秀峯 明心寶鑑(2)
2013.05.30 01:43
(201) 시호시호 불재래(時好時好 不再來) <東學亂. 全琫準>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우리 앞에 안 온다.
1894년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못 견뎌 전봉준(全琫準) 장군이 동학 농민혁명의 기치로 들고 나온 깃발이다.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은 위로는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평안하게며 아래로는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들을 보호하려 함이러라. 외치면서 일어났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청포장수 울고 간다.
“농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외친 피맺힌 녹두장군의 한(恨)은 오늘도 민중들의 가슴 속에 깊이 살아 푸르다.
(202) 식자우환(識字憂患) <三國志> 《蘇東坡)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
글을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①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知識)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 ②도리(道理)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不利)하게 되었음을 이름 ③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름.
삼국지에서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얻기 전에는 서서(徐庶)가 군사(軍師)로 있으면서 조조(曹操)를 괴롭혔다. 그래서 조조는 어떻게 해서든 서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한 가지 계책을 꾸몄다.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의 영역인 위(魏)나라에 있는 것을 이용해서 그를 불러들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衛夫人)은 학식이 높고 의리를 아는 여장부여서 오히려 한 군주를 잘 섬기라고 아들을 격려하는 형편이었다.
조조는 모사(謀士) 정욱(程昱)의 계책에 따라 위부인의 필체를 흉내 내어 급히 위나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서서에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위부인은 깜짝 놀라 까닭을 물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필체를 본뜬 가짜편지 때문이었음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글자를 아는 게 근심거리를 부르는 원인이 되는구나(女子識字憂患).” 세상에는 모르면 괜찮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또 소동파(蘇東坡= 소식)도 시 석당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203) 신언서판(身言書判) <故事成語>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인물평가(人物評價)의 척도와 기준으로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의 4가지 요소를 강조했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지적한 이론이다. 身言書判이란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身(=몸)·말씨[言辯]·書(=글씨[筆跡])·판단력[文理]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며 이는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의미하며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서(書)는 글씨(필적)을 말하는데, 그 시절,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했고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도 받지 못했다.
판(判)이란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 하였다.
1.지도자의 첫째 요소는 身(신)이다.身(신)은 신체적 조건을 말한다. 身(신)은 넓은 다의적(多義的)의미를 갖는다. 지도자는 몸이 튼튼해야 하고, 풍채가 훌륭해야 하고, 인상이 좋아야 하고, 음성이 낭랑해야 하고, 걸음걸이가 당당해야 하고, 태도가 늠름해야 한다. 지도자는 남에게 위엄과 동시에 호감을 주어야 한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온이여(溫而厲)라고 했다. 인품(人品)이 온화하면서 준엄해야 한다고 했다. 봄바람처럼 따뜻하면서, 가을의 서릿발처럼 당당해야 한다. 지도자는 무리를 끄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범하기 어려운 위엄을 지녀야 한다.「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이다.(The first impression the last impression)」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가 남에게 첫인상을 나쁘게 주면 그것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첫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 그것이 그대로 계속된다. 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될 수록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
2.둘째는 言(언)이다.
설득력, 표현력, 언변력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먼저 그 사람의 얼굴과 풍채와 인상을 본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인물을 평가한다. 말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요, 사상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힘센 아들보다 말 잘하는 아들을 낳아라.」, 「말 한마디에 천냥의 빚을 갚는다,」 세치의 혓바닥이 다섯 자의 몸둥이를 죽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갈파한 말이다. 「言은 人이다」라고 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人格)과 교양(敎養)을 표시한다. 말의 힘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지성(至誠)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진정의 토로(吐露)는 우리를 감화시킨다. 정열을 가지고 외치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감명을 준다.
진실의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말에는 무서운 힘이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감동력과 영향력 중에서 말의 힘처럼 큰 것이 없다. 지도자는 강한 설득력을 가져야 하고 뛰어난 언변력을 지녀야 한다. 능변(能辯), 달변(達辯), 쾌변(快辯), 웅변(雄辯), 熱辯)은 모두다 우리에게 깊은 감화와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말을 잘해야 한다.
언변(言辯)은 훈련(訓練)의 산물(産物)이다」말을 하면 할수록 는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부터 말의 표현을 기르고 스피치 트레이닝(speech training)을 해야 한다. 여러 사람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의견과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고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언변력을 키워야 한다.
인간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사람을 평가 할 때에는 첫째로 인물(얼굴)을 본다. 인물은 인격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릇이 삐뚤어지면 그 속에 담긴 물체 자체도 삐뚤어지기 때문이다. 에부라함 링컨이 인간이 40이 되면 그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명언이 바로 이 뜻 이다.
다음은 말이다. 성품이 정하지 못하면 그 속에서 울려 나오는 말이 거칠고 무조건 비판적이거나 시비조여서 남의 비위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글이다. 문(文)곧 인(人)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인품 속에서 스스로 울어 나오는 인격의 소산이 곧 글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판단력을 본다. 어떠한 일에 부딪쳤을 때 이를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잘 처리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인생의 성패는 자신의 판단력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시언서판은 선인들의 오랜 경험 속에서 결론지어진 인격판단의 고귀한 잣대요 기준이다.
(204)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회손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損 孝 之始也) <論語>
우리 몸은 머리카락 하나에서 피부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모한테서 받은 소중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는 몸을 애지중지하여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의 시작이란 뜻이다.
(205) 실사구시(實事求是) 공평무사(公平無私) <漢書>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을 말하며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을 뜻한다.
실사구시는 한서(漢書)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에 실려 있는, '학문을 닦아 예를 좋아하고, 일을 참답게 하여 옳음을 구함.(修學好古實事求是)'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초기, 즉 청나라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계몽사상가로서 활약한 양계초(梁啓超)는 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을 써서 청대(淸代) 학술의 개론을 시도한 사람이다.
양계초는 다시 능정감(凌廷堪)이 대진(戴震)을 위하여 지은<事略狀>에서 다음과 같은 논평을 이용하여 대진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드러내 밝히고 있다.
"옛날 하간(河間)의 헌왕(獻王)은 실사(實事)에 대하여 옳음을 구하였다. 도대체 실사(實事)의 앞에 있으면서 내가 옳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옳고 하지 못하고, 내가 그르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교례당집 35권)
더구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학문의 표적으로서 존중한 것은 대진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그보다도 후배에 해당하는 청나라 왕조의 학자들 중에는 주대소(朱大韶)나 왕정진(王廷珍)과 같이, 스스로를 '實事求是'라고 아호를 붙인 사람들도 있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며, 청조(淸朝)의 고증학파가 공론(空論)만 일삼는 양명학(陽明學)에 대한 반동으로 내세운 표어이다. 고증학자(考證學者)들은 정확한 고증을 존중하는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학문연구의 입장 을 취했다. [출전] '漢書' 河間獻王德傳
(206) 심려상신 희노상기(深慮傷神 喜怒傷氣)
깊은 생각은 정신을 상하게 하고, 기쁨과 성냄은 기를 상하게 한다.
(207) 심복지환(心腹之患) <三國志>
인체의 중요한 부분인 가슴과 배에 생긴 병으로 받는 고통을 말한다. 외부가 아닌 내부의 화근으로 생긴 병폐를 이름이다.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 (闔閭)는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이 원수를 갚아달라고 유언했다. 왕위에 오른 부차는 백비를 재상으로 삼고 은밀히 군사훈련을 하는 한편 '섶 위에서 잠을 자면서(臥薪-와신)' 적개심을 불태우다가 3년 뒤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정벌했다.
부차의 오나라 군사에게 대패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월왕 구천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에 포위되어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오나라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항복하여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지금 구천을 치지 않으면 후환을 남긴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구천에게 매수된 백비의 말을 들어 월나라를 속력으로 삼고 구천의 귀국을 하락했다.
5년이 지난 뒤 부차는 만만해 보이는 제(齊)나라를 치려고 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이를 극력 만류하면서 말했다.
"지금 월나라 구천은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월나라가 우리 속령이라지만 우리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나라를 치기 전에 멀지 않아 화근이 될 월나라를 먼저 정복해야 합니다."
오자서가 부차에게 올린이 말에서 내부의 화근으로 생긴 병폐를 심복지환 (心服之患)이라 일컫게 되었다. 과연 '쓸개를 핥아 그 쓴 맛을 보면서(嘗膽- 상담)' 회계의 치욕을 되새기고 있던 구천은 마침내 오왕 부차를 거꾸러뜨린다.
(208) 심불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 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 聞 食而不之 其味) <孟子>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209) 심안모옥은(心安茅屋隱) 성정채갱향(性定采羹香) <明心寶鑑>
마음이 편하면 누추한 초옥도 아늑하게 느껴지고, 성품이 정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는 뜻이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기린말씀이다.
천분과 지족(天分知足)을 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10) 심지기위의(心之起爲意)
출전은 잘 모르겠다. 마음이 일어나야 뜻이 일어선다는 뜻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과도 의미가 통하는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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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아유피유(我有彼有) 아멸피멸(我滅彼滅)
내가 있다면 저도 있고 내가 없다면 저도 없네. 인간의 공존공생을 일깨워주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군사 독재자 全斗煥에게 이 글을 보낸 崇山스님은 안기부 남산 청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는 슬픈 뒷이야기가 있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일이다.
