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30 09:28

'여성'에 대한 명상

조회 수 740 추천 수 3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올림픽 기간 중 만난 문단 선배 한 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도 올림픽 중계 보고 있지? 나는 요즘 리듬체조와 수중발레, 다이빙, 비치발리볼 등 여자 선수들이 나오는 경기 보는 재미로 살아. 어쩜 몸매가 그렇게들 좋은지 모르겠어. 특히 리듬체조 선수들은 군살 하나 없이 몸매가 끝내주더만."
  비록 사석에서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선배는 우리 나라 선수들의 활약상이나 매달 수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여자 선수들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었다.
  여자 선수들의 복장은 아닌게아니라 남자의 시선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리듬체조와 수중발레 등 경기종목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의 몸매와 동작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배의 말을 확대 해석해 본다면 그 많은 여자 선수들은 남자의 눈요깃감이 되기 위해 사시사철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해온 것이 아닌가?
  광고를 보면 엄청난 수가 여성의 몸을 이용한 것이다. 속옷 선전이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하겠지만 여성의 아름다운(혹은 풍만한) 몸을 사진으로 찍어서,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노출한 장면을 화면에 담아서 광고하는 상품의 대부분은 여성의 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지 남자의 눈길을 끌어 광고 효과를 높이겠다는 얄팍한 상술에서 여성의 옷을 벗기는 것이다.
  몇 해 전 미국의 여배우 샤론 스톤이 국내 모 석유회사 윤활유 광고의 모델로 나선 적이 있었다. 지붕 없는 자동차, 즉 스포츠카의 문을 열고서 남자를 유혹하는 강렬한 시선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데 사진 위의 문구가 가관이었다.
  "강한 걸로 넣어주세요!"
  이 문구에서 '강한 것'이란 분명히 제품이겠지만(아직까지 운전을 못 배운 나는 '강한 윤활유'의 뜻이 무엇인지 사실상 잘 모른다) 그 광고를 본 남자가 그것만을 생각했을까. 참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오늘날 인터넷을 할 줄 모르는 청소년은 없다. 인터넷 음란 사이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청소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음란 사이트의 모델 중 상당수가 미성년이라고 한다. 즉 집집마다 있는 컴퓨터가 '성'은 어른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해볼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몇몇 어른의 물욕이 성에 대해 한창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을 성범죄자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의 성범죄율이 미국을 능가하고 있는 이유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직도 낮고, 남성이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혹시 여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유교의 도덕 윤리가 낳은 한자 성어의 수는 끔찍하게 많다. 오랜 세월, 우리 조상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여필종부(女必從夫), 부부유별(夫婦有別), 일부종사(一夫從事), 일부종신(一夫終身) 등의 말에 담긴 뜻을 진리로 알고 살아왔다. 아내는 남편을 깍듯이 공경해야 된다는 뜻으로 쓰는 한자 성어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이다. 남편한테 밥상을 가져갈 때는 자기 눈썹과 가지런히 되도록 공손히 들고 가야 한다는 뜻이니, 이 무슨 성의 차별이며 여성 비하란 말인가.
  이런 식의 차별이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여자로 취급되고 있다. 여식아이는 얌전해야 하고, 아내는 부덕을 발휘해야 하고, 여자 신입사원은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 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중 일부는 3학년이 되면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에는 신경쓰지 않고 성형수술을 받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고 한다. 여자가 여성으로 존중받는 사회, 아니 남자와 등등한 인격적 대우를 받은 사회는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여성이 남성과 신체적 차이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차별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또 하나의 고별 전재욱 2004.12.27 258
29 나를 찾는 작업은 확고한 시정신에서 비롯한다 - 장태숙 시집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 문인귀 2004.10.08 769
28 과거와 현재를 잇는 메타포의 세월, 그 정체 -최석봉 시집 <하얀 강> 문인귀 2004.10.08 884
27 그대의 사랑으로 나는 지금까지 행복하였소 이승하 2004.09.23 1064
26 30여년 세월의 스승 권태을 선생님께 이승하 2004.09.20 789
25 영혼을 담은 글 이승하 2004.08.31 604
» '여성'에 대한 명상 이승하 2004.08.30 740
23 세계의 명 연설을 찾아서 이승하 2004.08.30 659
22 당신을 사랑합니다. 장광옥 2004.08.29 402
21 백제의 미소 임성규 2004.08.02 707
20 고래 풀꽃 2004.07.25 554
19 동화 당선작/ 착한 갱 아가씨....신정순 관리자 2004.07.24 996
18 희곡 다윗왕가의 비극 -나은혜 관리자 2004.07.24 1469
17 희곡 다윗왕과 사울왕 -나은혜 관리자 2004.07.24 1459
16 돼지와팥쥐 -- 김길수- 관리자 2004.07.24 519
15 이승하 어머니께 올리는 편지 관리자 2004.07.24 586
14 김신웅 시인의 시세계(문예운동) / 박영호 관리자 2004.07.24 882
13 내가 사랑하는 소리들 관리자 2004.07.24 571
12 아버님께 올리는 편지 -이승하 관리자 2004.07.24 1395
11 연꽃과 연등 - 나마스테 관리자 2004.07.24 870
Board Pagination Prev 1 ...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