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평>
나를 찾는 작업은 확고한 시정신에서 비롯한다.
-장태숙 시집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
문인귀/시인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만들어지는(創造) 순간부터 독자적인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모든 독자적인 존재는 고독과 외로움을 수반하게 됩니다. 여기서 의식(意識)의 존재인 인간은 다른 사물과는 달라서 자신의 객체적 존재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혹은 종교로, 혹은 철학으로, 혹은 사상과 문학으로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존재적 가치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적 존재가치'를 탐구하게되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외롭다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이거나 초보적인 환경적 요소와 그 영향에서 비롯된 자아발견(自我發見)일 것입니다. 여기서 그 환경적인 여건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이며 또한 자신의 삶 그 자체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환경적 요소에 자기가 속해있는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을 자신이게 비추어 주고있는 제 삼의 존재를 만나게됩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함으로 '나' 또한 '하나의 존재'로써의 가치를 인정 받게되며 '사물과 나'의 공존의 삶은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시인은 사물을 일반적인 관념이나 통념의 기준으로 보아 넘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존적 입장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독창적으로 사물의 존재적 실체의 순수,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의 진실 된 가치를 찾아내어 언어화(言語化)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創作) 일을 해야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시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하는 시정신의 기본일 것입니다.
장태숙 시인의 제2 시집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에 수록되어있는 시(詩)들, 특히 근작 시들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배경에서 벗어나 실생활에서 자신과 마주치고있는 사물과 사건, 문제들인 삶의 현장을 보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어휘화(語彙化)해서 리얼하게 들어내 놓고있습니다.
특히 장태숙 시인은 이곳,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 모두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적인 여건인 미국과 한국의 각각 다른 문화권 속에서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고있음에 더욱 우리들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시를 쓰고 있다 하겠습니다.
장태숙 시인의 시 쓰기란 자신의 존재확인과 확인된 정체의 실존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장시인은 그것을 위해 동서남북, 천상지하(天上地下)를 오르내리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왕래하며,
때로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양파껍질에 - <쓰레기통에 내가 채이는 날>,
때로는 덜 익은 스테이크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血)에 - <끈질긴 스테이크 한 조각이>,
아스팔트에 달라붙은 껌 같은 개의 시체에 - <불가항력의 너를 생각한다>,
유리창과 방충망 사이에 낀 도마뱀에 - <유리창과 방충망 사이...>,
육신과 영혼이 합일되는 그 순간에 - <참, 알 수 없는>,
이승과 저승 사이길/아찔함이 서슬 퍼렇게 돋아나는 것은/아직 살아야하는 이유에 - <태평 양 해안도로>,
자신을 양각(陽刻)하며 쉴 틈 없이, 무척 분주하게 왕래하며 시를 쓰고있습니다.
<비가 그리울 땐 샤워를 한다>에서 보면 "커피물 끓듯 속 뒤집히는" 현실에서 찾은 자아는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자아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어쩌면 육감적(肉感的)일 그 상긋한 비 한 방울의 텃치(touch)를 맛봄으로 해서 놀랍게도 해결되는 고독의 문제인 것입니다. 시인은 샤워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있는 일에 대한 만족도를 스스로 높이며 세상에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만났을 때 오히려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고 고독이 고독을 만났을 때 그 고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한 탓이겠지요.
장시인은 이번 시집 맨 처음에 수록한 <내부 수리 중> 맨 첫 연에 "세상의 통로를 닫고 돌려세우네" 라며 세상의 일반적인 삶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이미 찾아낸 자아의 세계로 방향전환을 하고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새롭게 설정한 방향 그 편에도 역시 유토피아는 있지 않다는 것을 실토하게 되고 여기서 시인은 다시 한 번 "영혼까지도 숨어 살아야하는 새로운 현실"에 부닥뜨려져 자신의 모든 순수의 결정체(結晶體)인 "시를 끌어 모아 불을 지피면 눈물냄새가 날까?"하는 표현으로 좌절을 고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탈피한 세계에서도 추구하는 눈물의 순수를 찾을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욕망의 강물에 물고기를 풀어놓듯 마지막까지 지켜온 순수에의 열망까지 어쩌지 못한 채 방생하고 있는 자아, 그것이야말로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행위가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통><불가항력의 너를 생각한다><쓰레기통에 내가 채이는 날><끈질긴 스테이크 한 조각이><유리창과 방충망 사이에 낀 도마뱀><드라이 플라워><참 알 수 없는><사막의 꽃>등의 작품들에서도 그의 이러한 강렬한 자아 찾기와 현실 인정의 면면을 볼 수 있습니다.