(212)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 논에 물 대기란 뜻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213) 안심입명(安心立命) <佛經>
불교에서 믿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어, 하찮은 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이르는 말로 삶에 정성을 다하고 신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진실한 인간의 자세를 가리킨 귀한 말씀이다.
(214) 애기애타(愛己愛他)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끼고 또 자기 이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선구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께서도 퍽 좋아하신 말씀이다.
인간은 자기만족과 자기 긍지 속에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래서 이웃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 한다. 성경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르는 연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228) 약육강식(弱肉强食) <(韓愈)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힘을 의미한다.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는 한유가 문창이라는 승려에게 써 보낸 글로서, 한유의 불교에 대한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한유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道)에 있어서 인(仁)과 의(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예약과 형정(刑政)보다 더 바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그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불교라는 것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한 것입니까? 새들이 몸을 숙여 모이를 쪼다가 몸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깊은 곳에 있으면서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것들이 자신을 해할까 두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고 있는 것입니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인간의 생존경쟁 속에는 부단한 싸움의 연속이다. 생즉쟁(生卽爭)이란 말이 있다. 투쟁 속에서 우수한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패(優勝劣敗)한다. 적응 하는 자만 살아남는(適者生存)의 원리가 통하는 사회다.
(215) 약육강식(弱肉强食) <(韓愈)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힘을 의미한다.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는 한유가 문창이라는 승려에게 써 보낸 글로서, 한유의 불교에 대한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한유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道)에 있어서 인(仁)과 의(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예약과 형정(刑政)보다 더 바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그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불교라는 것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한 것입니까? 새들이 몸을 숙여 모이를 쪼다가 몸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깊은 곳에 있으면서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것들이 자신을 해할까 두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고 있는 것입니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인간의 생존경쟁 속에는 부단한 싸움의 연속이다. 생즉쟁(生卽爭)이란 말이 있다. 투쟁 속에서 우수한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優勝劣敗)와 적응 하는 자만 살아남는(適者生存)의 원리가 통하는 사회다.
(216) 양두구육(羊頭狗肉) <晏子春秋>
[원말] 현양두 매구육(懸羊頭賣拘肉)
밖에는 양고기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때의 일이다. 영공의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 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孀:晏子)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유행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사옵니다. 하오면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과 같사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오소서.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영공의 안영의 진언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217) 양상군자(梁上君子) <後漢書>
진식전(陳寔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식은 학식이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있을 때 어느 날 밤도둑이 그의 방으로 들어와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진식은 곧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훈계를 시작하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들보 위에서 뛰어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 주십사하고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를 조용히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고을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한다.
(218) 양지양능(良知良能) <孟子>
『맹자. 진심상」에 나오는 말로,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 양능,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을 양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선천적인 도덕적 실천력과 인식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예로는 부모에 대한 효도[愛親]와 어른에 대한 공경[敬長]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순선(純善)하다고 보는 시각, 즉 성선설(性善說)의 입장을 전제했을 때만 제시될 수 있는 주장이며, 그렇게 보았을 때 비단 애친과 경장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근거하는 인식의 내용과 행위는 모두 양지양능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원래 맹자가 성선설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었으나, 후대의 왕수인(王守仁)은 이것에 근거해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수립함으로써 양명학(陽明學)의 주요한 이론적 골격을 구축하였다.
(219) 어부사(漁父辭) <屈原의楚辭>
어부사는 굴원(屈原)의 명작이다.
굴원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서 시문에 능하고 삼려대부(三閭大夫)의 벼슬에 오른 정의롭고 강직한 선비였다.
후에 나라가 어지럽고 관료들이 부패하여 세상에 실증을 느끼고 삶을 마감하려 멱라수에 다다르니 어부가 이를 발견하고 삼려대부 굴원선생님이 아니시오. 어찌하여 이 물가에 이르셨나이까? 물으니 세상이 술에 취하여 혼미하니 삶의 의미가 없어 나를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려하오. 하니
어부가 말하기를 세상이 술에 취하여 떠들썩하면 술 찌기거미(재강)이라도 먹고 취한 척 함께 살지 왜 홀로 고고한 척 세상을 하직하려 하시오. 하니 굴원이 대답하기를 "머리를 감은 자는 모자의 먼지를 털어서 쓰는 법이요, 목욕을 한자는 옷에 먼지를 털어서 입는 법이니라. (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
어부가 말하기를 " 나는 창랑에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담글 것이요, 창랑에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로다.(乃歌曰滄浪之水淸海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海. 論語) 可以吾足)하며 깊은 바다로 노를 저어 갔고 굴원은 창랑에 몸을 던져 세상을 하직 하였다.
여기서 선비의 지조로 운 삶의 모습과 범인의 세사에 어울려 타협적으로 살아가는 실상이 명명백백하게 들어 나 있다. 과연 우리는 지상에 오직 한번뿐인 삶을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220) 어부지리(漁父之利) <戰國簀>
어부의 이득이라는 뜻으로,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때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해 주도록 부탁했다.
조나라에 도착한 소대는 세 치의 혀 하나로 합종책(合縱策)을 펴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했다.
"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易水:연 조와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 사납게,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이옵니다. 연 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혜문왕도 명신으로 이름난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를 중용했던 현명한 왕인만큼, 소대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과연 옳은 말이오." 이리하여 혜문왕은 당장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
[동의어] 방휼지쟁(蚌鷸之爭), 견토지쟁(犬免之爭)
(221)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냐는 뜻으로,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매사에 처신을 잘하라는 분부의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222)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 <論語>
말을 하면 반드시 믿을 수 있어야하고, 한번 시행한 일은 반드시 좋은 결실을 거두어야한다. 신의와 결실을 강조한 귀한 말씀이다. 허언이 불신의 사회를 낳고 빈 수레가 항상 요란하기 때문이다.
(223) 여랑목양(如狼牧羊)
여랑목양은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하는 격'이란 뜻으로 탐욕스럽고 포학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는 일을 비유하고 있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은 '갈림길이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 한다'.는 뜻이다.
(224) 여도지죄(餘桃之罪)
<韓非子>에 보면 여도지죄라는 고사가 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라는 뜻인데요, 인간의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한 것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다.
중국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彌子瑕)란 궁중의 어린 아이가 있었다.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고는 맛있다고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권하였다.
그러자 왕은 오히려 기뻐하며, 제가 먹을 것을 나에게 주는 것을 보니 충성이 갸륵하다고 칭찬하였다.
세월이 지남과 더불어 미자하의 미색은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점점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경미한 죄를 짓자 왕은 지난 날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무례하게 준 일을 들추며 미자하를 궁궐 밖으로 쫒아내었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왕의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긴장하고 변화할 때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225) 여춘풍(如春風)
춘풍접인(春風接人) 추상지기(秋霜持己) 화기만면(和氣滿面)
사람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훈훈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을 강조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인 관계에서 냉랭하고 쌀쌀하면 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외면을 당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뜻으로 춘풍접인(春風接人) 추상지기(秋霜持己)로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화기를 갖고 사람을 접하되, 추상처럼 근엄한 정신으로 나를 견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 중국 명(明)시대에 홍응명(洪應明)이 지은 책에 나온 말이다.
以責人之心責己 以恕己之心恕人(이책인지심책기 이서기지심서인)이라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는 뜻이다.
(226) 역장불여지장 지장불여덕장(力將不如智將 智將不如德將)
힘이 있는 장수는 지략이 있는 장수만 못하고, 지략이 있는 장수는 덕이 있는 장수만 못하다는 뜻이다. 논어의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논어의 공자님 말씀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德不孤 必有隣)
(227) 영과이진(盈過而進) <孟子>
맹자에 나오는 명언이다.
인간은 자기 갈 길을 정하면 서슴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강인한 습성이 있다. 이것이 성공의 원인이 될 수 있기도 하나 거의가 실패의 이유가 되기 쉽다. 말이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물은 그 앞에 웅덩이가 있으면 갈 길이 아무리 급해도 서서히 기다리면서 그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난 연후에 다시 앞으로 나가는 흐름을 시작한다. 여기에 깊은 진리가 있다. 우선 네 앞에 문제부터 심사숙고 한 연후에 전진을 생각하라.
(228) 영언배명 자구다복(永言配命 自求多福) <論語>
하늘이 내려준 짝과 합해서 스스로 복을 구하라는 뜻이다.
시경에서 읽은듯한데 분명하지는 않다. 중국에서 결혼 축하글로 많이 쓰이고 있다.
(229) 예번즉난(禮煩則亂) <書經. 說明>
예절은 너무 번잡하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는 말로 호사다마(好事多魔)와 맥이 통하는 말이다.
(230) 오례(五禮) <禮記>
오례란
길례(吉禮) ...천지에 모든 신에게 제사를 드려 행복을 구하는 것.
흉례(凶禮) ...상례(喪禮)에 관한 것.
군례(軍禮) ...군사에 관한 것.
빈례(賓禮) ...내빈과 교제에 관한 것.
가례(嘉禮) ...관혼에 관한 것을 말하며 삼례는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를 말한다. 좌전(左傳)에 기록되어 있다.
(231) 오복(五福) <書經. 洪範編>
수(壽) 오래 사는 것.
부(富) 부자가 되는 것.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
유호덕(攸好德) 남에게 덕을 베풀며 사는 것.
