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환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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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출발선 외 10

2021.11.09 09:47

정종환 조회 수:6

또한

 

물이 깊어지면

보이지 않고

고요하다

 

사랑은

물과 같다

서로 애틋해질 때.

 

..........................................................

 

한번만

 

한번만

만날 수 있다면

 

한번만

볼 수 있다면

 

한번만

안을 수 있다면

 

한번만

나와 함께 잠잘 수 있다면

 

한번만

같이 춤출 수 있다면

 

이 "한번만들" 

다 이루어져도

 

너는

나의 사람 아니다.

 

.....................................................

 

다락방

 

할아버지

세월이 흘러

이제,

제대로

        먹을 수도

        입을 수도

        화장실 갔다 올 수도

        산책도

        운전도

        원하는대로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꺼림직한 냄새로

가족들도, 

손님들도,

방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어제 밤,

손자는 결혼식 앞두고

할아버지 방에 머무르면서

읏음꽃 피우며 이야기 나누다

이불 깔고 잠이 들었다.

 

.........................................................................................

 

기적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시인에게는 좁다

 

길거리가 아무리 복잡해도

시인에게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아무리 무정해도

시인과 함께라면 사랑스럽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세상 일들이 아무리 추해도

시인에 의해서 아름다워진다

 

시가 움직일 때

새로운 날들이 시작된다.

 

..................................................................................

 

위선자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

 

..................................................................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듣는 것은

말하게 하는 사랑이다

 

말못하게 하는 것,

침묵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불행을 보고

"살려 달라" 외침을

무시하는 침묵

 

지금,

네 옆에서 부르짖는

그 눈물의 외침을

들으며 손을 잡으라

 

침묵을 깨는 오직 한길은

듣는 일이다 그리고

 

기억하라,

1964년 3둴 13일 새벽

뉴욕 퀸즈 아파트를

또 다른 곳에서 반복되는

 

들어라

진심으로 빠르게

너무 늦지 않도록.

 

....................................................................

 

새벽에서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

 

참을 수 없는 새벽

지난 낮에 분노

슬픔,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 발걸음 소리가

심장을 노크한다

잠들면 죽는다

낮은 나의 불면으로

다시 나타나 달랜다

"괜찮다"

너는 나를 짓밟지 않았다

깔아 뭉게 밤을 만들지 않은

너,

나는 너를 깊이 사랑한다

잠들어도 "괜찮다"

똑딱 똑딱 똑딱

나를 쓰다듬는 시계 바늘 발자국 소리,

내 몸을 산책한다

그래, 시간을 되돌리자

족쇄가 풀리는 밤의 입구에서

너를 안주 삼아 씹는다

 

돌아가고 싶다.

 

.........................................................................

 

너는

 

잡아 물고 싶었다

 

환할 때는 나타났다

어둬지면 사라지는

배신자,

잘 나갈 때 곁에 머무르다가

비난의 손가락질 받으며,

불 끄고 문 잠그고

버림받아

두 무릎 사이에 얼굴 파묻고

치마를 적시고 있을 때

넌  내 곁에 없었다

보이지 않았다

사랑의 배신자,

그래, 죽이고 싶은 심정으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문틈으로

중세 시대 적을 쓰러뜨리고

석양 노을에 빛났던

칼처럼 가늘고 강한

빛이 발끝에 머물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넌지시 드러나지 않고 다가오는

그림자, 나의 그림자

끊어지지 않았구나

또 하나의 내 사랑.

 

..............................................

 

터미네이터

 

코비드 19로

2년 동안 기다렸다 열린

아들 결혼식

태어나 자란 고향이 아닌

가본적 없는 서울에서

10월 끝날 치뤄졌다

그동안 못 보았던 친지, 친구, 지인

서로 인사 나누며, 식사하며, 선물 주고 받으며

자신의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고

본의 아닌 자랑거리로 떠들썩 했다

내 차례 되자 겨우 몇 명

목소리도 들릴 듯 말 듯

"나의 스승, K님은 이 결혼식 오려고

놓친 새벽 버스 잡으려 2km 뛰었답니다

아침 식사도 못했던 70세 입니다."

떠들썩 했던 분위기 가라앉고

누군가 말했다

"당신의 사람이 최고야!"

나는 이 결혼식이 자랑스러웠고

소중해졌다

 

못 올 사람이 온 것이니

올 사람들이 다 온 것보다 기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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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

 

잘 팔려고

많이 팔려고

억지로

장사꾼처럼 

쓰지 마라

 

배고픔을 잊으려고

채우려고

억지로

무정한 장사꾼처럼

읽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