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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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천상의 과일 / 수필

2021.07.11 17:06

민유자 조회 수:6

천상의 과일

 

 글모임에 문우 한 분이 고맙게도 마당에서 석류를 한 보따리 챙겨주었다. 마켓에서 파는 것처럼 크고 고르지 못하고 볼 품도 떨어진다. 그래도 상업적인 콧김을 이지 않은, 비료를 먹지 않은, 오가닉 진품이다.

 

 제일 크고 붉게 잘 익은 것을 골라 까서 먹어보았다. 너무 시어 진저리가 쳐진다. 약간 실망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술을 담가서 숙성시키면 정말 고운 색깔의 기막힌 향기를 지닌 매력 만점의 술이 된다.

 

 푸석하고 하얀 살 속에 빼곡하게 들어찬 반짝이는 붉은 석류 알은 햇솜에 싸인 루비다. 아니 루비보다 더 곱고 아름답다. 신기하여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늘에, 햇볕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솟구친다.

 

 석류는 과일 이상의 약효라 할 만한 효능의 영양소가 많이 들 어 있다. 각종 비타민은 물론 무기질과 항산화물질, 특히 천연 여성 호르몬이 들어 있어 여성에겐 특히 더 좋다. 그러나 남성에게도 좋을 뿐 아니라 암에도 좋다고 한다. 보통 약이 되면 입에 쓰나 석류는 맛도 향기도 일품이니 참으로 유익한 과일이다.

 

 석류 알은 어두운 껍질 속 하얀 살에 파묻혀 자란다. 마치 옛날 방의 규수가 바깥나들이를 억제당하며 신부수업을 받듯이 깜깜한 속에서도 가을볕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스스로 부단히 노력 하여 고운 색을 창조해 낸다. 새콤달콤한 맛과 매력 만점의 향기를 만들어낸다. 알차게 씨를 여물린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은 넉지도 않은데 팔 남매에 외할머니 까지 열한 식구가 방 셋의 크지 않은 한옥에서 복닥거리며 살았다. 그러니 먹거리는 늘 부족했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당고모네를 갔다. 고모네는 가세가 풍족했지만 장년임에도 아이가 없이 부부만 단출하게 살았다. 고모가 생과자와 함께 식혜를 내주는데 눈부시게 예쁜 유리 화채 그 릇에 담겨 나왔다. 고모네 양옥집의 햇볕은 한층 밝고 투명한 것 같아서 눈이 부셨다. 식혜 위엔 하얀 밥알이 꽃같이 가득 뜨고 게 저민 유자가 떠 있었다. 바닥에는 빨간 석류 알이 조금 깔려 있었다. 이건 집에서 늘 먹던 그런 식혜가 전혀 아니었다. 어찌나 예쁘고 향기로운지!

 

 마치 무명옷만을 입다가 레이스가 달린 비단 원피스를 입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향기로운 묘한 것이 유자인 지, 영롱한 빛깔의 열매가 석류인 지 몰랐다. 그 후 석류는 내게 천상의 열매로 기억되었다.

 

 산호세에 살던 아들네를 가려면 Fwy 5로 북상하다가 Fwy 152 로 갈아타고 다시 Fwy 101로 갈아탄다. Fwy 101을 만나는 지점 에는 마늘의 본고장인 길로이Giloy가 있다. Giloy 바로 전 Fwy 152 선상에 ‘카사 드 프루타Casa de Fruta’라는 큰 장마켓과 좋은 페식당이 있어 여행객들을 즐겁게 한다. 아들네를 오가며 꼭 들르는 곳이다. 그 근방의 신선한 농산물과 고급스런 농업제품들 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여행객에게는 흥미진진한 볼거리와 다양한 기념품을 제공한다.

 

 특히 여기에서 직접 담가서 ‘Casa de Fruta’의 상표를 붙인 각 가지의 과일주를 파는데 청하면 얼마든지 이것저것 맛볼 수 있다. 붉고 흰 포도주는 물론 자두, 살구, 블루베리, 석류, 블랙베리, 라즈베리, 체리 술을 다 맛보지만 그중 석류주가 가장 향기롭고 맛있다. 싸지 않아 내 형편에는 좀 과해도 거금을 들여서 이것을 한 박스 꼭 사가지고 와서 해를 두고 묵혀가며 조금씩 즐겨 마신다.

 

집에서 담그는 과일주는 전문적인 기술과 적당한 온도 유지를 위한 숙성 장비가 없으므로 설탕을 많이 넣어서 달다. 그래서 원래 술꾼이었던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게는 오히려 달달한 것이 테일로도 좋고 디저트로도 안성맞춤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더 특별한 기분이 들어 좋고, 좀 가라앉고 우울할 때도 기분 전환으로 딱 그만이다. 이 술을 한 모금 머금으면 마술처럼 금방 행복감이 온몸에 퍼지고 기분도 솟아오른다. 천상의 과일주를 머금고 행복하지 않으면 이미 죽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일 게다.

 

지금 담그는 석류주는 두 달 후에 익으면 걸러야겠다. 설날 아침에는 빛 고운 천상의 가양주家釀酒로 온 식구들과 축복의 말을 곁들이며 나눌 수 있을 게다.

 

https://youtu.be/O2wgv_pKEq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