고종명(考終命) 질병 없이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살고 복을 많이 받는 수복강녕을 좋아하는데
중국사 사람들은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사는 복수강년을 좋아한다.
가난하면서 오래만 사는 것보다 복을 많이 받고 장수를 바라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생각인 듯싶다.
(232) 오상(五常) <孟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이름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는 부의(父義) 모자(母慈) 형우(兄友) 제공(弟恭) 자효(子孝)를 보는 견해도 있다.
(233) 오욕 칠정(五慾 七情) <佛經>
오욕 (五慾)
불교에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근본이 되는 욕망(慾望)를 가리키는 말이다. 색(色: 물질적 존재)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다섯을 본디 오경(五境)이라 하는데, 이것이 각각 이(耳)ㆍ목(目)ㆍ구(口)ㆍ비(鼻)ㆍ설(舌) 등 신(身)의 오관(五官)의 대상으로 사람의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오욕(五慾)이라 한다. 한편, 재욕(財慾)ㆍ색욕(色慾)ㆍ식욕(食慾)ㆍ명예욕(名譽慾)ㆍ수면욕(睡眠慾)의 다섯을 오욕이라 하기도 한다.
칠정 (七情)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심리작용을 말하는데, 희(喜)ㆍ노(怒)ㆍ애(哀)ㆍ낙(樂)ㆍ애(愛)ㆍ오(惡)ㆍ욕(慾)의 일곱이다. 유교(儒敎)에서는 이 가운데 낙(樂) 대신 구(懼) 곧 ‘두려움’을 넣는다. 한의학의 칠정은 희(喜, 기쁨), 노(怒, 성남), 우(憂, 걱정), 사(思, 염려), 공(恐, 두려움), 경(驚, 놀람), 비(悲, 슬픔) 이다.
성리학자들은 性이 情이니 하는 말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여 설명한다. 심(心)은 일신의 주제니 정(情)을 통솔하고 , 성은 천부의 이(理)니 칠정을 낳는다.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두렵고, 사랑하고, 악하고 욕됨의 칠정의 기질은 청탁에 따라 선도되고 악도 되지만 그 본원은 천명의 성이다. 그러므로 그 본질이 선일진대 중화(中和)의 덕을 길러 삼재(三才)의 하나로서 천지에 참여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밑바닥에는 곡하고, 웃고 슬프고 기뻐하는 곡소비환(哭笑悲歡)이 깊게 깔려있다.
(234) 오월동주(吳越同舟) <孫子兵法>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된다.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같은 장소와 처지에 함께 놓임을 뜻한 말이다.
손자(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오(吳)의 합려(闔閭)와 월(越)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이 있었고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이고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이 회계산에서 항복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이에 대해 손무(孫武)의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 (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吳 오나라 오. 越 넘을, 월나라 월. 同 한가지 동. 舟 배 주. [동] 同舟濟江(동주제강) :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즉 원수라도 한가지 일을 위해서는 돕게 된다. 同舟相救(동주상구) :이해관계에 얽혀 있으면 자연히 돕게 된다.
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호월동주(胡越同舟), 오월지부(吳越之富)
(235) 오유지족(吾唯知足)
너와 내가 만족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뜻이다.
(236) 옥불탁 불성기 인불학 불지의(玉不擢 不成器 人不學 不知義) <禮記>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의리를 모른다는 뜻이다.
인간 삶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한 명언이다.
(237) 옥쇄불개백(玉碎不改白) <三國志>
“나는 해량(海良) 땅의 일 무부(一武夫)로 내 주군께서 수족과 같이 대우하심을 입고 왔으니 어찌 의를 배반하고 적국에로 갈 것인가.
성이 파하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옥은 부스러져도 그 흰빛은 고칠 수 없다. 대나무는 타도 그 결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은 죽어 없어져도 이름은 역사에 남는다. 그대는 속히 출성하라. 나는 손권과 싸워 죽기를 결정할 것이다.” 관우가 손권과의 전투에서 붙잡혀 제갈근(諸葛瑾)이 손권의 부하가 되면 호의호식하며 평안을 누리 수 있다고 회유할 때 관우가 한말로 지조의 상징을 삼는 명언이다. <관우. 운장>
이는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에서 형제의 결의를 맺고 3형제가 된 후 신뢰관계 속에서 평생을 한 결 같이 지켜온 약속의 위대한 표본이다.
인간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신뢰 관계다. 아무리 삼국지의 역사 소설의 한 장면이라도 인류 사회에 제시하는 교훈이 위대하고 장구하다.
(238)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論語>
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과거와 현재를 바로 알아야 삶의 길에 바로 설 수 있음을 가르친 명언이다.
나는 큰 아들은 학자가 되라고 지신(知新)이라 이름 하였고, 온고이지신을 뜻함이다.
둘째 아들은 지도자가 되라고 지민(知民)이라고 하였다.
지민이 위천(知民以爲天)은 백성을 바로 알아 하늘처럼 섬기라는 뜻이다.
(239) 와신상담(臥薪嘗膽) <孟子> <史記>
『맹자』「진심상」에 나오는 말로,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 양능,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을 양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선천적인 도덕적 실천력과 인식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예로는 부모에 대한 효도[愛親]와 어른에 대한 공경[敬長]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순선(純善)하다고 보는 시각, 즉 성선설(性善說)의 입장을 전제했을 때만 제시될 수 있는 주장이며, 그렇게 보았을 때 비단 애친과 경장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근거하는 인식의 내용과 행위는 모두 양지양능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원래 맹자가 성선설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었으나, 후대의 왕수인(王守仁)은 이것에 근거해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수립함으로써 양명학(陽明學)의 주요한 이론적 골격을 구축하였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 )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그 해(B.C. 482)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하남성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歷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소주(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 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240)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莊子>
춘추전국 시대에는 중원의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어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適者生存)의 회오리바람이 심했다.
장자는 이를 일러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어리석음에 비유하였다.
오늘날에 한심한 정치인들의 작태도 이와 과히 다를 바 없으니 심히 안타깝고 불상한 일이다. 어찌하여 의인은 적고 소인들만 날뛰는 세상이 되었을까.
(241) 완인상덕 완물상지((玩人喪德 玩物喪志) <書經>
사람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면 덕을 잃어버리게 된다. 물건에 심한 애착을 가지면 마음을 상하기 쉽다.
(242) 왕후장상(王侯將相)
제왕과 제후와 장수와 재상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항상 그 시대 그 역사의 주역이었다.
(243) 욕지미래 선찰이연(欲知未來 先察已然) <明心寶鑑>
앞날을 알고자 하거든 먼저 지난 일을 살피라.
주역 계사하전에도 창왕찰래(彰往察來)란 말이 나오는데 ‘지나간 일을 밝게 살펴서 앞으로의 일의 득실을 안다는 뜻으로 같은 의미다.
(244) 원교근공(遠交近攻)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 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 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 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민王)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 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245) 위인지학(爲人之學) 위기지학(爲己之學) <論語>
인류의 스승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른 말씀이다.
학문을 하되 남을 위하여하는 것은 위인지학이요.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은 위기지학이다. 학문을 연구할 때에는 폭넓게 하라는 뜻이다.
(246) 위정지도 성가지도(爲政之要 成家之道) <論語>
젊어서 배우지 않으면 평생이 헛된다.
景行錄(경행록)에 爲政之要(위정지요)는 曰公與淸(왈공여청)이요, 成家(성가지도)는 儉與勤(검여근)이니라.
정치의 요점은 공정함과 청렴이고 집을 일으키는 방법은 검소함과 근면이다.
(247) 유심소작(惟心所作) <佛經>
불가의 가르침이다. 인간의 모든 마음과 일들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모두가 자신의 수고와 노력여하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된다.
(248)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삶을 뜻한다. 유연자적(悠然自適)이라고도 한다.
(249) 육언 육페(六言六蔽) <論語>
육언(六言) 인지신직용강(仁知信直勇剛) 육폐(六蔽) 우탕족교난광(愚蕩賊絞亂狂)을 말한다.
(250)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後漢書>
자나 까나 잊지 않고 간절한 염원을 가지는 사람은 반드시 그 뜻을 성취한다.
(251) 읍참마속(泣斬馬謖) <三國志>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림´을 비유한 뜻이다. 출전-´三國志´ 蜀志 諸葛亮篇‘ 삼국시대 초엽인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227) 3월,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한중(漢中:섬서성 내)을 석권하고 기산(祁山:감숙성 내)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자는 중달(中達), 179∼251)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 :한중 동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 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 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 서는 식수가 끊겼다. 다급해진 마속은 전 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張稷)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의 실패로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252) 5 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成都)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253) 이민위천(以民爲天) 사인여천(事人如天) <司馬遷 史記>
백성 앞에는 하늘을 대하듯 하고,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뜻이다.
後廣 金大中 전 대통령이 생존 시에 즐겨 쓰던 글이다.