고국을 떠나 살면서 한국문학을 하는 문인 치고 기억에 남아있는 모국에의 향수를 소재로 다루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장태숙 시인 역시 많은 작품을 고향과 부모에의 향수를 소재로 삼고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자기 토로(吐露)적인 작품을 쓰고있는데 비해 장시인은 향수나 그리움을 하나의 소재, 그 자체로 사용하고 있을 뿐 여기서도 역시 자신을 찾아 철저히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있습니다.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청 보리밭><어머니는 화투를 치신다><욕망은 버리기 위해서 내 안에서 자란다>등을 이 부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중 <어머니는 화투를 치신다>에서는 짧은 전화 한 통화를 가지고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현실세계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밝히고있습니다.
"여보세요?"/창창한 바다빛깔입니다. 오늘은 맑아 보입니다
"엄마?"/멀리서 내게로 다가오는 기적소리...
"누구냐?"/어머니의 기차에 불이 확 켜집니다
"저예요. 엄마 큰딸..."/태평양이 서서히 눈을 뜹니다
"미국이냐?"/일순 파도가 출렁이며 짭쪼름한 해초냄새가 납니다/해풍에 담겨온 듯 아릿한...
- 중략 -
"네, 여긴 별일 없어요. 지금 뭐하세요?
창호지문 열어보듯 어머니 거실이 눈앞에 와 앉습니다
"화투친다"
물살이 햇살에 반짝 빛납니다. 칠순 어머니는 소녀 같습니다
"친구분들이랑요?
늘 혼자 앉는 어머니의 식탁, 혼자서 보는 TV,/가느다란 전화선이 갑자기 팽창해집니다
"그래, 화투가 치매에 좋다드라"
어디선가 벙그러지는 꽃봉오리. 내 입술도 꽃봉오리를 닮습니다
- 중략 -
노을 속을 홀로 가는 기차
철로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기차
조심스레 산모롱이 넘어갑니다
"그래 그래, 너도 건강해라"
전화기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태평양이 닫힙니다
잠시 서늘한 가슴으로
강물 위 무심하게 둥둥 떠가는 빈 껍질의 거미처럼
제 살, 파 먹인 어미 거미처럼
어머니 둥둥 떠갑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의 배경을 간결한 대화 몇 마디를 통해 벌이고 있는 현황, 그 전개는 아주 세밀한 곳(狀況)에까지 끌고 들어가는 독특한 기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에 빠져들게 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에 있고 바다 건너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삶의 현장에서 잠시 눈을 돌리는 행위일 뿐입니다. 다만 화자는 철로를 느리게나마 달리고 있는 어머니의 기차, 아니 어머니의 존재와 안위를 확인하는 일로 불이 켜 있어야하는 열차이기를 열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는 세월의 강물 저만치 둥둥 떠내려갈 어머니의 빈 껍질을 망연히 보고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현실 속에 부유하고 있는 삶의 냉정한 속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장태숙 시인의 집요한 자아발견에의 도전은 그의 제1시집 <<내 영혼이 머무는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화자의 형이상학적인 현실탈피에서 영혼을 불러들이는 작업에 이르기까지의 시도가 그의 두 시집에 모두 들어 나있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앞서 말한 자아발견에의 그의 도전은 결코 단회(單回)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찾는 일이란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요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일은 그만큼 나와 모든 사물과의 관계를 더욱 명확히 해주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사물에서의 나의 분리, 우주에서의 나의 분리, 환경에서의 나의 분리는 그것들과 나와의 관계 확립이 보다 명확해지는 것으로 사물 존재의 리얼리티를 재발견하게되며 이를 주관적인 새로운 의미로 창조해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이렇듯 사물의 정체성 재확립을 위해 노력하며 시를 쓰는 시인은 확고한 시정신(詩精神)의 바탕에서 시를 쓰는 사람일 것입니다. 장태숙 시인의 이번 시집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는 이와 같은 노력과 결실의 의미에서 보여주는 '좋은 시'들의 묶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나를 찾는 작업은 확고한 시정신에서 비롯한다.
