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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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상한 피크닉 데이트 / 수필

2021.07.12 20:06

민유자 조회 수:64

이상한 피크닉 데이트

 

 어머나! 세상에!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우네!

 

 자택 격리로 누구를 초대할 수도 없는 요즘, 연분홍 아마릴리스가 야단스럽게 화들짝 피었다. 꽃대 여덟 개가 올라와서 한 대에 서너 송이씩 아기 얼굴 같은 탐스런 꽃들이 다. 이로 인해 아침에 일어나서 패티오Patio 문을 열고 내다보면 환한 아마릴리스의 인사에 상큼한 아침 공기가 더 달콤하게 코끝에 스미고, 한 낮에 바라보면 꽃잎에 닿은 햇볕이 은색의 미세한 포말로 뿜어져 나와 그 언저리에 서리는 것 같다. 작은 뒷마당은 어스름 저녁에 해가 져도 이 꽃으로 인해 환하다.

 

 아마릴리스 중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분홍과 흰색이 섞인 겹색은 빨간색보다 더 강인하고, 번지기도 잘하며, 꽃도 오래간다. 나중 피는 꽃이 질 때까지 한 달은 꽃불을 쪼일 수 있겠다.

 

 비 갠 뒤 진분홍 부겐베리아도 한창 피었고, 살구색 제라늄도 소담스레 피어나 작은 뒤뜰의 어우러진 꽃잔치가 자칫 답답하고 우울하기 쉬운 내 기분을 돋우고 효자 노릇을 한다. 구워진 을 오븐에서 꺼내면서 옆집에 사는 전직 판사인 팔십대의 백인 독신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 뒷마당에 큰 소란이 났으니 어서 와서 구경하라고.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쓰고, 장갑도 끼고, 중무장을 한 그녀가 큰 키를 흔들며 로봇 같은 걸음걸이로 옆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들어왔다. 난 나가지도 못하고 그녀를 집 안에서 맞는다. 그녀는 큰 소리로 놀라며 함박웃음을 웃는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키웠느냐고 이런 색의 아마릴리스는 처음 본다며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갓 구운 뜨거운 식빵을 한 덩이 파치먼트 종이10)에 싸서 건네 주었다. 상점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신선한 맛을 감탄하며 즐길 게다. 그녀가 그로서리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더니 우유가 3 론이나 왔다며 너무 많다고 1갤론을 가져왔다. 코로나가 가뜩이나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노인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주눅들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아들은 몇 차례 음식을 문 앞에 배달하고, 예의 그 잘생긴 백만 불짜리 웃음만을 날려놓고 멀찍이서 손만 흔들고 달아났다. 오늘은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겠다며 며느리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나타났다. 의아한 표정의 내 얼굴을 보더니 웃으면서 모두 함께 우리 집 뒷마당에서 점심을 먹으려 한다며 옆문을 통해서 뒷마당으로 들어왔다. 손자들을 보면서 허그도 못하고 우리 부부는 집 안에서 패티오 창문을 통하여 손만 흔들었다. 마치 우리 안의 짐승이 된 양.

 

 돗자리를 펴고 가져온 점심을 늘어놓고 우리에게도 주었다. 이렇게 패티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멀리 보면서 함께 먹자고 한다. 아이들을 보고싶어 하는 시부모를 생각해서 궁여지책으로 짜낸 며느리의 가상한 묘책의 연출이다. 기특하고 고맙기도 해서 돌아갈 때 “점심도 맛있고, 아이들을 봐서 좋았다! 고맙다!” 하니 “저희도 어머니의 예쁜 꽃마당을 봐서 참 좋았어요!” 한다.

 

 가공할 코로나의 빠른 전염 속도가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의 무서운 질주를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역사를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전과 후를 구분하듯이 우리는 이제 BC 와 ACBefore Corona와 After Corona로 코로나 19가 확산된 2020년을 기점으로 그 전과 이후로 구분해야 할 것이란 말도 생겼다. 이 여파로 사회 각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목할 만한 방향의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상해서 생긴 말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학교와 직장이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일을 하게 되니 교통량이 줄어들자 벌써 하늘이 많이 맑아졌다. 공장의 제품들도 생산을 멈추게 되는 만큼 물량이 줄어들 것이고 가격이 오를 것이며 그에 따라 소비도 감소하게 될 게다. 농산물도 큰 타격을 받을 터다.

 

 나부터도 킨이나 휴지를 흥청망청 쓰면서도 으레 그러는 것이려니 하던 것이 물자들을 아껴 쓰게 된다. 나의 비장의 장기가 된 일품 빵 솜씨는 입맛 까다로운 손자에게도 인정을 받았는데, 한동안 뜸하다가 요즘 다시 빵 굽기가 부활했다. 외식도 못하게 되니 요리도 집에서 훨씬 많이 하게 된다.

 

 마스크를 아마존에 주문했더니 한 달 후에나 배달이 되는 품귀 현상이다. 꽃무늬 다나11)를 4절로 잘라서 면포를 대고 마스크를 집에서 만들었다. 만들다 보니 많아져서 아들네에 6개, 딸네 에 6개, 이웃 몇 사람에게도 나누어주었다. 먼저 주방세제로 비벼서 빨고 마이크로 오븐에 20초 살균해서 말려 쓰라고 당부했다. 예쁘다고 모두들 좋아한다.

 

 페이스북에서 알게 되었는데,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나처럼 바느질도 하지만 오랫동안 깊숙이 두었던 코바늘을 꺼내어 크로켓도 하고 뜨개질도 한다. 영화도 많이 보고 독서도 더 많이 할게다. 김 진홍 목사님은 그새 책을 두 권이나 썼다고 설교에서 말했다.

 

 그동안 분주하게 바쁘던 일상이 가택연금 당하면서 속도의 관성을 저지하는 브레이크로 얼마간 마찰음을 냈다. 답답하다고 호소하고 우울증도 생기고 가족 간에 불화도 불거진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할 일을 서서히 찾아내면서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마음의 분진을 가라앉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남자들은 직장에 출근을 하지 않으면서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미용실에 못 가서 부부가 서로 머리를 잘라주다가 울그락 불그락 싸웠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무튼 코로나야 네가 죄다. 이 모든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 하루속히 이 국면이 진정되어서 오늘같이 이상한 피크닉 데이트를 하지 말고 손자들 볼 비비고 꼭 안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10) 파치먼트 종이Parchment Paper - baking, cooking, roasting에 쓰는 nonstick paper.

 

11) 밴다나Bandanna - 염색을 한 큰 손수건(스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