(254) 이일대로(以佚待勞) <孫子>
평안함으로 지친 것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용병에 능한 사람은 적군의 사기가 높을 때를 피하여 사기가 해이해졌을 때 친다. 이것이 사기(士氣)를 다스리는 것이다. 아군을 정비하고 적군이 혼란해지기를 기다리며 아군을 안정시키고 적군이 소란해지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멀리 온 적군을 기다리고 아군은 편안하게 하고 피로에 지친 적을 기다리며 아군을 배부르게 하고 굶주린 적을 기다린다.(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이것은 힘을 다스리는 것이다. 깃발이 정연하게 정렬된 군대는 공격하지 말고 당당하게 진영을 갖춘 진영을 습격하지 말라. 이는 적의 정세에 따라 작전의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다." '손자'(孫子) 제7 군쟁(軍爭)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적군의 마음과 체력을 빼앗고 작전의 변화에 대처하는 요령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이일대로(以佚待勞)라는 성어가 나왔다. '佚'(일)대신 '逸'(일)로 쓰기도 한다. 이일대로(以佚待勞)는 편안함으로 지친 것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전투에 앞서 쉬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피로한 적군을 맞아 싸우라는 의미이다. 적군보다 먼저 싸움터에 이르러 좋은 곳을 선점한 다음 충분히 휴식을 취하여 아군의 전력을 비축한 뒤 먼 길을 오느라 피로해진 적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또는 상대의 전력이 아군보다 강할 때, 수비에 치중하는 한편으로 전열을 잘 가다듬어 상대가 사기가 저하되고 지치기를 기다려 공격하는 전략이다. 이는 삼십육계(三十六計) 가운데 승전계(勝戰計)에 속하는 네 번째 계책이기도 하다.
(255)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烈女傳>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쓰면 도둑으로 몰리기 쉽다는 말로, 남에게 의심을 받을 만한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짝을 이루는 말로 외밭을 지날 때에는 신 끈을 고쳐 신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의 의심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256)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을 요령껏 살아가려는 얕은 속셈의 인간들의 생각과 모순을 지적한 고사성어 이다.
(257) 인내천(人乃天)
민중이 곧 하늘이다. 밥이 곧 하늘이란 말도 있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서리치며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민중의 아픔을 속 알이 하던 의병장 녹두장군 전봉준이 국태민안(國泰民安)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부르짖으며 좋은 때다 좋은 때다 다시는 우리에게 찾아오기 어려운 때다(時呼時呼 不再來)를 부르짖으면서 동학란의 선봉이 되었을 때 우리 민족의 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김지하 시인은 "하늘은 밥이다."라는 시를 썻 고 이 높고 깊은 사상은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태공망(太公望) 강태공(姜泰公) 여상(呂尙)이 육도삼략(六韜사三略)중 무도(武韜)에서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곧 천하 사람의 천하입니다.(天下者 非一人之天下 乃天下之 天下也)라고 설파 했으니 이 얼마나 높고 깊은 민중의 올바른 사관인가.
(258) 인무백세 왕작천년계(人無百歲 枉作千年計) <明心寶鑑>
사람은 백 살을 살기가 힘들지만 지은 잘못은 천년의 계교를 세우기 쉽다.
한 번의 잘못된 생각이 반복적으로 죄를 더하게 되기 때문이다.
(259)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 <論語>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논어에 나오는 명언이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가 어려우니라.
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위 글은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사살하고 여순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우리 민족의 영웅 안중근(安重根)의사가 친필로 남긴 명언이다. 우리 민족 모두가 가슴속에 아로새겨야 할 금과옥조의 말씀이다.
(260)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論語>
성현 공자의 말씀이다. 인간들 모두는 그날 그 날을 행복해 지기를 바라면서 살아간다.
행복은 만인의 원이기 때문이다. 철인 소크라테스도 행복이란 지덕복(知德福)의 합일(合一)이라고 정의 하였다. 인간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인생의 삶 앞에는 힘든 고개들이 수없이 가로놓여 있다. 이것을 스스로 헤쳐 나가 행복을 찾는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책무다.
행복이 하늘에서 스스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먼 곳에 염려가 없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다. 가슴 깊이 새겨둘 말씀이다.
(261)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 有靑山)
옛 선인이 이르기를 人生到處 有靑山 이라 바라보니 사방에 푸른 산이요
돌아보니 곳곳에 맑은 물이라 근심걱정 지내온 하 세월이 괜한 것임을 이제 알았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고 인생사 행불행 생각하기 나름이니 기쁜 마음 즐거운 생각 따뜻한 손 마주잡고 감사하며 살리라 웃으면서 살리라. 故山終勝他山好 타산이 아무리 좋다 해도 고향산만 못하다
(262)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는 옛 시인의 시구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에서 원용한 것으로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것 이다.
이는 문화재위원 유홍준 교수가 민족문화 유산 답사에 연륜이 쌓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떠오른 경구로서 문화유산을 다듬는 이름 없는 손길들의 소중함을 기린 말이다.
(263) 인생하처 불상봉(人生何處 不相逢) <景行錄>
景行錄에 曰, 恩義를 廣施하라, 人生何處에 不相逢이리오, 讐怨을莫結하라,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은의(恩義)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디에 산들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와 원망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264)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一時之憤 免百日之憂) <明心寶鑑>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로고스(Logos)적 이면서도 파토스(Pathos)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삶을 누리려면 이성과 감정의 알맞은 조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곧 행복의 길이다. 동물이 강한 것은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요.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성의 밝은 지혜가 그 앞길을 밝히기 때문이다. ‘때린 사람은 발을 오그리고 자고, 맞은 사람은 발을 펴고 잔다.’ 는 속담이 있다. ‘참을 인자 셋이면 죽을 사람도 살린다.‘ 인내삼사(忍耐三思)는 우리들의 조상들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인생의 지혜다. 이성과 감정의 아름다운 조화. 로고스와 파토스의 적절한 조화는 인간 행복의 아름다운 지혜다.
(265) 인의진종빈처단(人義盡從貧處斷) 세정편향유전가(世情便向有錢家)
<明心寶鑑>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 부르짖으면서도 인간들은 늘 차별을 두고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의리는 가난을 쫒아 끊어지고, 세상의 정은 돈을 향해 몰려간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지적이요, 냉철한 판단인가. 이래서는 안 되지 하면서 늘 속아 사는 우리들의 존재가 서글프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삶의 근본 이다.
(266) 인사유명 부귀재천(人死有命 富貴在天) <論語>
사람의 죽고 삶은 명에 있고, 부해지고 귀해 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하늘의 큰 뜻에 순종하고 자기 스스로 노력 하면서 삶의 옷깃을 바로 세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늘만 쳐다보고 스스로 게으름을 피운다면 쪽박을 차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67) 인생팔고(人生八苦) <佛經>
불가의 말씀이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生老病死)과, 사랑하나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愛別離苦) 이 원수 같은 놈은 만나지 말아야 했었는데 만날 수밖에 없는 괴로움(怨憎悔苦) 구하고자 하나 얻어지지 아니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자기 자신을 까닭 없이 괴롭히는(五蘊成苦)를 이름이다. 혹은(五陰)이라고도 한다.
(268)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書經 大禹謨>
욕심에 사로잡힌 마음이 인심이요, 도와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도심이다. 욕심의 노예가 된 마음을 따르면 위험하다. (궐을 그것 궐자임) 주자(朱子)는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고 가르쳤다.
(269) 인일능지 기백지(人一能之 己百之) 십인능지 기천지(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中庸>
'남이 한번 해서 그것이 능하다면 자기는 그것을 백번하고,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면 자기는 그것을 천 번한다. 과연 이 도에 능하다면 비록 어리석다 할지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며, 비록 유약하다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270) 인장지덕(人長之德) 목장지패(木長之敗)
사람은 큰 사람 밑에 있어야 큰 인물로 자라고, 나무는 큰 나무 밑에 있으면 고사리처럼 가늘고 약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아이는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망아지를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옛날에 큰 인물 휘하에 문하생들이 운집하여 있었던 것도 모두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큰 인물의 덕을 흠모하는 것은 훌륭한 선비의 덕이다.
(271) 인즉영 불인즉 욕(仁則榮 不仁則 辱) <孟子>
마음이 착한사람에게는 영화로운 일이 찾아오고 마음이 악산 사람에게는 욕된 일이 오게 된다는 뜻이다.
(272)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 이익을 거둔다는 뜻이다.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은 어전에서 '중원으로의 진출이야말로 조명시리(朝名市利)에 부합하는 패업( 業)'이라며 중원으로의 출병을 주장하는 재상장의(張儀)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신이 듣기로는 부국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국토를 넓히는데 힘써야 하고, 강병(强兵)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백성의 부(富)에 힘써야 하며, 패자(覇者)가 되기를 원하는 군주는 먼저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한다고 하옵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패업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법이옵니다. 하오나, 지금 진나라는 국토도 협소하고 백성들은 빈곤하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먼저 막강한 진나라의 군사로 촉(蜀)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는 길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줄로 아옵니다. 그러면 국토는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은 쌓일 것이옵니다. 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고 무엇이오니까?
그러나 지금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한(韓)나라를 침범하면, 한나라는 제(齊)나라와 조(趙)나라를 통해서 초(楚)나라와 위(魏)나라에 구원을 청할 게 분명하오며, 더욱이 주나라의 구정(九鼎)은 초나라로 옮겨질 것이옵니다. 그땐 진나라가 공연히 천자를 위협한다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우리 앞에 안 온다.
1894년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못 견뎌 전봉준(全琫準) 장군이 동학 농민혁명의 기치로 들고 나온 깃발이다.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은 위로는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평안하게며 아래로는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들을 보호하려 함이러라. 외치면서 일어났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청포장수 울고 간다.