-장태숙 시집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
문인귀/시인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만들어지는(創造) 순간부터 독자적인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모든 독자적인 존재는 고독과 외로움을 수반하게 됩니다. 여기서 의식(意識)의 존재인 인간은 다른 사물과는 달라서 자신의 객체적 존재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혹은 종교로, 혹은 철학으로, 혹은 사상과 문학으로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존재적 가치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적 존재가치'를 탐구하게되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외롭다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이거나 초보적인 환경적 요소와 그 영향에서 비롯된 자아발견(自我發見)일 것입니다. 여기서 그 환경적인 여건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이며 또한 자신의 삶 그 자체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환경적 요소에 자기가 속해있는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을 자신이게 비추어 주고있는 제 삼의 존재를 만나게됩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함으로 '나' 또한 '하나의 존재'로써의 가치를 인정 받게되며 '사물과 나'의 공존의 삶은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시인은 사물을 일반적인 관념이나 통념의 기준으로 보아 넘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존적 입장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독창적으로 사물의 존재적 실체의 순수,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의 진실 된 가치를 찾아내어 언어화(言語化)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創作) 일을 해야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시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하는 시정신의 기본일 것입니다.
장태숙 시인의 제2 시집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에 수록되어있는 시(詩)들, 특히 근작 시들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배경에서 벗어나 실생활에서 자신과 마주치고있는 사물과 사건, 문제들인 삶의 현장을 보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어휘화(語彙化)해서 리얼하게 들어내 놓고있습니다.
특히 장태숙 시인은 이곳,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 모두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적인 여건인 미국과 한국의 각각 다른 문화권 속에서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고있음에 더욱 우리들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시를 쓰고 있다 하겠습니다.
장태숙 시인의 시 쓰기란 자신의 존재확인과 확인된 정체의 실존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장시인은 그것을 위해 동서남북, 천상지하(天上地下)를 오르내리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왕래하며,
때로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양파껍질에 - <쓰레기통에 내가 채이는 날>,
때로는 덜 익은 스테이크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血)에 - <끈질긴 스테이크 한 조각이>,
아스팔트에 달라붙은 껌 같은 개의 시체에 - <불가항력의 너를 생각한다>,
유리창과 방충망 사이에 낀 도마뱀에 - <유리창과 방충망 사이...>,
육신과 영혼이 합일되는 그 순간에 - <참, 알 수 없는>,
이승과 저승 사이길/아찔함이 서슬 퍼렇게 돋아나는 것은/아직 살아야하는 이유에 - <태평 양 해안도로>,
자신을 양각(陽刻)하며 쉴 틈 없이, 무척 분주하게 왕래하며 시를 쓰고있습니다.
<비가 그리울 땐 샤워를 한다>에서 보면 "커피물 끓듯 속 뒤집히는" 현실에서 찾은 자아는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자아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어쩌면 육감적(肉感的)일 그 상긋한 비 한 방울의 텃치(touch)를 맛봄으로 해서 놀랍게도 해결되는 고독의 문제인 것입니다. 시인은 샤워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있는 일에 대한 만족도를 스스로 높이며 세상에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만났을 때 오히려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고 고독이 고독을 만났을 때 그 고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한 탓이겠지요.
장시인은 이번 시집 맨 처음에 수록한 <내부 수리 중> 맨 첫 연에 "세상의 통로를 닫고 돌려세우네" 라며 세상의 일반적인 삶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이미 찾아낸 자아의 세계로 방향전환을 하고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새롭게 설정한 방향 그 편에도 역시 유토피아는 있지 않다는 것을 실토하게 되고 여기서 시인은 다시 한 번 "영혼까지도 숨어 살아야하는 새로운 현실"에 부닥뜨려져 자신의 모든 순수의 결정체(結晶體)인 "시를 끌어 모아 불을 지피면 눈물냄새가 날까?"하는 표현으로 좌절을 고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탈피한 세계에서도 추구하는 눈물의 순수를 찾을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욕망의 강물에 물고기를 풀어놓듯 마지막까지 지켜온 순수에의 열망까지 어쩌지 못한 채 방생하고 있는 자아, 그것이야말로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행위가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통><불가항력의 너를 생각한다><쓰레기통에 내가 채이는 날><끈질긴 스테이크 한 조각이><유리창과 방충망 사이에 낀 도마뱀><드라이 플라워><참 알 수 없는><사막의 꽃>등의 작품들에서도 그의 이러한 강렬한 자아 찾기와 현실 인정의 면면을 볼 수 있습니다.
