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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링카 / 종달새 · The Lark · Wheat Field by van Gogh |
Mikhail Glinka / The Lark (Zhavronok) / Evgeny Kissin,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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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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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얼어붙었던 들판에 새순이 돋아나 연록색으로 물들여지는 4월이 오면,
집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판에 나와 무작정 보리밭 두렁길을 헤매이며 내달리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던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외로워 휘파람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녘 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시 윤용하 곡의 “보리밭” 中 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곡 中 의 하나가 ‘보리밭’ 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보리밭 사잇길을 걷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게 하는 소리. 그것은 초록 물결이 일렁이던 동심이기도 하고, 가슴을 불태우던
젊은 날의 환상이기도 하다. 
나에게 보리밭하면, 가장 먼저 연상 되는 것은 보리를 심은 들판에 울려 퍼지는 종달새 노래 소리다.
종달이, 노고지리로 불려지기도 하는 종달새는 추위가 가시고 산천초목이 연두색의 봄옷을 갈아입는
산란기가 다가오면 구애의 노래 소리가 요란 하다. 언뜻보면 찾을 수 없을만큼 아지랑이 엷게 깔린
봄 하늘에 한 점 티끌처럼 높이 떠서 짝을 찾아 우짖는 그 작은 새의 노랫소리가 그리도 온 들판을
가득 채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우리 주변에서는 보리밭을 보기도 힘들뿐더러 더욱이
종달새는, 그런 새가 이 땅에 있었을까 할 정도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몇 해 전 초봄, 나는 문화단체의 전방지역 답사팀에 끼어 서울 북방의 전방 관측소와 판문점을 다녀오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임진강에 철로와 다리가 연결되어 강 건너 도라산 역까지 육로가
개통되기 전이다. 버스에 승차한 40여 명의 우리 일행은 통일로 종점 임진각에서 잠시 휴식한
후, 임진강 가교를 건너 남북이 대치한 분단의 현장으로 향했다. 도라산 관측소, 오늘에는 도라산
전망대로 일반에 공개된 그곳에서는 남북을 갈라놓은 군사 분계선의 철책과 그 건너편 북쪽의 산야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내 장교가 주변정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지만....,
나는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북편으로 내려다보이는
구릉과 들판 이곳 저곳을 눈길로 더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반세기를 격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과 그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릉처럼 얕으막한 산줄기가 감싸안은 두루뫼 마을, 그래서
두루뫼(周山) 라는 이름이 붙여진 50여 호의 고향마을을 대하고 있었다.
동네 한 가운데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고 마을 어귀 방앗간을 벗어나면 오리길 초등학교를 오가는
길목에 대장간과 놋전이 있었던 두루뫼, 그러나 지금 눈앞에 모습을 나타낸 그곳에는 잡목과 억새풀이
들어찬 굴곡진 들판일 뿐, 마을과 집이 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봄이면 나무꾼을 따라
칡뿌리를 캐고 진달래를 꺾으러 다녔던, 지금은 북쪽에 속해 있는 덕물산, 노적산, 천덕산이 건너다
보이고, 그 앞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사천내는 예전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마을이 있던 흔적은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하얀 모래사장을 끼고 흐르는 사천내 주변은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다.

노고지리 지지배배....
종달새 소리가 들판을 가득 메우고, 내 주변에 심은 밀 보리가 한자 쯤 자랄 무렵이면 종달새 둥우리를
찾으러 보리밭을 누비고 다녔다. 그 때 우리동네에는 종달새를 조롱에 넣어 키우는 이웃이 있었고,
나도 종달새를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자면 종달새 둥우리를 찾아 새끼종달새를 잡아다가
키워야 하는데 그 일이 쉽지가 않았다. 어른들의 눈을 속여 학교까지 결석하고 보리밭을 헤메이던
나는 드디어 보리밭 이랑 잡초사이에 숨겨진 종달새 둥우리를 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들은 털도 나지않은 어린 것들이어서 어미 새가 더 키운 다음에 가져오기로 하고 그냥
돌아왔다.
다음날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내던지고 보리밭으로 달려나가 새둥우리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였다. 종달새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잿빛 털이 돋아나고 어미 새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이제는 그만 가져다가 길러도 되겠다 싶은 어느 날, 둥우리의 새끼종달새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했다.
그 이후 나는 종달새를 키워보려던 어릴 적부터의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다 고향이 생각나고 유년시절이 떠올려지면 버릇처럼 연상되는 것은
사천내 주변의 보리밭이었고, 화창한 봄날 아지랑이
아물대는 하늘을 가득 채우는 종달새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도라산 전방관측소에서 잡초 무성한 구릉지로 변모된 고향마을에서 눈길을 돌려 연녹색으로 물들여지기
시작하는 들판 위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혹시나 종달새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함께 간 일행의 두런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사위는 너무나
조용했다. 산란기의 종달새가 구애의 노랫소리를 내기에는 아직 이른 철이라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글 : 강위수 / 소설가, 두루뫼 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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