“농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외친 피맺힌 녹두장군의 한(恨)은 오늘도 민중들의 가슴 속에 깊이 살아 푸르다.
(202) 식자우환(識字憂患) <三國志> 《蘇東坡)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
글을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①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知識)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 ②도리(道理)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不利)하게 되었음을 이름 ③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름.
삼국지에서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얻기 전에는 서서(徐庶)가 군사(軍師)로 있으면서 조조(曹操)를 괴롭혔다. 그래서 조조는 어떻게 해서든 서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한 가지 계책을 꾸몄다.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의 영역인 위(魏)나라에 있는 것을 이용해서 그를 불러들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衛夫人)은 학식이 높고 의리를 아는 여장부여서 오히려 한 군주를 잘 섬기라고 아들을 격려하는 형편이었다.
조조는 모사(謀士) 정욱(程昱)의 계책에 따라 위부인의 필체를 흉내 내어 급히 위나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서서에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위부인은 깜짝 놀라 까닭을 물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필체를 본뜬 가짜편지 때문이었음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글자를 아는 게 근심거리를 부르는 원인이 되는구나(女子識字憂患).” 세상에는 모르면 괜찮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또 소동파(蘇東坡= 소식)도 시 석당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203) 신언서판(身言書判) <故事成語>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인물평가(人物評價)의 척도와 기준으로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의 4가지 요소를 강조했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지적한 이론이다. 身言書判이란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身(=몸)·말씨[言辯]·書(=글씨[筆跡])·판단력[文理]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며 이는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의미하며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서(書)는 글씨(필적)을 말하는데, 그 시절,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했고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도 받지 못했다.
판(判)이란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 하였다.
1.지도자의 첫째 요소는 身(신)이다.身(신)은 신체적 조건을 말한다. 身(신)은 넓은 다의적(多義的)의미를 갖는다. 지도자는 몸이 튼튼해야 하고, 풍채가 훌륭해야 하고, 인상이 좋아야 하고, 음성이 낭랑해야 하고, 걸음걸이가 당당해야 하고, 태도가 늠름해야 한다. 지도자는 남에게 위엄과 동시에 호감을 주어야 한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온이여(溫而厲)라고 했다. 인품(人品)이 온화하면서 준엄해야 한다고 했다. 봄바람처럼 따뜻하면서, 가을의 서릿발처럼 당당해야 한다. 지도자는 무리를 끄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범하기 어려운 위엄을 지녀야 한다.「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이다.(The first impression the last impression)」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가 남에게 첫인상을 나쁘게 주면 그것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첫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 그것이 그대로 계속된다. 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될 수록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
2.둘째는 言(언)이다.
설득력, 표현력, 언변력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먼저 그 사람의 얼굴과 풍채와 인상을 본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인물을 평가한다. 말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요, 사상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힘센 아들보다 말 잘하는 아들을 낳아라.」, 「말 한마디에 천냥의 빚을 갚는다,」 세치의 혓바닥이 다섯 자의 몸둥이를 죽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갈파한 말이다. 「言은 人이다」라고 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人格)과 교양(敎養)을 표시한다. 말의 힘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지성(至誠)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진정의 토로(吐露)는 우리를 감화시킨다. 정열을 가지고 외치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감명을 준다.
진실의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말에는 무서운 힘이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감동력과 영향력 중에서 말의 힘처럼 큰 것이 없다. 지도자는 강한 설득력을 가져야 하고 뛰어난 언변력을 지녀야 한다. 능변(能辯), 달변(達辯), 쾌변(快辯), 웅변(雄辯), 熱辯)은 모두다 우리에게 깊은 감화와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말을 잘해야 한다.
언변(言辯)은 훈련(訓練)의 산물(産物)이다」말을 하면 할수록 는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부터 말의 표현을 기르고 스피치 트레이닝(speech training)을 해야 한다. 여러 사람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의견과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고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언변력을 키워야 한다.
인간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사람을 평가 할 때에는 첫째로 인물(얼굴)을 본다. 인물은 인격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릇이 삐뚤어지면 그 속에 담긴 물체 자체도 삐뚤어지기 때문이다. 에부라함 링컨이 인간이 40이 되면 그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명언이 바로 이 뜻 이다.
다음은 말이다. 성품이 정하지 못하면 그 속에서 울려 나오는 말이 거칠고 무조건 비판적이거나 시비조여서 남의 비위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글이다. 문(文)곧 인(人)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인품 속에서 스스로 울어 나오는 인격의 소산이 곧 글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판단력을 본다. 어떠한 일에 부딪쳤을 때 이를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잘 처리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인생의 성패는 자신의 판단력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시언서판은 선인들의 오랜 경험 속에서 결론지어진 인격판단의 고귀한 잣대요 기준이다.
(204)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회손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損 孝 之始也) <論語>
우리 몸은 머리카락 하나에서 피부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모한테서 받은 소중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는 몸을 애지중지하여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의 시작이란 뜻이다.
(205) 실사구시(實事求是) 공평무사(公平無私) <漢書>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을 말하며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을 뜻한다.
실사구시는 한서(漢書)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에 실려 있는, '학문을 닦아 예를 좋아하고, 일을 참답게 하여 옳음을 구함.(修學好古實事求是)'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초기, 즉 청나라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계몽사상가로서 활약한 양계초(梁啓超)는 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을 써서 청대(淸代) 학술의 개론을 시도한 사람이다.
양계초는 다시 능정감(凌廷堪)이 대진(戴震)을 위하여 지은<事略狀>에서 다음과 같은 논평을 이용하여 대진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드러내 밝히고 있다.
"옛날 하간(河間)의 헌왕(獻王)은 실사(實事)에 대하여 옳음을 구하였다. 도대체 실사(實事)의 앞에 있으면서 내가 옳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옳고 하지 못하고, 내가 그르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교례당집 35권)
더구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학문의 표적으로서 존중한 것은 대진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그보다도 후배에 해당하는 청나라 왕조의 학자들 중에는 주대소(朱大韶)나 왕정진(王廷珍)과 같이, 스스로를 '實事求是'라고 아호를 붙인 사람들도 있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며, 청조(淸朝)의 고증학파가 공론(空論)만 일삼는 양명학(陽明學)에 대한 반동으로 내세운 표어이다. 고증학자(考證學者)들은 정확한 고증을 존중하는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학문연구의 입장 을 취했다. [출전] '漢書' 河間獻王德傳
(206) 심려상신 희노상기(深慮傷神 喜怒傷氣)
깊은 생각은 정신을 상하게 하고, 기쁨과 성냄은 기를 상하게 한다.
(207) 심복지환(心腹之患) <三國志>
인체의 중요한 부분인 가슴과 배에 생긴 병으로 받는 고통을 말한다. 외부가 아닌 내부의 화근으로 생긴 병폐를 이름이다.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 (闔閭)는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이 원수를 갚아달라고 유언했다. 왕위에 오른 부차는 백비를 재상으로 삼고 은밀히 군사훈련을 하는 한편 '섶 위에서 잠을 자면서(臥薪-와신)' 적개심을 불태우다가 3년 뒤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정벌했다.
부차의 오나라 군사에게 대패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월왕 구천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에 포위되어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오나라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항복하여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지금 구천을 치지 않으면 후환을 남긴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구천에게 매수된 백비의 말을 들어 월나라를 속력으로 삼고 구천의 귀국을 하락했다.
5년이 지난 뒤 부차는 만만해 보이는 제(齊)나라를 치려고 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이를 극력 만류하면서 말했다.
"지금 월나라 구천은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월나라가 우리 속령이라지만 우리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나라를 치기 전에 멀지 않아 화근이 될 월나라를 먼저 정복해야 합니다."
오자서가 부차에게 올린이 말에서 내부의 화근으로 생긴 병폐를 심복지환 (心服之患)이라 일컫게 되었다. 과연 '쓸개를 핥아 그 쓴 맛을 보면서(嘗膽- 상담)' 회계의 치욕을 되새기고 있던 구천은 마침내 오왕 부차를 거꾸러뜨린다.
(208) 심불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 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 聞 食而不之 其味) <孟子>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209) 심안모옥은(心安茅屋隱) 성정채갱향(性定采羹香) <明心寶鑑>
마음이 편하면 누추한 초옥도 아늑하게 느껴지고, 성품이 정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는 뜻이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기린말씀이다.
천분과 지족(天分知足)을 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10) 심지기위의(心之起爲意)
출전은 잘 모르겠다. 마음이 일어나야 뜻이 일어선다는 뜻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과도 의미가 통하는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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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아유피유(我有彼有) 아멸피멸(我滅彼滅)
내가 있다면 저도 있고 내가 없다면 저도 없네. 인간의 공존공생을 일깨워주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군사 독재자 全斗煥에게 이 글을 보낸 崇山스님은 안기부 남산 청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는 슬픈 뒷이야기가 있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일이다.
(212)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 논에 물 대기란 뜻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213) 안심입명(安心立命) <佛經>
불교에서 믿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어, 하찮은 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이르는 말로 삶에 정성을 다하고 신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진실한 인간의 자세를 가리킨 귀한 말씀이다.
(214) 애기애타(愛己愛他)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끼고 또 자기 이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선구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께서도 퍽 좋아하신 말씀이다.