고국을 떠나 살면서 한국문학을 하는 문인 치고 기억에 남아있는 모국에의 향수를 소재로 다루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장태숙 시인 역시 많은 작품을 고향과 부모에의 향수를 소재로 삼고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자기 토로(吐露)적인 작품을 쓰고있는데 비해 장시인은 향수나 그리움을 하나의 소재, 그 자체로 사용하고 있을 뿐 여기서도 역시 자신을 찾아 철저히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있습니다.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청 보리밭><어머니는 화투를 치신다><욕망은 버리기 위해서 내 안에서 자란다>등을 이 부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중 <어머니는 화투를 치신다>에서는 짧은 전화 한 통화를 가지고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현실세계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밝히고있습니다.
"여보세요?"/창창한 바다빛깔입니다. 오늘은 맑아 보입니다
"엄마?"/멀리서 내게로 다가오는 기적소리...
"누구냐?"/어머니의 기차에 불이 확 켜집니다
"저예요. 엄마 큰딸..."/태평양이 서서히 눈을 뜹니다
"미국이냐?"/일순 파도가 출렁이며 짭쪼름한 해초냄새가 납니다/해풍에 담겨온 듯 아릿한...
- 중략 -
"네, 여긴 별일 없어요. 지금 뭐하세요?
창호지문 열어보듯 어머니 거실이 눈앞에 와 앉습니다
"화투친다"
물살이 햇살에 반짝 빛납니다. 칠순 어머니는 소녀 같습니다
"친구분들이랑요?
늘 혼자 앉는 어머니의 식탁, 혼자서 보는 TV,/가느다란 전화선이 갑자기 팽창해집니다
"그래, 화투가 치매에 좋다드라"
어디선가 벙그러지는 꽃봉오리. 내 입술도 꽃봉오리를 닮습니다
- 중략 -
노을 속을 홀로 가는 기차
철로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기차
조심스레 산모롱이 넘어갑니다
"그래 그래, 너도 건강해라"
전화기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태평양이 닫힙니다
잠시 서늘한 가슴으로
강물 위 무심하게 둥둥 떠가는 빈 껍질의 거미처럼
제 살, 파 먹인 어미 거미처럼
어머니 둥둥 떠갑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의 배경을 간결한 대화 몇 마디를 통해 벌이고 있는 현황, 그 전개는 아주 세밀한 곳(狀況)에까지 끌고 들어가는 독특한 기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에 빠져들게 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에 있고 바다 건너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삶의 현장에서 잠시 눈을 돌리는 행위일 뿐입니다. 다만 화자는 철로를 느리게나마 달리고 있는 어머니의 기차, 아니 어머니의 존재와 안위를 확인하는 일로 불이 켜 있어야하는 열차이기를 열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는 세월의 강물 저만치 둥둥 떠내려갈 어머니의 빈 껍질을 망연히 보고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현실 속에 부유하고 있는 삶의 냉정한 속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장태숙 시인의 집요한 자아발견에의 도전은 그의 제1시집 <<내 영혼이 머무는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화자의 형이상학적인 현실탈피에서 영혼을 불러들이는 작업에 이르기까지의 시도가 그의 두 시집에 모두 들어 나있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앞서 말한 자아발견에의 그의 도전은 결코 단회(單回)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찾는 일이란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요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일은 그만큼 나와 모든 사물과의 관계를 더욱 명확히 해주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사물에서의 나의 분리, 우주에서의 나의 분리, 환경에서의 나의 분리는 그것들과 나와의 관계 확립이 보다 명확해지는 것으로 사물 존재의 리얼리티를 재발견하게되며 이를 주관적인 새로운 의미로 창조해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이렇듯 사물의 정체성 재확립을 위해 노력하며 시를 쓰는 시인은 확고한 시정신(詩精神)의 바탕에서 시를 쓰는 사람일 것입니다. 장태숙 시인의 이번 시집 <<그곳에 내가 걸려있다>>는 이와 같은 노력과 결실의 의미에서 보여주는 '좋은 시'들의 묶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