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2016.11.13 15:01

채영선 조회 수:133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소담  채영선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제일 친근한 도시가 시카고이다.

남편이 공부를 시작한 곳이 시카고인 것이 인연이 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여행 왔을 때 몇 도시에 들렀지만 개렛 신학교 근처 에반스톤 지역의 푸르고 잔잔한 미시간 호숫가를 보며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하나님의 손길은 결국 바로 옆의 아이오와 주로 우리 가족을 인도 하셨다. 옥수수와 콩밭이 끝없이 펼쳐있는 초원에는 검은 소가 아기 소와 무리를 이루고 흩어져 있는 작은 둥지에는 풀밭에서 뛰어노는 돼지가 비를 피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남편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제일 가까운 도시 시카고에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여년 가까이 이곳에 살다보니 아이오와 시티는 또 다른 고향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어디로 갈 엄두를 낼 수도 없게 되었다.

30여년 목회를 마치고 하나님 은혜로 대학시절 꿈만 꾸던 문학을 연수하느라 몇 년 한국에서 지낸 후에도 다시 아이오와로 돌아오게 해주신 하나님은 프로리다에서 몇 년 요양을 하며 지낸 후에도 한적한 농촌 아이오와로 돌아오게 해 주셨다. 어디에 다니러 갔다가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시시피 강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 그제야 휴우 내 집에 온 듯 한숨이 돌려지곤 한다.

 

제일 가깝다 해도 집에서 시카고 까지는 서울 부산 거리는 족히 될 것이다. 어제도 딸네 집에 다니러 갔다가 오늘오후에 돌아왔다. 부지런히 다녀도 이틀 걸리는 거리, 겨우 한 끼 저녁 같이 먹고 손자랑 게임 하고 사진 찍고 하다가 아침에 나와 대형 한국 마켓에서 야채 나 어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것이 정해진 시간표이다.

이제는 완전히 시골 쥐가 되어버려서 북적거리는 대도시에 가면 정신이 없다. 아무리 달려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간선도로를 타고 한 시간은 달려야하는 곳이 대도시. 25마일로 달려야하는 곳에서 살다가 쌩쌩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등골이 오싹하다.

 

 

개구리나 지렁이처럼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손자는 일곱 살 답지 않게 의젓하다. 어린이 안전좌석에 앉아서 내 안전벨트를 끼워준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렇게 마음씨 곱고 어린 나이에 할머니를 생각해주는 손자를 주시다니. 핏줄이 무언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남을 챙겨줄 줄 알다니, 누구를 닮았을까. 하나뿐인 손자가 외로울까봐 그런지 딸 내외는 아기를 기다리는 눈치이다.

 

손자는 나를 해피 할머니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도 해피 할아버지다. 해피를 은근히 기다린 눈치인 손자에게 미안하지만 해피를 데리고 가지 못했다. 여름 날씨에 차에 두고 내릴 수가 없어서 집에 두고 다녀왔다. 지난 번 외출에도 해피는 잘 지냈는데 이번에는 밤새 얼마나 조바심하며 기다렸는지 밥도 안 먹고 물도 먹지 않았다. 도저히 물고 다닐 수 없을 플라스틱 약통과 내 옷가지를 세 개나 물어다가 남편이 낮에 쉬는 야전침대에 올려놓고 거기서 밤을 새웠나 보다.

 

먹지도 못하고 따뜻하게 자지도 못하고 밤새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서 몸살이 났는지 끙끙거리며 눈을 감고 있다. 착하고 총명한 해피. 곤하게 자다가도 찬송을 부르면 눈을 번쩍 뜨고 흔들흔들 걸어온다. 한국에도 네 번이나 다녀온 해피는 참을성이 많아서 비행기 안에서 절대 실수도 안하고 조르지도 않는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음식점 같은 곳에서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가방 안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이 해피를 데리고 시카고에 자주 가야한다면 그것도 큰일이다. 시골에서는 모든 게 눈감아지지만 도시는 다르다. 해피가 잘 살아주기만 한다면 그저 작은 마을 이곳에서 살면서 가끔 다녀오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고 우리 부부는 굳게 믿고 있다.

 

자면서 말이 하고 싶은지 해피는 계속 웅얼거린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떼쓰는 것 같기도 하고. 며칠 전 떼어 놓고 하루 자고 온 것이 속이 상해서 자면서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쫓아다니며 얼마나 졸라댔을까. 강아지로 하여금 알아들을 총기는 주셨지만 말은 못하게 하신 하나님.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살면서 눈치코치 다 보며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사람을 종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종이 되어 자식의 자식까지 종살이를 하는 이야기를 사극에서 종종 보았다. 지경을 정해주시고 그 안에서 살라고 하신 하나님은 50년이 되는 해를 희년이라 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종이 된 사람을 풀어주라고 하셨다. 인간의 법의 모범이 되는 모세가 기록한 율법은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확실한 기르침을 주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떤 연유로든 억압을 받는 상태에서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전 세계에 5억 이상은 족히 된다고 한다. 내 의사로 계약했어도 시간과 돈에 매여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 답답한 일인데 어떤 물리적인 힘 때문에 육체적으로 얽매여 꼼짝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사정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우리는 짐작밖에 할 수 없지만 그 속사정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다.

너희도 육신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들을 돌아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고아와 과부 또는 감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어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언제나 불의한 재판관이 있기 마련이고 불의한 재판관은 때때로 판결을 굽게 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해방 이후 70년 되는 광복절을 보내며 하나의 민족을 다른 민족의 잔인한 억압 속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실현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때 우리의 선조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만에 하나 유사한 상황이 주위에서 발생한다면 나는 어느 편에 있을까, 하나님 편에 있을까, 아니면 반대의 편에 있을까.

 

  2015년 창조문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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