인간은 자기만족과 자기 긍지 속에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래서 이웃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 한다. 성경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르는 연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228) 약육강식(弱肉强食) <(韓愈)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힘을 의미한다.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는 한유가 문창이라는 승려에게 써 보낸 글로서, 한유의 불교에 대한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한유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道)에 있어서 인(仁)과 의(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예약과 형정(刑政)보다 더 바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그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불교라는 것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한 것입니까? 새들이 몸을 숙여 모이를 쪼다가 몸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깊은 곳에 있으면서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것들이 자신을 해할까 두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고 있는 것입니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인간의 생존경쟁 속에는 부단한 싸움의 연속이다. 생즉쟁(生卽爭)이란 말이 있다. 투쟁 속에서 우수한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패(優勝劣敗)한다. 적응 하는 자만 살아남는(適者生存)의 원리가 통하는 사회다.
(215) 약육강식(弱肉强食) <(韓愈)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힘을 의미한다.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는 한유가 문창이라는 승려에게 써 보낸 글로서, 한유의 불교에 대한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한유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道)에 있어서 인(仁)과 의(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예약과 형정(刑政)보다 더 바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그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불교라는 것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한 것입니까? 새들이 몸을 숙여 모이를 쪼다가 몸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깊은 곳에 있으면서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것들이 자신을 해할까 두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고 있는 것입니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인간의 생존경쟁 속에는 부단한 싸움의 연속이다. 생즉쟁(生卽爭)이란 말이 있다. 투쟁 속에서 우수한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優勝劣敗)와 적응 하는 자만 살아남는(適者生存)의 원리가 통하는 사회다.
(216) 양두구육(羊頭狗肉) <晏子春秋>
[원말] 현양두 매구육(懸羊頭賣拘肉)
밖에는 양고기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때의 일이다. 영공의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 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孀:晏子)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유행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사옵니다. 하오면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과 같사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오소서.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영공의 안영의 진언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217) 양상군자(梁上君子) <後漢書>
진식전(陳寔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식은 학식이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있을 때 어느 날 밤도둑이 그의 방으로 들어와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진식은 곧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훈계를 시작하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들보 위에서 뛰어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 주십사하고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를 조용히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고을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한다.
(218) 양지양능(良知良能) <孟子>
『맹자. 진심상」에 나오는 말로,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 양능,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을 양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선천적인 도덕적 실천력과 인식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예로는 부모에 대한 효도[愛親]와 어른에 대한 공경[敬長]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순선(純善)하다고 보는 시각, 즉 성선설(性善說)의 입장을 전제했을 때만 제시될 수 있는 주장이며, 그렇게 보았을 때 비단 애친과 경장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근거하는 인식의 내용과 행위는 모두 양지양능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원래 맹자가 성선설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었으나, 후대의 왕수인(王守仁)은 이것에 근거해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수립함으로써 양명학(陽明學)의 주요한 이론적 골격을 구축하였다.
(219) 어부사(漁父辭) <屈原의楚辭>
어부사는 굴원(屈原)의 명작이다.
굴원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서 시문에 능하고 삼려대부(三閭大夫)의 벼슬에 오른 정의롭고 강직한 선비였다.
후에 나라가 어지럽고 관료들이 부패하여 세상에 실증을 느끼고 삶을 마감하려 멱라수에 다다르니 어부가 이를 발견하고 삼려대부 굴원선생님이 아니시오. 어찌하여 이 물가에 이르셨나이까? 물으니 세상이 술에 취하여 혼미하니 삶의 의미가 없어 나를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려하오. 하니
어부가 말하기를 세상이 술에 취하여 떠들썩하면 술 찌기거미(재강)이라도 먹고 취한 척 함께 살지 왜 홀로 고고한 척 세상을 하직하려 하시오. 하니 굴원이 대답하기를 "머리를 감은 자는 모자의 먼지를 털어서 쓰는 법이요, 목욕을 한자는 옷에 먼지를 털어서 입는 법이니라. (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
어부가 말하기를 " 나는 창랑에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담글 것이요, 창랑에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로다.(乃歌曰滄浪之水淸海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海. 論語) 可以吾足)하며 깊은 바다로 노를 저어 갔고 굴원은 창랑에 몸을 던져 세상을 하직 하였다.
여기서 선비의 지조로 운 삶의 모습과 범인의 세사에 어울려 타협적으로 살아가는 실상이 명명백백하게 들어 나 있다. 과연 우리는 지상에 오직 한번뿐인 삶을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220) 어부지리(漁父之利) <戰國簀>
어부의 이득이라는 뜻으로,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때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해 주도록 부탁했다.
조나라에 도착한 소대는 세 치의 혀 하나로 합종책(合縱策)을 펴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했다.
"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易水:연 조와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 사납게,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이옵니다. 연 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혜문왕도 명신으로 이름난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를 중용했던 현명한 왕인만큼, 소대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과연 옳은 말이오." 이리하여 혜문왕은 당장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
[동의어] 방휼지쟁(蚌鷸之爭), 견토지쟁(犬免之爭)
(221)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냐는 뜻으로,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매사에 처신을 잘하라는 분부의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222)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 <論語>
말을 하면 반드시 믿을 수 있어야하고, 한번 시행한 일은 반드시 좋은 결실을 거두어야한다. 신의와 결실을 강조한 귀한 말씀이다. 허언이 불신의 사회를 낳고 빈 수레가 항상 요란하기 때문이다.
(223) 여랑목양(如狼牧羊)
여랑목양은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하는 격'이란 뜻으로 탐욕스럽고 포학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는 일을 비유하고 있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은 '갈림길이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 한다'.는 뜻이다.
(224) 여도지죄(餘桃之罪)
<韓非子>에 보면 여도지죄라는 고사가 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라는 뜻인데요, 인간의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한 것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다.
중국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彌子瑕)란 궁중의 어린 아이가 있었다.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고는 맛있다고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권하였다.
그러자 왕은 오히려 기뻐하며, 제가 먹을 것을 나에게 주는 것을 보니 충성이 갸륵하다고 칭찬하였다.
세월이 지남과 더불어 미자하의 미색은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점점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경미한 죄를 짓자 왕은 지난 날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무례하게 준 일을 들추며 미자하를 궁궐 밖으로 쫒아내었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왕의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긴장하고 변화할 때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225) 여춘풍(如春風)
춘풍접인(春風接人) 추상지기(秋霜持己) 화기만면(和氣滿面)
사람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훈훈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을 강조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인 관계에서 냉랭하고 쌀쌀하면 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외면을 당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뜻으로 춘풍접인(春風接人) 추상지기(秋霜持己)로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화기를 갖고 사람을 접하되, 추상처럼 근엄한 정신으로 나를 견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 중국 명(明)시대에 홍응명(洪應明)이 지은 책에 나온 말이다.
以責人之心責己 以恕己之心恕人(이책인지심책기 이서기지심서인)이라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는 뜻이다.
(226) 역장불여지장 지장불여덕장(力將不如智將 智將不如德將)
힘이 있는 장수는 지략이 있는 장수만 못하고, 지략이 있는 장수는 덕이 있는 장수만 못하다는 뜻이다. 논어의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논어의 공자님 말씀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德不孤 必有隣)
(227) 영과이진(盈過而進) <孟子>
맹자에 나오는 명언이다.
인간은 자기 갈 길을 정하면 서슴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강인한 습성이 있다. 이것이 성공의 원인이 될 수 있기도 하나 거의가 실패의 이유가 되기 쉽다. 말이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물은 그 앞에 웅덩이가 있으면 갈 길이 아무리 급해도 서서히 기다리면서 그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난 연후에 다시 앞으로 나가는 흐름을 시작한다. 여기에 깊은 진리가 있다. 우선 네 앞에 문제부터 심사숙고 한 연후에 전진을 생각하라.
(228) 영언배명 자구다복(永言配命 自求多福) <論語>
하늘이 내려준 짝과 합해서 스스로 복을 구하라는 뜻이다.
시경에서 읽은듯한데 분명하지는 않다. 중국에서 결혼 축하글로 많이 쓰이고 있다.
(229) 예번즉난(禮煩則亂) <書經. 說明>
예절은 너무 번잡하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는 말로 호사다마(好事多魔)와 맥이 통하는 말이다.
(230) 오례(五禮) <禮記>
오례란
길례(吉禮) ...천지에 모든 신에게 제사를 드려 행복을 구하는 것.
흉례(凶禮) ...상례(喪禮)에 관한 것.
군례(軍禮) ...군사에 관한 것.
빈례(賓禮) ...내빈과 교제에 관한 것.
가례(嘉禮) ...관혼에 관한 것을 말하며 삼례는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를 말한다. 좌전(左傳)에 기록되어 있다.
(231) 오복(五福) <書經. 洪範編>
수(壽) 오래 사는 것.
부(富) 부자가 되는 것.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
유호덕(攸好德) 남에게 덕을 베풀며 사는 것.
고종명(考終命) 질병 없이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살고 복을 많이 받는 수복강녕을 좋아하는데
중국사 사람들은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사는 복수강년을 좋아한다.
가난하면서 오래만 사는 것보다 복을 많이 받고 장수를 바라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생각인 듯싶다.
(232) 오상(五常) <孟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이름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는 부의(父義) 모자(母慈) 형우(兄友) 제공(弟恭) 자효(子孝)를 보는 견해도 있다.
