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9 09:03
대추가 익어가요 이희숙
겨우내 죽은 듯 있던 나무 침묵을 깨고 봄기운 타고 싹을 틔우며 숨겨졌던 힘으로 대지를 빨아올렸어요
빗방울 튕기는 이파리 진초록으로 하늘을 향해 잉태한 생명 햇볕과 바람의 노래가 얹히고 마침내 붉은 결실로 가득 찼어요
견뎌낸 고통이 아무리 길어도 그 끝에는 보람이 달리고 달콤한 과실 마음을 채우고 영혼을 충만케 하네요
어머니는 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고된 생활 가운데서 때로는 비바람에 흔들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지쳤지만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곳에는 소중함이 맺혔죠 다섯 그루 남매는 나름대로 충실하게 자라 또 작은 나무에 열매를 매달게 했죠
나뭇가지가 휘도록 달린 대추가 붉은빛을 더해가네요 온 집안이 불그스레 물들면 어머니는 이웃에게 넉넉한 기쁨을 나누고 우리는 붉은 사랑을 한아름씩 안았죠
수년이 지난 올 한가위에도 어머니의 웃음이 대추나무에 걸려 우리 집 뜰에 가득 차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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