 새로운 길을 열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닫힌 공간을 열어주고 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는 무엇인지? 열쇠가 나에게 주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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