(233) 오욕 칠정(五慾 七情) <佛經>
오욕 (五慾)
불교에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근본이 되는 욕망(慾望)를 가리키는 말이다. 색(色: 물질적 존재)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다섯을 본디 오경(五境)이라 하는데, 이것이 각각 이(耳)ㆍ목(目)ㆍ구(口)ㆍ비(鼻)ㆍ설(舌) 등 신(身)의 오관(五官)의 대상으로 사람의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오욕(五慾)이라 한다. 한편, 재욕(財慾)ㆍ색욕(色慾)ㆍ식욕(食慾)ㆍ명예욕(名譽慾)ㆍ수면욕(睡眠慾)의 다섯을 오욕이라 하기도 한다.
칠정 (七情)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심리작용을 말하는데, 희(喜)ㆍ노(怒)ㆍ애(哀)ㆍ낙(樂)ㆍ애(愛)ㆍ오(惡)ㆍ욕(慾)의 일곱이다. 유교(儒敎)에서는 이 가운데 낙(樂) 대신 구(懼) 곧 ‘두려움’을 넣는다. 한의학의 칠정은 희(喜, 기쁨), 노(怒, 성남), 우(憂, 걱정), 사(思, 염려), 공(恐, 두려움), 경(驚, 놀람), 비(悲, 슬픔) 이다.
성리학자들은 性이 情이니 하는 말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여 설명한다. 심(心)은 일신의 주제니 정(情)을 통솔하고 , 성은 천부의 이(理)니 칠정을 낳는다.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두렵고, 사랑하고, 악하고 욕됨의 칠정의 기질은 청탁에 따라 선도되고 악도 되지만 그 본원은 천명의 성이다. 그러므로 그 본질이 선일진대 중화(中和)의 덕을 길러 삼재(三才)의 하나로서 천지에 참여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밑바닥에는 곡하고, 웃고 슬프고 기뻐하는 곡소비환(哭笑悲歡)이 깊게 깔려있다.
(234) 오월동주(吳越同舟) <孫子兵法>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된다.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같은 장소와 처지에 함께 놓임을 뜻한 말이다.
손자(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오(吳)의 합려(闔閭)와 월(越)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이 있었고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이고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이 회계산에서 항복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이에 대해 손무(孫武)의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 (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吳 오나라 오. 越 넘을, 월나라 월. 同 한가지 동. 舟 배 주. [동] 同舟濟江(동주제강) :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즉 원수라도 한가지 일을 위해서는 돕게 된다. 同舟相救(동주상구) :이해관계에 얽혀 있으면 자연히 돕게 된다.
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호월동주(胡越同舟), 오월지부(吳越之富)
(235) 오유지족(吾唯知足)
너와 내가 만족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뜻이다.
(236) 옥불탁 불성기 인불학 불지의(玉不擢 不成器 人不學 不知義) <禮記>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의리를 모른다는 뜻이다.
인간 삶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한 명언이다.
(237) 옥쇄불개백(玉碎不改白) <三國志>
“나는 해량(海良) 땅의 일 무부(一武夫)로 내 주군께서 수족과 같이 대우하심을 입고 왔으니 어찌 의를 배반하고 적국에로 갈 것인가.
성이 파하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옥은 부스러져도 그 흰빛은 고칠 수 없다. 대나무는 타도 그 결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은 죽어 없어져도 이름은 역사에 남는다. 그대는 속히 출성하라. 나는 손권과 싸워 죽기를 결정할 것이다.” 관우가 손권과의 전투에서 붙잡혀 제갈근(諸葛瑾)이 손권의 부하가 되면 호의호식하며 평안을 누리 수 있다고 회유할 때 관우가 한말로 지조의 상징을 삼는 명언이다. <관우. 운장>
이는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에서 형제의 결의를 맺고 3형제가 된 후 신뢰관계 속에서 평생을 한 결 같이 지켜온 약속의 위대한 표본이다.
인간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신뢰 관계다. 아무리 삼국지의 역사 소설의 한 장면이라도 인류 사회에 제시하는 교훈이 위대하고 장구하다.
(238)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論語>
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과거와 현재를 바로 알아야 삶의 길에 바로 설 수 있음을 가르친 명언이다.
나는 큰 아들은 학자가 되라고 지신(知新)이라 이름 하였고, 온고이지신을 뜻함이다.
둘째 아들은 지도자가 되라고 지민(知民)이라고 하였다.
지민이 위천(知民以爲天)은 백성을 바로 알아 하늘처럼 섬기라는 뜻이다.
(239) 와신상담(臥薪嘗膽) <孟子> <史記>
『맹자』「진심상」에 나오는 말로,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 양능,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을 양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선천적인 도덕적 실천력과 인식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예로는 부모에 대한 효도[愛親]와 어른에 대한 공경[敬長]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순선(純善)하다고 보는 시각, 즉 성선설(性善說)의 입장을 전제했을 때만 제시될 수 있는 주장이며, 그렇게 보았을 때 비단 애친과 경장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근거하는 인식의 내용과 행위는 모두 양지양능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원래 맹자가 성선설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었으나, 후대의 왕수인(王守仁)은 이것에 근거해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수립함으로써 양명학(陽明學)의 주요한 이론적 골격을 구축하였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 )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그 해(B.C. 482)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하남성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歷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소주(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 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240)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莊子>
춘추전국 시대에는 중원의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어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適者生存)의 회오리바람이 심했다.
장자는 이를 일러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어리석음에 비유하였다.
오늘날에 한심한 정치인들의 작태도 이와 과히 다를 바 없으니 심히 안타깝고 불상한 일이다. 어찌하여 의인은 적고 소인들만 날뛰는 세상이 되었을까.
(241) 완인상덕 완물상지((玩人喪德 玩物喪志) <書經>
사람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면 덕을 잃어버리게 된다. 물건에 심한 애착을 가지면 마음을 상하기 쉽다.
(242) 왕후장상(王侯將相)
제왕과 제후와 장수와 재상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항상 그 시대 그 역사의 주역이었다.
(243) 욕지미래 선찰이연(欲知未來 先察已然) <明心寶鑑>
앞날을 알고자 하거든 먼저 지난 일을 살피라.
주역 계사하전에도 창왕찰래(彰往察來)란 말이 나오는데 ‘지나간 일을 밝게 살펴서 앞으로의 일의 득실을 안다는 뜻으로 같은 의미다.
(244) 원교근공(遠交近攻)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 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 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 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민王)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 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245) 위인지학(爲人之學) 위기지학(爲己之學) <論語>
인류의 스승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른 말씀이다.
학문을 하되 남을 위하여하는 것은 위인지학이요.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은 위기지학이다. 학문을 연구할 때에는 폭넓게 하라는 뜻이다.
(246) 위정지도 성가지도(爲政之要 成家之道) <論語>
젊어서 배우지 않으면 평생이 헛된다.
景行錄(경행록)에 爲政之要(위정지요)는 曰公與淸(왈공여청)이요, 成家(성가지도)는 儉與勤(검여근)이니라.
정치의 요점은 공정함과 청렴이고 집을 일으키는 방법은 검소함과 근면이다.
(247) 유심소작(惟心所作) <佛經>
불가의 가르침이다. 인간의 모든 마음과 일들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모두가 자신의 수고와 노력여하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된다.
(248)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삶을 뜻한다. 유연자적(悠然自適)이라고도 한다.
(249) 육언 육페(六言六蔽) <論語>
육언(六言) 인지신직용강(仁知信直勇剛) 육폐(六蔽) 우탕족교난광(愚蕩賊絞亂狂)을 말한다.
(250)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後漢書>
자나 까나 잊지 않고 간절한 염원을 가지는 사람은 반드시 그 뜻을 성취한다.
(251) 읍참마속(泣斬馬謖) <三國志>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림´을 비유한 뜻이다. 출전-´三國志´ 蜀志 諸葛亮篇‘ 삼국시대 초엽인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227) 3월,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한중(漢中:섬서성 내)을 석권하고 기산(祁山:감숙성 내)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자는 중달(中達), 179∼251)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 :한중 동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 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 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 서는 식수가 끊겼다. 다급해진 마속은 전 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張稷)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의 실패로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252) 5 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成都)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253) 이민위천(以民爲天) 사인여천(事人如天) <司馬遷 史記>
백성 앞에는 하늘을 대하듯 하고,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뜻이다.
後廣 金大中 전 대통령이 생존 시에 즐겨 쓰던 글이다.
(254) 이일대로(以佚待勞) <孫子>
평안함으로 지친 것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용병에 능한 사람은 적군의 사기가 높을 때를 피하여 사기가 해이해졌을 때 친다. 이것이 사기(士氣)를 다스리는 것이다. 아군을 정비하고 적군이 혼란해지기를 기다리며 아군을 안정시키고 적군이 소란해지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멀리 온 적군을 기다리고 아군은 편안하게 하고 피로에 지친 적을 기다리며 아군을 배부르게 하고 굶주린 적을 기다린다.(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이것은 힘을 다스리는 것이다. 깃발이 정연하게 정렬된 군대는 공격하지 말고 당당하게 진영을 갖춘 진영을 습격하지 말라. 이는 적의 정세에 따라 작전의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다." '손자'(孫子) 제7 군쟁(軍爭)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적군의 마음과 체력을 빼앗고 작전의 변화에 대처하는 요령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이일대로(以佚待勞)라는 성어가 나왔다. '佚'(일)대신 '逸'(일)로 쓰기도 한다. 이일대로(以佚待勞)는 편안함으로 지친 것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전투에 앞서 쉬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피로한 적군을 맞아 싸우라는 의미이다. 적군보다 먼저 싸움터에 이르러 좋은 곳을 선점한 다음 충분히 휴식을 취하여 아군의 전력을 비축한 뒤 먼 길을 오느라 피로해진 적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또는 상대의 전력이 아군보다 강할 때, 수비에 치중하는 한편으로 전열을 잘 가다듬어 상대가 사기가 저하되고 지치기를 기다려 공격하는 전략이다. 이는 삼십육계(三十六計) 가운데 승전계(勝戰計)에 속하는 네 번째 계책이기도 하다.
