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립현대 미술관 "아름다운 사람" / 소니 a7M4 카메라-소니 FE 55mm f1.8 ZA 단 렌즈(2025년 3월 23일 오후 4시)
하여가(何如歌)
“짐이 곧 국가다(앙시앵 레짐)”
태양왕이라 일컬었던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1638년 9월5일~1715년 9월1일)가 포효(咆哮)한 외침이다.
절대군주의 이 같은 호언(豪言)은 진위여부의 뒷말을 남겼다.
실제 배경에는, 루이14세를 증오했던 다변가(多辯家) 볼테르가 가짜 댓글로 각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찌됐건 21세기에도 “짐이 곧 국가”라고 외치는 위정자(爲政者)는 지구촌 사방 도처에 널려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도널드 존 트럼프(Donald John Trump:1946년 6월14일~)미국 대통령(제45대~47대)이다.
초선 임기를 마친 뒤 우여곡절 끝에 재선에 성공한 뒤 백악관에 입성한 그는 루이 14세처럼 전제군주처럼 행동하고 나섰다.
그는 보라는 듯 전임 행정부(조 바이든)가 추진한 국내외 정치 외교 국방 문제를 깡그리 쓸어버리고 미국의 질서를 재편(再編)중이다.
그는 또 백악관 웨스트 윙 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아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는 일런 머스크 등 참모들에 둘러싸여 싸인 판에 갑골문자(甲骨文字)같은 싸인을 마구 남발하고 있는 중이다.
아메리칸 들은 앙시앵 레짐을 외치는 트럼프를 향해 “당신은 메시아이십니다.”라고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마치 사두개인과 바리사이인이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양을 떠는 촌극(寸劇)이다.
이렇듯 트럼프의 인기는 파죽지세(破竹之勢)다.
하기야 트럼프와 이렇다 할 인연이 없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트럼프, 나이스 가이!”를 연호(連呼)하는 함성이 광장을 들썩이게 한다.
트럼프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싸인 판’에 언제든지(마음만 먹으면)갑골문자를 휘갈길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서울 광장에선 이러한 사실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양이다.
짝사랑도 이정도면 눈물겹다.
“짐이 곧 국가”인 인물은 또 있다.
중국의 황제로 불리는 시진핑과 러시아의 차르인 블라디미르 푸틴(제3,4,6,7,8대 대통령)그리고 북한의 김 정은이 그들이다.
실제로 ‘짐이 곧 국가’로 통하는 중-러-북의 독재군주들은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사례가 부지기 수다.
언론의 정론일침(正論一針)은 위정자의 손아귀에 놓여 허구한 날 ‘성은이 망극합니다’하고 아양을 떨고, 죽어도 ‘아니되 옵니다’를 직언(直言했던 시인들 마저도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를 운운하며 “하여가(何如歌)”를 봉헌(奉獻)하는 추태를 어찌해야 하는가.
참으로 다행인 것은 “짐이 곧 국가”라 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앱솔루트 파워(Absolute Power)가 지나치게 실린 대한민국에서 깨어 있는 언론과 시인(詩人)들이 시민계몽(市民啓蒙)에 앞장선 덕분에 결코 부패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특히 시인들이 나서서 국민을 계도 (啓導)했다.
독자들은 그 시인들을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때문에 시인은 위대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이 따랐다.
시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Voice of America(미 정부 국영방송)백악관 출입기자가 자신의 심기(心氣)를 건드리는 질문을 던졌다는 이유로 국영방송을 한방(?)에 폐쇄했다.
이 방송국은 지난 1942년 2월부터 방송한 커리어의 세계적인 네트워크였다.
질문을 받은 트럼프 왈.
”당신 어느 언론사 소속이야?”
기자
”옛 써! 미 정부 국영방송 소속이예요.”
트럼프가 기자를 째리며.
“별것도 아니네. 쫓아 내!”
현재 미국의 시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물론 밥 딜런이었다면 직설(直說)을 퍼부었겠지.
특히 한인사회내 시인들도 절대권력 앞에 침묵하고 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트럼프의 내정(內政)이 과도한 측면은 있으나, 가진 자들에게는 오히려 축복이기에 등 따스운 시인들에게도 시비(是非)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 근교에는 어느 새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이 온 것이다.
시인은 봄에 절창(絶唱)을 터트린다.
그리고 시문(詩文)이 날카로울 때 비로소 반듯한 국가가 형성된다.
올곧은 시인들이 있는 세상에는 결코 “앙시앵 레짐”은 없다.
이산해 /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