(255)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烈女傳>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쓰면 도둑으로 몰리기 쉽다는 말로, 남에게 의심을 받을 만한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짝을 이루는 말로 외밭을 지날 때에는 신 끈을 고쳐 신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의 의심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256)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을 요령껏 살아가려는 얕은 속셈의 인간들의 생각과 모순을 지적한 고사성어 이다.
(257) 인내천(人乃天)
민중이 곧 하늘이다. 밥이 곧 하늘이란 말도 있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서리치며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민중의 아픔을 속 알이 하던 의병장 녹두장군 전봉준이 국태민안(國泰民安)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부르짖으며 좋은 때다 좋은 때다 다시는 우리에게 찾아오기 어려운 때다(時呼時呼 不再來)를 부르짖으면서 동학란의 선봉이 되었을 때 우리 민족의 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김지하 시인은 "하늘은 밥이다."라는 시를 썻 고 이 높고 깊은 사상은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태공망(太公望) 강태공(姜泰公) 여상(呂尙)이 육도삼략(六韜사三略)중 무도(武韜)에서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곧 천하 사람의 천하입니다.(天下者 非一人之天下 乃天下之 天下也)라고 설파 했으니 이 얼마나 높고 깊은 민중의 올바른 사관인가.
(258) 인무백세 왕작천년계(人無百歲 枉作千年計) <明心寶鑑>
사람은 백 살을 살기가 힘들지만 지은 잘못은 천년의 계교를 세우기 쉽다.
한 번의 잘못된 생각이 반복적으로 죄를 더하게 되기 때문이다.
(259)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 <論語>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논어에 나오는 명언이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가 어려우니라.
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위 글은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사살하고 여순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우리 민족의 영웅 안중근(安重根)의사가 친필로 남긴 명언이다. 우리 민족 모두가 가슴속에 아로새겨야 할 금과옥조의 말씀이다.
(260)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論語>
성현 공자의 말씀이다. 인간들 모두는 그날 그 날을 행복해 지기를 바라면서 살아간다.
행복은 만인의 원이기 때문이다. 철인 소크라테스도 행복이란 지덕복(知德福)의 합일(合一)이라고 정의 하였다. 인간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인생의 삶 앞에는 힘든 고개들이 수없이 가로놓여 있다. 이것을 스스로 헤쳐 나가 행복을 찾는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책무다.
행복이 하늘에서 스스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먼 곳에 염려가 없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다. 가슴 깊이 새겨둘 말씀이다.
(261)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 有靑山)
옛 선인이 이르기를 人生到處 有靑山 이라 바라보니 사방에 푸른 산이요
돌아보니 곳곳에 맑은 물이라 근심걱정 지내온 하 세월이 괜한 것임을 이제 알았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고 인생사 행불행 생각하기 나름이니 기쁜 마음 즐거운 생각 따뜻한 손 마주잡고 감사하며 살리라 웃으면서 살리라. 故山終勝他山好 타산이 아무리 좋다 해도 고향산만 못하다
(262)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는 옛 시인의 시구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에서 원용한 것으로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것 이다.
이는 문화재위원 유홍준 교수가 민족문화 유산 답사에 연륜이 쌓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떠오른 경구로서 문화유산을 다듬는 이름 없는 손길들의 소중함을 기린 말이다.
(263) 인생하처 불상봉(人生何處 不相逢) <景行錄>
景行錄에 曰, 恩義를 廣施하라, 人生何處에 不相逢이리오, 讐怨을莫結하라,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은의(恩義)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디에 산들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와 원망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264)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一時之憤 免百日之憂) <明心寶鑑>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로고스(Logos)적 이면서도 파토스(Pathos)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삶을 누리려면 이성과 감정의 알맞은 조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곧 행복의 길이다. 동물이 강한 것은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요.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성의 밝은 지혜가 그 앞길을 밝히기 때문이다. ‘때린 사람은 발을 오그리고 자고, 맞은 사람은 발을 펴고 잔다.’ 는 속담이 있다. ‘참을 인자 셋이면 죽을 사람도 살린다.‘ 인내삼사(忍耐三思)는 우리들의 조상들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인생의 지혜다. 이성과 감정의 아름다운 조화. 로고스와 파토스의 적절한 조화는 인간 행복의 아름다운 지혜다.
(265) 인의진종빈처단(人義盡從貧處斷) 세정편향유전가(世情便向有錢家)
<明心寶鑑>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 부르짖으면서도 인간들은 늘 차별을 두고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의리는 가난을 쫒아 끊어지고, 세상의 정은 돈을 향해 몰려간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지적이요, 냉철한 판단인가. 이래서는 안 되지 하면서 늘 속아 사는 우리들의 존재가 서글프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삶의 근본 이다.
(266) 인사유명 부귀재천(人死有命 富貴在天) <論語>
사람의 죽고 삶은 명에 있고, 부해지고 귀해 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하늘의 큰 뜻에 순종하고 자기 스스로 노력 하면서 삶의 옷깃을 바로 세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늘만 쳐다보고 스스로 게으름을 피운다면 쪽박을 차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67) 인생팔고(人生八苦) <佛經>
불가의 말씀이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生老病死)과, 사랑하나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愛別離苦) 이 원수 같은 놈은 만나지 말아야 했었는데 만날 수밖에 없는 괴로움(怨憎悔苦) 구하고자 하나 얻어지지 아니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자기 자신을 까닭 없이 괴롭히는(五蘊成苦)를 이름이다. 혹은(五陰)이라고도 한다.
(268)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書經 大禹謨>
욕심에 사로잡힌 마음이 인심이요, 도와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도심이다. 욕심의 노예가 된 마음을 따르면 위험하다. (궐을 그것 궐자임) 주자(朱子)는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고 가르쳤다.
(269) 인일능지 기백지(人一能之 己百之) 십인능지 기천지(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中庸>
'남이 한번 해서 그것이 능하다면 자기는 그것을 백번하고,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면 자기는 그것을 천 번한다. 과연 이 도에 능하다면 비록 어리석다 할지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며, 비록 유약하다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270) 인장지덕(人長之德) 목장지패(木長之敗)
사람은 큰 사람 밑에 있어야 큰 인물로 자라고, 나무는 큰 나무 밑에 있으면 고사리처럼 가늘고 약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아이는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망아지를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옛날에 큰 인물 휘하에 문하생들이 운집하여 있었던 것도 모두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큰 인물의 덕을 흠모하는 것은 훌륭한 선비의 덕이다.
(271) 인즉영 불인즉 욕(仁則榮 不仁則 辱) <孟子>
마음이 착한사람에게는 영화로운 일이 찾아오고 마음이 악산 사람에게는 욕된 일이 오게 된다는 뜻이다.
(272)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 이익을 거둔다는 뜻이다.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은 어전에서 '중원으로의 진출이야말로 조명시리(朝名市利)에 부합하는 패업( 業)'이라며 중원으로의 출병을 주장하는 재상장의(張儀)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신이 듣기로는 부국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국토를 넓히는데 힘써야 하고, 강병(强兵)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백성의 부(富)에 힘써야 하며, 패자(覇者)가 되기를 원하는 군주는 먼저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한다고 하옵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패업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법이옵니다. 하오나, 지금 진나라는 국토도 협소하고 백성들은 빈곤하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먼저 막강한 진나라의 군사로 촉(蜀)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는 길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줄로 아옵니다. 그러면 국토는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은 쌓일 것이옵니다. 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고 무엇이오니까?
그러나 지금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한(韓)나라를 침범하면, 한나라는 제(齊)나라와 조(趙)나라를 통해서 초(楚)나라와 위(魏)나라에 구원을 청할 게 분명하오며, 더욱이 주나라의 구정(九鼎)은 초나라로 옮겨질 것이옵니다. 그땐 진나라가 공연히 천자를 위협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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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정용진 시인/중앙일보 | 정용진 | 2014.12.05 | 722 |
| 167 | 여주( 驪州) 역사기행/코리아모니터 | 정용진 | 2014.11.07 | 1755 |
| 166 | 결실의 아픔/정용진 시인/중앙일보 | 정용진 | 2014.10.26 | 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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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 앞서가는 사람들/정용진 시인/코리안 저널 | 정용진 | 2014.10.12 | 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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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 개성공단 폐쇄를 보면서/정용진 시인/한국일보 | 정용진 | 2013.05.15 | 713 |
| 156 | 북유럽( 러시아. 핀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기행/정용진 시인 | 정용진 | 2014.07.01 | 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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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정용진 시인/중앙일보 | 정용진 | 2014.04.10 | 933 |